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굿바이 레닌', 굿바이 사회주의
[영화로 보는 경제] '굿바이 레닌', 굿바이 사회주의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1.10.15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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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실현하려 한 블라디미르 레닌
2차 세계대전 후 번진 소련식 사회주의…중앙집권적, 국유화 경제체제 중점
경쟁력 상실한 사회주의 모델에 사람들은 서쪽으로, 서쪽으로…버틸 수 없었던 베를린 장벽
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 2003)감독: 볼프강 베커출연: 다니엘 브륄(알렉스), 카트린 사스(크리스틴 커너), 마리아 사이몬(아리안느 커너), 슐판 하마토바(라라), 플로리안 루카스(데니스)별점: ★★★☆ - 사라진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거짓, 사라진 것을 존재하는 듯 믿게 하는 거짓, 뭐가 더 문제일까 -
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 2003)
감독: 볼프강 베커
출연: 다니엘 브륄(알렉스), 카트린 사스(크리스틴 커너), 마리아 사이몬(아리안느 커너), 슐판 하마토바(라라), 플로리안 루카스(데니스)
별점: ★★★☆ - 사라진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거짓, 사라진 것을 존재하는 듯 믿게 하는 거짓, 뭐가 더 문제일까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신념’의 지배를 받은 사람은 무섭습니다. 무슨 말도, 어떤 의견도 통하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그런 신념이 무너졌을 때 찾아오는 충격도 신념이 단단할수록 커집니다. 레닌의 사상을 현실에 적용하려던 사회주의자들 또는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침략(?)을 겪었을 때도 그랬을 겁니다.

영화 ‘굿바이 레닌’은 1989년부터 1990년까지, 독일 통일 시점을 전후로 열성적인 공산당원이었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한 알렉스의 고군분투를 당시 시대상과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제목에서 레닌을 사용한 것처럼 블라드미르 레닌은 여러 국가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레닌이 주장했던 사상을 보면 마르크수 주의를 어느 정도 계승하고 있죠. 이를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버거킹 직원의 상냥한 미소는 과연 임금에 포함돼 있는가? 사진=로튼토마토

마르크스 사상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잉여가치입니다.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생산한 가치가 노동력 이상이고 이를 자본가들이 무상으로 점유하는 건 착취라 보았습니다. 자본가들이 착취할 수 있는 건 자본을 바탕으로 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여기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대한 비판이 나옵니다. 레닌은 마르크스가 목표로 삼았던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직접 관리하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주장합니다.

레닌의 영향력은 사회계급의 투쟁에 관한 이데올로기였던 마르크스주의를 현실화하는데 있었습니다. 마르쿠스주의에 대한 반성도 이런 부분에 맞춰져 있습니다. 1990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20세기 말의 사회철학’ 세미나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은 그 과학성 주장에도 불구하고 한낱 이데올로기일 뿐, 진정한 학문으로 다루어지기 어렵’지만 ‘쓰레기통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부터 건져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마르크스주의를 실생활에 적용하려는 노력은 소련을 통해 나타납니다. 다만 현실은 이상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소련식 사회주의란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에서 계획경제를 특징으로 합니다. 지금 중국에서처럼 공산당이 국가와 일체화가 돼 중앙집권적으로 경제를 운영하는 것이죠. 레닌은 1921년 소련에 신경제정책(NEP)을 진행합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토지의 국유화를 기본으로 추진하지만 농민들의 반발이 심했습니다. 여기에 낙관적 성장 전망에 따라 낮춰놨던 통화가치는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유발했고 기본 생활이 어려워지자 곡물 생산량이 줄어드는 부작용까지 나옵니다. 설상가상 같은 해 가뭄으로 대기근까지 겹치자 소련은 시장에서의 거래와 일부 사기업, 외국자본을 허용하는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합니다.

과정에서의 부작용은 있더라도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의 장점인 추진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레닌에 이어 등장한 스탈린은 1932년 대기근에도 급진적인 국유화와 산업투자를 진행했고 1931년 소련의 공업생산량은 미국 49.3%에 이어 16%를 차지하며 세계 2위 규모를 보입니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은 소련의 성장에 기여합니다. 이로 인해 소련은 1970년까지 서유럽과 비슷한 경제성장률을 이어갈 수 있게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소련식 사회주의가 번지는 계기가 됩니다. 승전국이었던 소련을 통해 독일로부터 독립을 이루었던 국가들은 소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소련 영향력 하에 있던 동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71년부터 1989년까지 동독의 국가원수였던 에리히 호네커는 기업의 국유화를 강행했고 1972년 동독 전체 산업노동자의 99.4%가 국영기업에서 일하는 수준에 이릅니다.

