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베트남 전쟁, 대체할 수 없는 금의 시대 '브레튼우즈' 를 끝내다
[영화로 보는 경제] 베트남 전쟁, 대체할 수 없는 금의 시대 '브레튼우즈' 를 끝내다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1.07.23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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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후 달러-금태환 체제로 재편된 글로벌 금융시장
'브레튼우즈 체제'의 시작, 미국 경상수지 적자→달러 가치 하락으로 위기
'플래툰'의 베트남 전쟁, 늘어나는 달러 공급량 가속화→금투기, 달러 교환 요구 증가
닉슨쇼크 이은 스미스소니언 체제, 자메이카 협정으로 고정환율제 폐기
플래툰(Platoon, 1986)감독: 올리버 스톤출연: 찰리 쉰(크리스 테일러), 톰 베린저(밥 반스), 윌렘 데포(일라이어스 그로딘), 조니 뎁(개터 레너)별점: ★★★ - 풀 메탈 자켓이 현실적이라면 플래툰은 극적으로 전쟁을 보여준다 -
플래툰(Platoon, 1986)
감독: 올리버 스톤
출연: 찰리 쉰(크리스 테일러), 톰 베린저(밥 반스), 윌렘 데포(일라이어스 그로딘), 조니 뎁(개터 레너)
별점: ★★★ - 풀 메탈 자켓이 현실적이라면 플래툰은 극적으로 전쟁을 보여준다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베트남 전쟁을 그린 미국 영화는 그리 호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 됐던 과거의 영광이 베트남이란 아시아의 국가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하며 사그라진 게 컸던 걸까요.

영화 ‘플래툰’은 반전(反戰)의 시각에서 베트남 전쟁이 어떻게 보이는지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거진 숲에서 미군이 베트남군을 대응하긴 쉽지 않았고, 1964년 8월 통킹만 사건으로 미국이 참전한 후 1973년 3월 철수하기까지, 예상보다 길어진 전쟁은 피해를 늘려만 갔고 전쟁에 대한 회의론을 커지게 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으로 미국 내 반전운동이 격해지고 세계의 경찰로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더 이상 세계 경제가 금을 기준으로 돌아가지 않게 됐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 우리는 흔히 ‘브레튼우즈 체제’의 포기라 부릅니다.

끝이 있었다면 시작도 있었겠죠. 브레튼우즈 체제의 끝을 알아보기 위해 시작지점부터 살펴봅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기 직전 연합군은 미국 브레튼우즈에 모여 전후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대해 논의를 합니다. 미국은 세계대전 동안 가장 큰 채권국이 됐고, 금 보유량도 1938년 145억달러에서 1945년 250억달러까지 늘었습니다. 1947년에는 전세계 금의 70%를 미국이 보유하고 있었고, 그런 미국은 달러 중심으로 금융질서를 재편하고 싶었습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글로벌 중앙은행과 국제통화 '방코르'를 통한 금융질서 재편을 주장했지만, 결국 미국의 주장에 따라 달러와 IMF를 중심으로 한 체제가 탄생합니다. 사진=위키피디아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글로벌 중앙은행과 국제통화 '방코르'를 통한 금융질서 재편을 주장했지만, 결국 미국의 주장에 따라 달러와 IMF를 중심으로 한 체제가 탄생합니다. 사진=나무위키

당시 글로벌 금융질서에 있어 미국의 경쟁자는 파운드화의 영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영국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글로벌 중앙은행 설립과 이 은행에서 생산하는 ‘방코르(Bancor)'를 국제통화로 사용하길 주장했습니다. 금의 유동성 불안은 화폐가치를 낮추고, 이때 무역적자국들은 금리를 올려 만회하려고 하면 수출 감소 효과가 더해져 경제에 더 압박을 받게 됩니다. 이런 불안요소를 글로벌 중앙은행이 통제하자는 것이지요.

하지만 미국은 금 보유량이 많았기에 금 유동성 불안 요인이 적었고, 미국이 세계경제에 기여한 바가 큼에도 방코르 체제 하에서 이자까지 내야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금융질서 재편으로 보기도 어려웠습니다. 달러가 방코르를 중심으로 연동되다 보니 달러 공급 통제권을 상실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협상 대표였던 해리 화이트는 방코르 대신 미국 달러, 중앙은행을 대신해 국제기구를 설립해 차관을 제공함으로써 무역 균형을 회복하자고 제시합니다. 이로 인해 탄생한 게 국제통화기금(IMF)입니다. IMF는 각 국가들이 출자한 자본만큼 대출규모를 제한하는 쿼터(Quota)제를 시행했고 전쟁으로 경제가 무너진 국가는 대출을 받을 수 없기에 만들어진 추가적인 기구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와 세계은행(World Bank)입니다.

이런 미국 주장이 받아들여져 글로벌 금융시장은 달러만이 독점적으로 금 태환을 실시하는 달러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다시 말하면 달러를 중심으로 한 고정환율제가 적용되는 것이죠. 달러는 금 1온스당 35달러 교환비율을 보장하는 대신, 타 국가들은 달러에 대해 자국 통화 교환비율을 고정하되 원칙상 ±1% 내에서 조정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미국이 아닌 나라들은 금을 얻기 위해 자국 통화를 달러로 환전해야 했습니다.

미국이 달러를 기축통화로 내세울 수 있었던 건 그만큼 금 보유량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후 미국의 대외 원조가 늘었고 유럽과 일본이 성장하며 금 보유량이 생각보다 빠르게 감소합니다. 1957년 228억달러이던 미국의 금 보유량은 1960년 178억달러로 줄었습니다.

