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같은 마음으로 120시간 노동? 전태일은 또 웁니다 [영화로 보는 경제]
사장 같은 마음으로 120시간 노동? 전태일은 또 웁니다 [영화로 보는 경제]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1.08.05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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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장 노동자로 일하던 전태일, 14시간 노동 70원 현실 목격
올리버 트위스트,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등 성장 이유로 내쳐진 인간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외치며 사라져…또 한 명 잊지 말아야 할 이소선 여사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감독: 박광수출연: 홍경인(전태일), 문성근(김영수)별점: ★★★☆ - 그의 기록을 남긴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감독: 박광수
출연: 홍경인(전태일), 문성근(김영수)
별점: ★★★☆ - 그의 기록을 남긴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근로시간 단축, 주휴제 실지, 건강진단 실시, 환풍기 설치, 여성 생리휴가 보장.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에 이런 내용들이 도입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 회사에 다닐 수 있으신가요? 아니면 얼마를 주면 저런 것들이 도입되지 않은 회사에 다닐 수 있나요?

앞서 경제의 시작은 먹고 사는 일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살기 위한 행동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무엇을 먹고 살 수 있을까란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현재 우리의 모습이 갖춰졌겠죠.

하지만 이제는 이런 말로는 우리의 생각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에 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듯 합니다.

전태일 실제 모습. 사진=전태일기념관
전태일 실제 모습. 사진=전태일기념관

그런 면에서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던 시기는 먹고 사는 방식은 달라 졌을지라도 먹고 사는데만 급급했던 건 원시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하루 16시간, 주말도 없이, 병원은커녕 화장실을 가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고 잠을 깨라며 주사를 놓고, 시대였으니 말 그대로 사람을 갈아 넣어 성장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최근 모 대선후보자가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 52시간제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했다"며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 내용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1967시간으로 멕시코 2137시간에 이어 2위입니다. 일주일에 120시간이면 이후 2주일은 쉬어야 평균 근로시간에 맞출 수 있습니다. 아마 저기서 만난 스타트업 청년들은 ‘사장’ 같은 마음으로 일해 줄 ‘직원’을 원하는 것 아니었을까요?

전태일은 가족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평화시장 견습공으로 일을 하며 노동 현실을 경험합니다. 전태일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려 했던 편지에서 했던 요구를 보면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10~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견습공 수당을 현 70원 내지 100원에서 50% 이상 인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1960년대 라면 하나가 10원, 자장면 15원, 버스요금 8원이었으니, 몸이 으스러져라 일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그런 현실에 돌아오는 말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애국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하루 10시간 근무, 한 달에 이틀-일요일 휴무, 건강진단 등에 대해 당시 경제계는 받아 들이기 어렵다(회사 망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진=전태일기념관

전태일이 처한 상황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과연 당시 영국 노동 실태는 어땠을까요.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1661년 기준 영국은 15세 이하 인구 비율이 29%였지만 1821년 39%로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인구의 절반은 20세 이하의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특히 이 시기 영국은 산업혁명 속에서 아동 노동 착취가 빈번해집니다. 숙련공과 견습생에 관한 법률(the Statute of Artificers and Apprentices)은 주종 관계하에서 숙련공에게 견습생의 활용에 관한 전권을 위임하는 것을 법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본래 지역 빈민구제와 연관이 있었지만 실상은 값싼 노동력을 조달하기 위해 다른 지역 빈민법 대상 아이들을 거래해 자기 지역으로 데려오는 일도 흔하게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이 가정에 종속됐던 여성을 해방시켰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성은 갱도와 같은 남성도 일하기 힘든 곳에서,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14~16시간 노동을 하고도 임금은 남성의 1/3 수준인 값싼 노동력에 불과했습니다. 그래도 하인으로 일하는 것 외에는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현실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970년 '삼동친목회'를 조직해 활동을 펼치던 전태일은 청계천 피복 공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 실태 설문조사를 하고 이 내용이 경향신문에 실리기도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치권과 재계는 전태일의 활동을 '사회주의 조직'으로 낙인 찍습니다.

그리고 1970년 11월 13일, 집회를 열던 전태일은 고용주가 고용한 용역들에게 막히자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이며 마지막까지 집회를 이어 갔고, 병원으로 옮겨진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배가 고프다“였습니다.

전태일 이후 세상은 조금씩 달라 졌습니다. 청계피복노조, 동일방직, 반도상사, YH무역 등에서 노조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하나씩 이루어졌습니다. 결코 그저 얻어진 건 없었습니다. 지금도 사람의 목숨을 희생 해야만 변화의 조짐이라도 보이려 합니다.

이소선 여사의 이야기는 또 다른 영화를 통해 들어볼 수 있습니다. 사진=다음영화
이소선 여사의 이야기는 또 다른 영화를 통해 들어볼 수 있습니다. 사진=다음영화

전태일의 사망 후 그의 가족들은 모두 노동운동에 뛰어듭니다. 특히 모친인 이소선 여사는 전태일의 "어머니, 내가 못 다 이룬 일 어머니가 이뤄주세요"란 말을 실천하시며 ‘청계천 노동자들의 어머니’라 불리웠습니다.

지금과 그때가 다르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만큼이나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가 중요한 세상이 됐습니다. 전태일 이후 우리는 흐르고 흘러 주 52시간을 일하고, 1주일에 이틀은 쉴 수 있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매년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직장으로 출근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0년 기준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수는 882명입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혹시 당신의 생각은 전태일의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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