사회주의 경제를 말하면 늘 함께 나오는 얘기가 효율성이죠. 자신의 것을 늘리려는 인간의 욕심을 이기심이라고만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이는 더욱 노력을 하게 만드는 동기이기도 합니다. 동독의 국내총생산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보다 1/3 이상 높았고 일부 제품은 서구권 국가들에 수출도 했습니다.

국경이 허물어지기 전. 이미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경계는 사라져 가고 있었다. 사진=로튼토마토
국경이 허물어지기 전. 이미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경계는 사라져 가고 있었다. 사진=로튼토마토

그런 동독도 서독과 비교해 노동생산성은 60% 낮은 상태였고, 생필품 부족과 이로 인한 높은 물가 수준은 서독으로부터의 원조에 의존하게 만들었습니다. 동독은 1964년부터 1989년 사이 3만명이 넘는 서독 정치범들을 34억마르크란 돈을 받고 풀어주는가 하면, 서독인들이 동독으로 가족들을 방문하는 걸 하루 평균 25마르크에 허용하기도 합니다.

결국 1989년,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변화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동유럽 국가들에게서 일어난 ‘1989년 혁명’은 유학이나 직업 상 필요에 의한 교류를 통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아닌 세상과 접촉한 세대들이 주도했고, ‘페레스트로이카(개혁)’과 ‘글라스노스트(개방)’을 천명한 고르바초프의 등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동독 또한 이런 흐름을 거스르지 못했습니다. 동독은 동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개혁과 개방에 보수적이었고, 지도층이었던 사회주의통일당 내부에서도 “권력을 영속화 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동독 국민들도 이미 마음이 떠나 있었고 1985년 서독 정착을 위한 출국 허가 신청만 40만명에 이르렀습니다.

1989년 11월 9일 국경 개방(?)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귄터 샤보프스키. 사진=나무위키
1989년 11월 9일 국경 개방(?)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귄터 샤보프스키. 사진=나무위키

뒤쳐진 경쟁력에 따른 경기 침체와 높은 물가는 동유럽 국가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 사항이었고, 소련의 지원도 어려워지면서 여러 국가들에게서 시위가 벌어집니다. 동독 또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면서 호네커가 실각합니다. 그리고 1989년 11월 9일 사통당 귄터 샤보프스키는 국경 개방에 대해 ”지연 없이, 즉각“이라고 발표합니다(오보라는 말이 있지만). 같은 해 폴란드와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는 즉각적인 시장경제 전환 프로그램을 합니다.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의 몰락은 국가나 정부, 체제, 시스템의 변화 이전에 사람들의 마음에서 변화가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에 대해 기대했던 것과 같이, 자본주의에서도 이상이 그대로 반영된 나라는 없었습니다.

동유럽 국가 국민들이 1989년 혁명 이후 겪었던 문제 중 하나가 과도한 기대감입니다. 자본주의만 도입하면 바로 잘 살게 될 것이란 비약적 기대감은 오히려 겪어보지 못했던 가격 자율화, 경제적 지원 감소, 시장에서의 경쟁 도입, 대량 실업에 더 절망감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또 이런 기대감은 아직 시장경제 체제가 자리 잡기도 전에 과도한 소비 성향 증가를 동반하면서 절망감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새로운 경제 체제를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며 과거의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사례도 많았고, 이로 인해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은 국가적 문제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빈부 격차 갈등을 키우는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건 한 가지 방법만이 옳다고 맹신하지 않는 거겠죠. ‘20세기 말의 사회철학’ 세미나에서 레닌은 마르크스주의를 일방적인 방식으로 정치교육에 이용함에 따라 일종의 교리로 변질시켰고, 이로 인해 마르크스주의가 과학성이 결여된 이데올리기로 전략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정해진 게 없습니다. 영원한 승리를 거둘 것 같던 자본주의가 다시 사회주의를 불러 일으킨 것 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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