[영화로 보는 경제] 세계대전과 경제④ 시대가 만들어준 '위대한 독재자' 히틀러의 등장
[영화로 보는 경제] 세계대전과 경제④ 시대가 만들어준 '위대한 독재자' 히틀러의 등장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1.05.21 14: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차 세계대전 후 독일, 배상금 해결 위해 무분별한 화폐 발행
금본위제의 포기, 배상금 삭감, 공공지출 확대→히틀러 집권 후 효과 나타나
아우토반, 폭스바겐 만든 히틀러…군비 지출 늘리며 전쟁 준비 돌입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 1940)감독: 찰리 채플린출연: 찰리 채플린(이발사, 힌켈), 폴레트 고다르(한나), 레지날드 가디너(슐츠), 헨리 다니엘(가비취), 잭 오키(나폴리니)별점: ★★★★ - 지금은 웃지만 그때는 어땠을까 -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 1940)감독: 찰리 채플린출연: 찰리 채플린(이발사, 힌켈), 폴레트 고다르(한나), 레지날드 가디너(슐츠), 헨리 다니엘(가비취), 잭 오키(나폴리니)별점: ★★★★ - 지금은 웃지만 그때는 어땠을까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찰리 채플린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위대한 독재자’는 찰리 채플린 영화 중 최초의 유성 영화입니다. 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였었지만 영화 마지막 7분을 그렇게 사용한 건 전무후무한 세계대전을 겪는 그 시대 사람들의 고뇌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연설 장면에서의 찰리 채플린 눈빛이 인상 깊습니다.

위대한 독재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를 희화화한 작품으로 영화가 개봉된 1940년 독일에서는 이 영화를 수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독일은 왜 그 당시 히틀러라는 독재자를 원했던 걸까요? 그건 1차 세계대전 패배 후 독일 국민들이 겪어야 했던 열등감, 그 원인이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이라는 불만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발전 과정에서 전제조건은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당시 독일의 상황이 그랬고 이는 독일의 실패(?)한 통화정책이 한몫했습니다.

히틀러의 강한 어조는 패배감이 만연하던 시대에 영웅주의로 비춰졌을 겁니다. 사진=다음영화
히틀러의 강한 어조는 패배감이 만연하던 시대에 영웅처럼 비추어졌을 겁니다. 사진=다음영화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이 짊어진 1320억마르크란 배상금은 매년 독일 국민소득의 10%, 수출금액의 80%를 전쟁 빚을 갚는데 써야할 규모였습니다. 독일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금이 없어도 화폐를 찍어내는 것이었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가 낮아진다는 것이고, 인플레이션이 과도해지면 더 이상 화폐가 제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1920년 이후 독일은 월간 기준 물가가 50% 이상 오르고 있었고, 화폐를 계속해 보유하는 건 휴지조각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 후 러시아와 폴란드, 헝가리, 오스트리아도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기는 했지만 독일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1914년과 비교해 독일은 1조배 이상의 물가상승을 경험했습니다.

인플레이션 기미가 보이자 마르크를 파운드나 달러로 환전하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독일 자본수지는 점점 더 적자를 보게 됩니다. 또 낮아진 마르크 가치가 수입물가를 올려 전체 물가도 함께 상승하는 악영향도 가져다줍니다.

히틀러가 독일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본인의 노력 덕분이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독일의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를 금으로 평가하는, 즉 금본위제로 인해 조절하기 어려웠던 점이 있었고, 1931년 독일은 금본위제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이에 따라 1933년 독일의 재할인율은 7%에서 4%로 낮아졌습니다. 재할인율은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으로부터 대출할 경우 적용되는 금리를 가리키는 말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을 때 재할인율을 올려 시중에 통화수요를 감소시키기도 합니다. 여기서 재할인율이 낮아졌다는 건 더 이상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그렇게 깊지 않아졌음을 보여줍니다.

이 시기를 좀 더 언급해야 겠습니다. 향후 브레튼우즈 체제로 이어지는 시초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보이던 산업 경쟁력 하락을 막지 못했고,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 우위를 지키기 위해 1차 세계대전 후 무너졌던 금본위제를 회복하려 합니다.  금본위제는 통화가치가 금과 연관돼 있기에 신축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영국은 1925년 금본위법안을 통과시키며 금본위제를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곧 이어진 1929년부터 1933년 사이 금융시장 위기는 전쟁 후 화폐발행량 증가의 필요성, 금 채굴량 부족과 함께 금본위제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금은 더 이상 일반 유통 시장에서 보기 힘들어 졌습니다.

금본위제 포기와 함께 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전쟁 배상금을 대폭 낮추도록 합의한 조치는 독일이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실업률을 떨어 뜨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독일 공공지출은 1928년부터 히틀러 집권 직전 해인 1934년까지 계속해 증가했고, 실업률은 1932년을 기점으로 상당히 감소합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시점은 운이 좋게도 앞선 지출 효과가 나타날 무렵입니다.

폭스바겐 '비틀'은 히틀러의 지원 속에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구글
폭스바겐 '비틀'은 히틀러의 지원 속에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구글

히틀러로 공공분야에 막대한 지출을 합니다. 아우토반이라 불리는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는 독일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히틀러는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부터 기획은 있었지만 실행되지 않았던 아우토반 건설을 진행합니다. 아우토반은 당연하게도 자동차 산업 육성과 이어졌고 나치당은 회사를 만들고 자동차 공학자에게 국민차 프로젝트를 맡깁니다. 이때 만든 회사가 현재 ‘폭스바겐’의 전신이며 프로젝트를 맡은 공학자의 이름은 ‘페르디난트 포르셰’, 이렇게 탄생한 모델이 폭스바겐의 ‘비틀’입니다.

또 히틀러 시기 손기정 님의 마라톤 금메달로 유명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도 개최됩니다. 이런 굵직한 재정지출로 독일 실업률은 1938년 3.2%까지 내려갑니다.

히틀러 집권 이후 독일 경제 상황이 나아지자 전쟁의 기운도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독일의 공공지출은 1935년부터 1937년까지 줄어들다 1938년 급증합니다. 독일은 1933년 국제연맹과 1935년 베르사유 체제에서 탈퇴합니다. 이에 따라 GNP 대비 군비지출 비중은 1928년 5%도 되지 않았지만 1938년에는 15%에 이르렀습니다. 독일은 다시 1차 세계대전과 같은 행보를 준비합니다. 이를 단순한 복수 또는 과거의 영광 재현을 명분으로 볼 게 아니었습니다. 또 다시 전 세계 영토와 자원을 두고, 그 규모는 유례없을 정도였던 탐욕의 전쟁이었습니다.

 


관련기사

김성화 기자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
기업돋보기
단독기사
톱데일리는 독자분들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주신 제보와 취재요청으로 세상을 더욱 가치있게 만들겠습니다.
뉴스제보 이메일 top@top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