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비틀즈가 'TAXMAN'을 만나자 'HELP!'라 외칩니다
[영화로 보는 경제] 비틀즈가 'TAXMAN'을 만나자 'HELP!'라 외칩니다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1.07.02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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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뮤지컬 영화 'HELP!'를 바하마 제도에서 촬영한 이유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소득세 도입한 영국, 세계대전 거치며 세율이 99%까지
피케티 "0.1%가 80% 자산 가진 영국, 선거권 확대로 부의 불평등 완화"
헬프!(Help!, 1965)감독: 리처드 레스터출연: 비틀즈별점: ★★ - 비틀즈라서 별 하나 더 줬다 -
헬프!(Help!, 1965)
감독: 리처드 레스터
출연: 비틀즈
별점: ★★ - 비틀즈라서 별 하나 더 줬다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Let me tell you how it will be, There's one for you, nineteen for me.’ ‘And you're working for no one but me, Taxman!’

‘어떻게 될지 말해 줄게. 하나가 네 것이고 아홉은 내꺼야.’ ‘너는 나를 위해서 일하지. 세금징수원!’란 말이 누구의 노래 가사인지 아시나요? 바로 비틀즈의 ‘TAXMAN!'입니다. 비틀즈는 왜 노래와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세금에 관해 노래하게 된 걸까요?

비틀즈는 'TAXMAN'을 1966년 발매한 'Revolver' 앨범의 1번 트랙에 놓을 정도로 세금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사진=위키피디아
비틀즈는 'TAXMAN'을 1966년 발매한 'Revolver' 앨범의 1번 트랙에 놓을 정도로 세금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사진=위키피디아

택스맨이 발표되기 1년 전 개봉한 영화 ‘HELP!’는 바하마 제도에서 촬영했습니다. 여기에도 세금문제가 끼어 있다고 합니다. 비틀즈가 많은 돈을 벌었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비틀즈가 미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1964년부터 해체한 1969년까지 미국 음반시장은 3배가 커졌습니다. 

그런 수입을 세금으로 내기 아까웠을 겁니다. HELP!를 바하마 제도에서 촬영한건 지금이나 그때나 바하마 제도가 조세피난처로서 세금이 낮았기 때문입니다. 비틀즈는 영화를 제작한 프로듀서와 바하마에 회사를 설립하고 영화 수입을 그쪽으로 귀속시켜 버렸습니다. 회사는 비틀즈와 프로듀서가 공동 출자한 구조였습니다.

당시 세금 수준이 얼마나 됐기에 그럴까요? 비틀즈가 택스맨에서 말한 내용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토마 피게티의 ‘자본과 이데올로지’를 보면 영국의 소득세는 1940년부터 1970년대까지 90% 이상을 보였습니다. 그나마 비틀즈가 결성되던 1960년대 초중반 80% 후반을 기록한 게 낮은 세율이었습니다.

국가별 소득세율 추이. 범례는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순. 사진=토마 피케티 홈페이지
국가별 소득세율 추이. 범례는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순. 사진=토마 피케티 홈페이지

비틀즈의 나라인 영국은 세계에서 최초로 소득세를 도입한 국가답게 세금이 아주 거침이 없었네요. 계기는 전쟁이었습니다. 소득세는 나폴레옹 전쟁을 위한 비용 마련을 위해 도입됐었습니다. 한 번 만들어진 세금은 없애기 어려운 법이죠. 1798년 12월 윌리엄 피트 수상이 소득세를 도입할 당시 세율은 60파운드 이상 소득에 2펜스, 약 0.8333%였고, 당시부터 누진세가 가 도입이 돼 200파운 이상은 2실링(10%)가 적용됐습니다.

전쟁은 세율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영국과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은 1910년대 중반 일제히 소득세를 올립니다. 이후 잠시 정체되는 듯 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무르익는 1930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상승합니다.

스티브 잡스에 앞서 비틀즈가 ‘애플’을 설립한 걸 알고 계시나요? 1968년 비틀즈는 애플그룹의 애플레코드를 만들었습니다. 이 또한 세금과 관계가 있습니다. 앞서 1965년 법인세가 도입되면서 소득세에서 기업들이 제외됐기 때문입니다.

이 사과를 한입 깨물면? 사진=위키피디아
이 사과를 한입 깨물면? 사진=위키피디아

소득세와 엄청난 세율이 도입된 건 전쟁이 계기였긴 하지만 이후까지 유지된 이유도 있었습니다. 토마 피케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귀족정이었던 영국 의회 분위기가 변화된 것에서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국 의회는 명문귀족과 고위 사제 구성으로 시작해 촌락과 지역 대표자들도 포함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14세기 상원과 하원으로 나누어져 상원은 귀족과 사제들이 차지하고 있었죠.

