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는 왜 마녀가 됐나
[영화로 보는 경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는 왜 마녀가 됐나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1.09.30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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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대처의 생각과 의지와 사상, 영화 '철의 여인'
1970년대 경기불황 후 등장한 신자유주의 대표 인물
엇갈린 평가의 중심 '민영화'…성장과 실업을 바꾼 선택
철의 여인(The Iron Lady, 2011)감독: 필리다 로이드출연: 메릴 스트립(마가렛 대처), 짐 브래도벤트(데니스 대처), 로저 알람(고든 리스), 알렉산드라 로치(젊은 마가렛 대처), 해리 로이드(젊은 데니스 대처), 올리비아 콜맨(캐롤 대처)​​​​​​​별점: ★★★★ - 난 메릴 스트립의 연기를 좋아함 -
철의 여인(The Iron Lady, 2011)
감독: 필리다 로이드
출연: 메릴 스트립(마가렛 대처), 짐 브래도벤트(데니스 대처), 로저 알람(고든 리스), 알렉산드라 로치(젊은 마가렛 대처), 해리 로이드(젊은 데니스 대처), 올리비아 콜맨(캐롤 대처)
별점: ★★★★ - 난 메릴 스트립의 연기를 좋아함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수 십 년을 사용한 ‘대처(Thatcher)’가 아닌 ‘로버츠(Roberts)’라 서명을 한 건 자신을 잃지 않겠다는 무의식이 나온 건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두드려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철의 여인’이란 별칭 말고 어떻게 마거릿 대처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마거릿 대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고 싶다면 영화 ‘철의 여인’을 추천합니다. 그녀(라고 불리는 걸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가 어떤 생각과 의지로서 일생을 살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마거릿 대처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1959년 하원 의원으로 당선, 1975년 보수당 당수, 1979년부터 1991년까지 영국 총리 중 가장 긴 11년 7개월의 재임 기간을 보낸 여성 총리입니다.

두 신자유주의 대표 주자가 등장한 건 경제 상황과 연관이 큽니다. 1942년 베버리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부가 국민의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반향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자가 커지고 있었고 윈스턴 처칠의 보수당이 베버리지의 조언을 무시하면서 정권이 노동당에게 넘어갑니다.

마거릿 대처는 신자유주의의 대표 인물인 만큼 평가도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사진=다음영화
마거릿 대처는 신자유주의의 대표 인물인 만큼 평가도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사진=다음영화

노동당 집권기와 마거릿 대처가 총리가 되기 직전 영국은 ‘영국병’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1970년대 영국 경기침체를 일컫는 이 말은 낮은 노동생산성과 높은 복지 비용 지출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미국 또한 같은 시기 독일과 일본의 추격으로 사상 첫 무역적자를 보고 오일쇼크가 겹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경제 사정은 1970~74년을 제외하고 노동당 집권기와 맞물려 있었기에 권력이 옮겨가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만 최초의 여성 총리란 타이틀은 별개로 분명 쉽지 않았습니다.

마거릿 대처의 단호한 의지는 그녀의 과감한 정치 행보에서도 여실히 나타납니다. 마거릿 대처는 정부재정지출이 1981년 GDP 대비 45%에서 1989년 36%까지 줄이며 작은 정부를 지향했습니다. 이와 함께 1970년대 90%에 이르던 영국 소득세율을 40%까지 낮추는 동시에 소비세와 간접세를 상향시켜 만회합니다. 고정 수수료 폐지,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주식매매업자와 브로커의 차별 철폐, 전자 화면 중심 거래로의 전환 등 금융 빅뱅이라 불리는 규제 완화를 시행함으로써 금융업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마거릿 대처를 두고 가장 민감한 이슈는 산업 구조조정과 함께 ‘민영화’입니다. 대표적인 게 석탄산업이죠. 또 다른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 주인공의 아버지와 형은 파업을 진행중이고 그 이유가 산업 구조조정 때문이었습니다.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은 1980년대 영국 북부 더럼 지역 탄광촌으로 마거릿 대처의 민영화에 따라 크게 쇠퇴한 석탄산업에 의존하던 곳입니다. 사진=다음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은 1980년대 영국 북부 더럼 지역 탄광촌으로 마거릿 대처의 민영화에 따라 크게 쇠퇴한 석탄산업에 의존하던 곳입니다. 사진=다음영화

처칠에 이어 수상이 된 클레멘트 애틀리는 잉글랜드 은행과 함께 라디오방송, 전화, 석탄, 철강, 항공, 철도, 가스, 전기 등 산업을 국유화합니다. 특히 석탄산업 노동자들의 힘은 꽤 센 편이었습니다. 1974년 보수당 히스 수상은 광부들의 임금인상 요구를 거부했고 이에 일어난 파업과 이어진 총선거에서 패배하며 사임할 정도였습니다.