미국은 수입 증가와 함께 대외 투자 확대로 경상수지 적자를 보고 있었고 이는 달러 공급을 늘리게 만들었습니다. 사진=트레이딩이코노믹스
미국은 수입 증가와 함께 대외 투자 확대로 경상수지 적자를 보고 있었고 이는 달러 공급을 늘리게 만들었습니다. 사진=트레이딩이코노믹스

또한 미국은 전후 석유를 중심으로 한 세계 교역망의 안전을 보장하려 했고, 늘어난 국제무역은 세계의 시장이 돼버린 미국으로의 수출을 늘렸습니다.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났고 고정환율제에서 환율을 조정할 수 없었던 미국은 늘어가는 적자를 바라만 보게 됩니다.

1960년 로버트 트리핀 예일대 교수는 ‘트리핀 딜레마’를 지적합니다. 달러를 중심으로 고정환율제를 시행하는 건 달러의 충분한 공급을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적자가 늘어나면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타 국가들은 달러를 금과 교환하려는 동기가 커집니다. 이런 흐름에 따라 미국 금 보유량은 계속 줄어들고 이를 막기 위해선 미국이 경상수지 흑자를 봐야하지만 그 경우 국제무역이 감소하고 달러 공급이 충분치 않게 됩니다. 결국 미국은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경상수지 흑자와 적자 사이 무엇도 선택할 수 없다는 게 트리핀 딜레마입니다.

이를 만회하려면 달러 보유국들이 일부를 다시 미국에 투자해야 하면 됩니다. 미국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 다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 가치가 오르고 미국에 대한 수출이 늘어나면서 달러 강세에 이자가 높아지기 때문에 투자 가치도 올라갑니다. ‘미국의 무역 적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건 이런 구조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엔딩이 아닙니다. 사진=다음영화
이 장면은 엔딩이 아닙니다. 사진=다음영화

다만 이는 미국 경제가 꾸준한 성장을 거듭한다는 조건 하에서 들어 맞는 얘기입니다. 미국에 대한 수출이 늘어나면 미국 내 기업들의 생산은 줄어들 가능성이 커지고, 그렇다면 미국 경제 성장은 둔화될 것입니다. 달러는 다시 가치가 낮아지고 수출을 늘리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면 달러 가치는 더욱 낮아지겠죠. 달러 가치가 낮아지면 해외로부터의 투자로 감소합니다.

낮아지는 달러 가치에 더해 금 투기꾼들인 ‘골드버그(Gold Bug)'가 금 매입에 나서자 금값이 치솟습니다. 미국은 영국의 영란은행이 은을 대량 매각하는 걸 지지하면서 국제결제은행 회원들에게 보유하고 있는 금의 일부를 영란은행이 관리하도록 설득합니다. 이어 1961년 미국과 유럽 7개국 중앙은행이 모여 2억7000만달러 금을 조달하기로 한 골드 풀(Gold Pool)을 만들어 금값 조정에 나섭니다.

미국 달러 공급량 추이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달러 공급량이 급증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Federal Reserve Economic Data

하지만 베트남 전쟁은 골드 풀로도 감당할 수 없는 달러 공급량을 만들어 냅니다. 이에 따라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던 샤를르 드 골은 골드 풀을 탈퇴하면서 달러를 금으로 교환합니다. 또한 민간 금 투기가 계속되면서 골드 풀은 한계를 느끼고 1968년 3월 해체하지만 금 가격은 1971년 44달러까지 상승합니다. 더 이상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할 수 없다는 회의감이 들면서 대체 통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찰스 P. 킨들버거는 “동그란 것을 네모로 만드는 것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며 가능성을 일축합니다. 달러보다 더 큰 신뢰도를 가진 통화는 없었습니다.

선택은 두 가지 중 하나였습니다. 첫 번째는 금과 달러 교환비율을 재설정하는 것으로, 이는 추가적인 금 투기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금본위제, 즉 브레튼우즈 체제를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1971년 8월 달러의 금태환 정지를 선언했지만 브레튼우즈 체제를 어떻게든 지켜보고자 같은 해 12월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미국을 포함한 10개국이 ▲금 1온스 당 38달러 ▲통화교환비율 ± 2.25% ▲미국 달러화에 대한 평가 절상을 합의하면서 스미스소니언 체제가 이어집니다. 

금 가격 변동성은 달러와 금이 고정적인 비율로 교환될 수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사진=Goldprice.org
금 가격 변동성은 달러와 금이 고정적인 비율로 교환될 수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사진=Goldprice.org

하지만 미국은 또 다시 달러 평가절하를 추진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도 달러를 팔고 금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정해진 고정환율도 지켜질 수 없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1976년 1월 자메이카 킹스턴에서는 자메이카 협정이 통과돼 1978년 4월 정식으로 발효됩니다. 이 협정은 금이 더 이상 화폐 가치를 정하는 척도가 아니며 금의 공식 가격을 폐지하고 IMF에 기금을 반드시 금으로 내야 한다는 규정도 삭제함으로써 브레튼우즈 체제 종말에 못을 박아 버리고 진정한 자유변동환율제 시작을 알립니다.

이로 인해 이제 각 국가의 중앙은행 통제가 더욱 중요해집니다. 브레튼우즈 체제 포기를 선언한 닉슨 쇼크 이후 금의 공급량과 상관없이 각 국가가 화폐를 발행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화폐를 버리고 금 또는 은처럼 실물자산을 선호했고 금 가격은 닉슨 쇼크 이후 1980년 586달러로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경기 변동성은 상당히 줄었습니다. 이제 각 국가의 임무는 금을 확보하는 것보다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잡아야 하냐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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