이 구조가 16세기 헨리 8세의 잉글랜드 국교회, 즉 성공회 설립으로 사제 계급이 물러나면서 귀족들이 상원을 장악하게 됩니다. 권력을 가진 귀족들은 자산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1880년 경 영국 토지의 80%를 700개 귀족 가문, 전체 인구의 0.1%가 차지하고 있었고 이마저도 그중 절반은 250개 가문(0.01%)의 소유였습니다.

또 상원보다 못하다 할지라도 1860년대 초 하원 또한 의석의 3/4은 귀족들의 차지였습니다. 1688년 명예혁명과 제임스 2세 폐위로 세금과 예산 관련 법안 채택 권리를 가지게 된 의회가 귀족들의 차지였던 셈입니다.

대략적인 감이 오시나요? 소득세, 특히 누진소득세 도입은 상원과 하원에 국한돼 있던 권력이 선거권 확대로 권력이 분산되면서 가능했습니다. 1832년 영국은 선거법 개정을 통해 부르주아 시민층에서 선거권을 부여했습니다. 이를 통한 유권자는 성인남성의 5% 수준이었습니다. 이는 지역별 편차는 심했지만 1840년 14%까지 확대됐고, 1884년 농촌과 광산 노동자 계층, 1918년 21세 이상 남성과 30세 이상 여성, 1928년 21세 이상 남녀로 확대되면서 95%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1880년대부터 성인남성의 60%가 비밀투표로 하원의원을 선출하기 시작했고 피케티는 이를 “정치적 경쟁 조건을 완전히 뒤집어” 놓음으로써 “상원의 몰락”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영국의 정당 정치는 올리버 크롬웨에 이은 찰스2세 즉위를 통한 왕정을 지지하는 토리당과 반대하는 휘그당으로 나누어지면서 시작합니다. 토리당은 귀족 성향 토지 지주들의 지지를 받았고 휘그당은 신흥 자본가들을 등에 업고 있었습니다.

1859년 휘그당은 자유당으로 당명을 개정하고 선거권 확대로 인한 새로운 유권자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들에게 우호적인 정강과 이데올리기를 채택합니다. 토리당은 보수당으로 당명을 변경합니다.

1985년 선거에서 보수당에 패배한 자유당의 행보는 재집권 후 1909년 절정이 찾아옵니다. 자유당은 하원에서 ‘인민예산’을 채택합니다. 인민예산은 누직적 종합소득세 제정과 함께 상위 유산상속에 대한 상속세, 대규모 영지에 부과하는 토지세 인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상원은 노동자와 노조에 이전보다 많은 권리를 부여하는 노동법에는 찬성했지만 인민예산에는 거부권을 행사했고, 자유당은 이 분위기를 타고서 다시 선거에서 승리합니다.

이어 1911년 상원은 실제 입법 권한을 모두 상실하면서 자문역할에 그치게 되고, 1945년 영국은 자유당도, 보수당도 아닌 중도좌파 정당 ‘노동당’이 393석을 획득하며 하원을 장악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영국 소득구간 별 소득점유율 추이. 파란색=상위 1%, 주황색=상위 10%, 빨간색=상위 40%, 녹색=하위 50%. 사진=WID
영국 소득구간 별 소득점유율 추이. 파란색=상위 1%, 주황색=상위 10%, 빨간색=상위 40%, 녹색=하위 50%. 사진=WID

시간을 잠깐 앞으로 돌려, 누진소득세 도입은 효과적이었을까요?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상위 소득 0.1%와 0.01%가 납부한 세금은 세전 소득의 50~80%에 이르렀고, 중간층은 15~30%, 하위 50%는 10~20%였습니다. 피케티는 “70~80%의 한계세율이 무엇보다도 세전소득 분배 효과를 발휘”했고 “이같은 한계세율은 생활수준을 낮추거나 자산을 매각하지 않고는 이전 수준의 자본소득 유지를 거의 불가능하게 했고, 또한 기업경영진의 지나친 고액 연봉 책적을 억제하는 효과”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WORLD INEQUALITY DATABASE'에 따르면 영국 소득 상위 1%의 전체 소득 점유율은 1919년 23.7%에서 1978년 6.9%까지 낮아졌습니다. 이후 세율이 조정되면서 2007년 15.1%까지 오릅니다. 상위 10%도 같은 기간 36.8%에서 26.4%, 39.2%로 변화했습니다. 비틀즈는 세금징수원을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대중가수였지만 그들의 입장은 대중들의 입장과 차이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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