마거릿 대처는 이를 다시 민영화함으로써 능률을 올리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공기업은 민영화를 피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실제로 이들 기업의 효율성이 너무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거릿 대처 이전 영국 기업들의 시가총액을 보면 1975년 858억389만달러에서 1980년 359억7571만달러로 오히려 감소합니다. 영국 경제는 1976년 IMF 구제금융을 신청할 정도로 이미 악화돼 있었고 여기에 1978년 말부터 1979년 초 임금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하는 정책에 반발에 일어난 ‘불만의 겨울’ 시기가 겹치며 경기 침체를 겪습니다.

이를 전체 GDP의 10%를 차지하던 공기업 탓으로 돌리는 건 과장돼 보입니다. 하지만 마거릿 대처의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라’는 선택은 영국 노동 생산성이 1981년 독일의 80%에서 1987년 88%까지 오르는 성과를 보입니다.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인플레이션을 잡고 경제성장률(사진 위)을 올린 건 분명하지만 반대로 실업률(사진 아래) 또한 꾸준히 높았던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사진=Data Commons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인플레이션을 잡고 경제성장률(사진 위)을 올린 건 분명하지만 반대로 실업률(사진 아래) 또한 꾸준히 높았던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사진=Data Commons

마거릿 대처에 대한 극명하게 엇갈린 평가는 실업률이 동반됩니다.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1980년 18%에서 1986년 4%로 안정화됐지만 실업률은 1983년부터 1987년 9월까지 10% 이상을 기록합니다. 폴 크루그먼은 ‘인플레이션의 안정은 실업률의 엄청난 상승이라는 대가를 치른 결과’라 말합니다. 1987년 말부터 실업률이 떨어지기 시작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1990년을 지나면서 1993년 다시 10%대까지 올라 버립니다.

여기에는 신자유주의가 피할 수 없는 지적이 나옵니다. 폴 크루그먼은 “1980년대 후반 급속한 고용 확대가 경제적 건실성의 신호는 아니다”며 “수요의 급격한 증가는 1986년 가처분 소득의 4%에서 1988년 0%로 떨어진 민간 저축의 파탄에 기인했다”고 설명합니다. World InEquality Database에 따르면 1980년 7.2%였던 영국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은 마거릿 대처 집권 말기인 1991년 8.2%, 상위 10%는 같은 기간 29%에서 32.5%, 하위 50%는 22.1%에서 19.2%로 하락합니다. 효율성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았습니다.

민영화가 마냥 효율이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영국 민영화 과정에서 전력 산업은 3개 회사로 분산됐고, 발전 업체들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송전업체들은 당시 전력생산력이 부족함이 없었음에도 자체 발전력을 보유하기 위해 과잉 투자를 행합니다. 과잉 투자는 민영화로 가능했고 과잉 생산에 따라 낮아진 전기료는 국민들에게 혜택이었지만, 반대로 석탄 가격 하락으로 급격한 산업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1992년 영국 정부는 남아 있단 탄광 중 반 이상을 폐광하고 광부 70%를 해고하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또 브리티시 텔레콤은 민영화 후 가격 상승에도 서비스 질이 떨어짐에 따라 결국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고, 브리티시 가스는 소비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기업이란 인식이 자라 잡힙니다.

그녀가 추진하던 방식이 사회갈등을 심화시켰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치명적인 과오일지도 모릅니다. 사진=The Guardian 유튜브
그녀가 추진하던 방식이 사회갈등을 심화시켰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치명적인 과오일지도 모릅니다. 사진=The Guardian 유튜브

마거릿 대처가 단지 ‘기업’을 위해 그랬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공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주식을 싸게 대중에게 매각함으로써 대중 자본주의와 함께 중산층에게 수익을 안겨다 준 점을 보면 분명 그렇게 하는 게 국민에게 이롭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 마음 만으로 모든 걸 평가할 수는 없어 보이며, 그 과정이 일방적이었고 그렇기에 부작용도 컸다는 것도 사실로 보입니다. 폴 크르구먼은 “영국 보수주의자들은 시장이 마술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아직도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다”며 “자역독점이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도록 방임하는 건 맹목적인 이데올리기다”고 지적합니다. 마거릿 대처에 이은 존 메이저 총리도 마찬가지로 철도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잦은 사고로 인해 다시 국영화하는 조치가 취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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