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중국인의 ‘인생’에 치명타를 날린 ‘대약진운동’
[영화로 보는 경제] 중국인의 ‘인생’에 치명타를 날린 ‘대약진운동’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1.06.18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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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기 속 대약진운동 중국 보여준 장예모의 '인생'
"15년 내 미국·영국 따라 잡는다"던 마오쩌둥
밥그릇 모아 철강 생산하고 참새 잡아 식량 생산 늘린다?
4000만 아사로 이어진 운동…권력 유지하려는 선택 '문화혁명'으로 이어져
인생(Lifetimes, 1994)감독: 장예모출연: 길우(푸구이), 공리(자전)별점: ★★★☆ - 당시 시대상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순 없다, 중국에서는 -
인생(Lifetimes, 1994)
감독: 장예모
출연: 길우(푸구이), 공리(자전)
별점: ★★★☆ - 당시 시대상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순 없다, 중국에서는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곳곳에 보이는 마오쩌둥의 초상화와 선전물.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찬양일색입니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 '인생'은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중국인들이 마오쩌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실제로 그들의 삶에서 마오쩌둥의 사상과 정책이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여실하게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마오쩌둥이 야심차게, 중국을 미국과 영국에 비견되는 경제강국으로 키우고자 했던 '대약진운동'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대약진운동은 20세기 후반 중국의 역사를 결정지은 사건이라 말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거 같습니다. 중국인들에게는,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쉽게도 좋은 의미보다는 나쁜 의미가 강하긴 하지만요.

모든 나라가 그렇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의 시장으로 침략을 당한 중국만큼 국가 재건 욕구가 강한 나라도 없었을 거 같습니다. 중화사상을 내세우며 세계의 중심이라 말하고 다닌 게 창피할 정도로 털려 버리고 이러저리 치였던 기억은 지울 수 없겠죠.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을 추진한 건 아마 그런 자존심 문제가 컸던 거 아니었을까요. 중국은 1953년 소련식 사회주의적 공업화를 도입한 1차 5개년 계획을 발표합니다. 1917년 2월 러시아 혁명 후 탄생한 소비에트 연방은 1928년부터 1937년까지, 두 차례에 걸친 경제발전 5개년 계획으로 중공업을 육성하는 성과를 보입니다. 중국은 그런 소련을 보며 인구의 80% 이상이 농민이었던 경제구조를 중공업으로 옮기려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시기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지금의 러시아도 큰 국가지만 당시 소련은 미국의 유일한 경쟁자였습니다. 그런 소련에서 1957년 11월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이 공업 생산 및 농업 생산으로 15년 이내 미국 추월”을 선언합니다. 여기에 뜬금없이 마오쩌둥이 자극을 받아 추진한 게 바로 대약진운동입니다.

1차 5개년 계획이 끝날 무렵인 1958년 마오쩌둥은 2차 5개년 계획을 세우고 향후 15년 안에 영국을 추월하는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밝힙니다. 이때 마오쩌둥은 소련식 모델에서 벗어나 자력갱생을 강조합니다. 여기에는 1차 5개년 계획 당시 소련의 조언을 참고할 정도로 양국 관계가 가까웠지만, 스탈린이 1953년 사망하면서 관계가 좋지 않아진 점도 작용합니다.

중국은 대약진운동을 통한 노동집약적 산업화 방안 수립, 철강증산운동, 수리건설운동 등을 추진합니다. 또 기존 농민들을 대규모로 조직화 해 식량생산량을 늘리려는 시도도 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전후 소련의 붕괴에 앞서 사회주의 국가에서 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경제계획의 맹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지금 보면 말이 안 되는 내용들이 그땐 당연한 듯 받아 들여졌습니다. 일례로 기계 1대가 사람 100명을 대체한다고 하면 당연히 기계를 사용하는 게 낫겠죠. 하지만 중국은 1대의 기계 대신 사람을 100명 투입하는 방식을 적용합니다. 참으로 중국다운 발상입니다.

철강생산은 대약진운동 중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낸 부분이지만 그 결과물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사진=한중국제교류재단
철강생산은 대약진운동 중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낸 부분이지만 그 결과물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사진=한중국제교류재단

이런 발상에 믿을 수 없는 통계가 더해지니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어려웠습니다. 대약진운동이 선포된 1958년 7월, 중국은 철강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용광로 건설에 돌입했고, 7월 3만기에서 8월 19만기, 9월 70만기, 10월에는 100만기가 건설됐다는 통계를 발표합니다. 여기에 맞춰 당해 철강 생산량 목표는 620만톤에서 1070만톤으로 증가시킵니다. 전년만해도 80%가 농민이었던 국가에서 이런 생산량과 목표치가 가능하다니요. 그나마 생산된 철강도 품질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보면 조그만 아궁이 같은 용광로에서 집에서 사용하던 고철을 녹여 새로이 철강을 생산합니다. 그렇게 생산한 철강제품이 좋을리 없지요.

기존 농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식량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해 같은 면적의 땅에 씨앗을 두 배로 뿌려 버립니다. 이런다고 생산량이 두 배가 될까요? 하지만 중국 정부는 1959년 곡물과 면화 생산량을 1958년 대비 50% 증가한 수치를 목표로 세웁니다. 이런 목표는 허위 보고도 원인이었습니다. 

대약진운동의 백미는 참새잡기 운동입니다. 영화에서도 차마 이 에피소드는 다룰 수 없었나 봅니다. 1955년 마오쩌둥은 농촌사찰 중 벼 이삭을 쪼아먹는 참새를 보고 “참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말합니다. 이때부터 참새잡기가 시작되고, 그 방법도 가히 중국스럽습니다. 참새가 땅에 앉지 못하게 해 탈진할 때까지 쫓아다녔습니다. 이로 인해 1년 만에 2억마리의 참새가 줄었다고 합니다. 참새가 사라진 농촌에는 메뚜기 떼가 습격을 했고, 참새를 잡기 위한 덫에 다른 동물들이 걸리면서 오히려 생태계만 파괴시키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중국 인민들을 잘 살게 해주겠다고 추진했던 대약진운동은 농민의 공업화 실패와 함께 3000~5000만명이 아사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마오쩌둥은 앞서 1차 5개년 계획 당시 공산당을 비판한 지식인들을 반우파 투쟁으로 쳐내버렸고, 이런 양상은 대약진운동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견제 없이 권력을 행사한 결과물은 처참했습니다.

여전히 그는 중국에서 칭송 받는 인물입니다. 사진=위키피디아
여전히 그는 중국에서 칭송 받는 인물입니다. 사진=위키피디아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현재 중국은 경제 전쟁과 함께 문화 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원인도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이라면 너무 나간 걸까요?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1959년 국가 주석 자리를 내놓습니다. 하지만 당 주석 자리는 유지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마오쩌둥은 1966년 5월 문화혁명을 통해 권력을 다시 가져가려 했습니다. 옛 것은 나쁜거라며 모두 없애 버리려 시도를 합니다. 그 정도가 지나쳤습니다. 푸구이와 자전의 딸 평샤가 출산을 하다 목숨을 잃은 이유도 마오쩌둥이 밀어 붙인 문화혁명의 잘못된 방향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중국은 자신들이 원조라 말하고 싶어도 남아 있는 사료가 너무나 부족한 상황에 처해져 버렸습니다.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은 가히 중국의 발전을 10년, 20년 늦췄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독선을 내세울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돌이키기 위해서는 10년, 2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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