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타고! 따상 하려다 추억만 남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영화로 보는 경제]
버블 타고! 따상 하려다 추억만 남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영화로 보는 경제]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1.11.05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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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블에 GO!! 타임머신은 드럼식', '종이달'
급작스레 오른 자산 가격…버블 3요소 '시장성', '돈과 신용', '투기심'
타임머신 타고 부동산 규제 저지 시도…현실은 급격한 금리 인상에 추락
돌아올 수 없는 1980년대 호황…2005년 토지 가격, 20년 전과 같아져
버블에 GO!! 타임머신은 드럼식(Bubble Fiction: Boom or Bust, バブルへGO!! タイムマシンはドラム式, 2007)
감독: 바바야스오
출연: 히로스에 료코(타나카 마유미), 아베 히로시(시모카와지 이사오), 야쿠시마루 히로코(타나카 마리코), 후키이시 카즈에(미야자키 카오루), 이부 마사토(세리자와 요시미치)
별점: ★★ - 2007년에는 과연 통했던 유머였을까 -

종이달(Pale Moon, 紙の月, 2014)
감독: 요시다 다이하치
출연: 미야자와 리에(우메자와 리카), 이케마츠 소스케(히라바야시 코타), 오오시마 유코(아이카와 케이코), 코바야시 사토미(스미 요리코), 타나베 세이이치(우메자와 마사후미)
별점: ★★ - 사실 딱히 공감이 안되지 않아? 이거든 저거든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역사에 있어 만약을 상상해 보는 건 꽤나 달콤한 일입니다. 다만 깊게 빠지지는 않았으면 하네요. 그 후에 찾아오는 현실은 아마 더욱 쓰디쓰게 느껴질 테니까요.

일본이 만약 1980년대 부동산 거품을 유지했다면 지금 미국과 중국의 G2 체제가 성사될 수 없었을 겁니다. 아마 일본이 미국과 동등한, 또는 (IF)더 거대한 경제를 가진 국가가 됐을지도 모르죠.

영화 ‘버블로 GO! 타임머신은 드럼식’이 그 달콤한 IF를 보여준다면 ‘종이달’은 이게 현실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드럼을 타고 간 과거를 볼까요. 어디서든 사람들이 말 그대로 흥청망청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돈은 계속해서 나오니까요.

자세한 내용은 책은 구입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알라딘
자세한 내용은 책은 구입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진=알라딘

‘버블: 부의 대전환’이란 책에서는 버블 형성 요건으로 3가지를 꼽습니다. 첫 번째가 버블이 형성될 수 있는 ‘시장성’으로, 이 시장은 자산을 쉽게 사고 팔 수 있어야 하며 이때 자산을 분할할 수 있어야 하고 매도인과 매수인을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가 버블을 만들 수 있는 연료인 ‘돈과 신용’으로 낮은 이자율과 느슨한 신용 조건을 말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버블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하겠네요. 바로 ‘투기심’으로 이익을 보려는 마음입니다.

이 세 가지 요건이 어떻게 일본의 버블을 만들었는지 대입해 보겠습니다. 먼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도움으로 일본은 급격히 성장합니다. 특히 한국전쟁은 경제회복에 속도를 더해줬고, 일본은 1955년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합니다. 이어 1960년대 GDP가 144% 증가했고 1980년 금융 선진국이었던 영국과 비슷한 소득수준을 보입니다.

특히 일본 엔화 환율이 낮았기에 수출에 유리했고, 미국이 1971년 브레튼우즈체제를 종식시켰음에도 일본의 보수적 재정정책과 수출로 인한 흑자가 낮은 환율을 유지하게 합니다. 그러자 미국은 달러 평가절하를 위한 국제 협력을 요구했고, 이런 노력이 플라자 합의로 이어집니다.

참 일본스럽다고 할까. 사진=다음영화
참 일본스럽다고 할까. 사진=다음영화

플라자 합의로 인해 더 이상 환율에 기댄 수출에 의존하기 힘들어진 일본은 ▲민간 부문 성장을 위한 규제 완화 ▲엔화에 대한 신용도를 올리기 위한 금융시장 자유화를 추진합니다.

이로 인해 금리는 정부가 아닌 시장이 주도하게 됐고, 일본 중앙은행 금리는 1986년 5월 3.5%로 이전 5% 대비 1.5%p 떨어졌습니다. 이어 1987년 2월에는 GDP 성장률 3%에도 불구하고 금리는 2.5%로 또 낮아졌습니다.

플라자 합의를 계기로 금융시장 자유화가 이루어지며 ‘시장성’이 만들어 졌습니다. 또 그간 수출을 주도하며 외환이 일본 내로 들어왔고 규제가 완화되면서 ‘돈과 신용’도 충족됐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이 돈을 사용하며 ‘투기심’만 보이면 버블은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적자 감소와 수출주도형 성장모델 대신 은행 대출을 통한 부동산 경기부양을 성장 전략으로 선택하며 투기심의 재료를 넣어 줍니다.

앞서 보았듯 저금리 기조라 안전자산은 매력이 없었고 부동산 만이 괜찮은 수익을 보입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오른 건 서비스업이 성장하며 사람들이 도쿄로 몰렸고, 여기서 일본 정부는 공유지를 직접 개발에 나서기 보다는 자금 지원과 도시 계획 규제를 완화하며 민간에 맡기면서 부터 입니다. 다만 민간에서 노렸던 건 되팔아 남는 수익이었죠.

난 둘 다 미스캐스팅. 사진=다음영화
난 둘 다 미스캐스팅. 사진=다음영화

이런 영향에 1985년부터 1987년까지 도쿄를 포함한 일본 6개 주요 도시 땅갑이 무려 44%가 증가합니다. 이는 1990년 초까지 이어졌고, 도쿄 땅값은 같은 기간 런던 대비 40배가 올랐고, 도심지 토지 가격은 207%, 이를 통해 일본 전체 토지 가치는 미국의 5배이자 전 세계 주식시장 가치인 20조 달러의 두 배에 달하는 40조 달러를 기록합니다. 투기를 행할때 사람들이 항상 걱정하는 게 ‘내가 고점이 아닐까’입니다. 이 시기 일본에 대해 찰스 P. 킨들버거는 마치 일본은 ‘영구히 작동되는 기계’를 만들어 낸 것 같다고 표현합니다. 대출을 통해 자산에 투자하고, 자산 가격이 오르면서 생긴 수익은 원금과 이자를 충당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럼 또 다시 대출을 받아 또 다시 투자를 거듭합니다.

그런 기계는 없었습니다. 버블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특히 타격이 컸던 건 일본의 은행들이었습니다. 1988년 9월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NTT와 함께 글로벌 시총 상위에 오른 기업들은 스미토모은행, 아이이치칸교은행, 후지은행, 미쓰비시 은행, 노무라증권, 산와은행, 도카이은행, 미쓰이은행 등 일본의 금융권이 차지했었습니다. 하지만 버블이 꺼지고 종이달에서 더 이상 은행은 선호하는 직장이 아니게 됩니다. 사람들은 눈에 띌까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았으며, 은행에 돈을 맡기는 건 호황기를 겪었던 노인들뿐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젊은 사람들에게 미래가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겠죠. 3% 수익률의 금융상품도 높은 이자율이라며 혹하는 시대가 돼 버린 겁니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옷을 볼 때면 1980년대 일본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사진=NIKKEI Asia
휘황찬란한 조명과 옷을 볼 때면 1980년대 일본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사진=NIKKEI Asia

어째서 버블이 무너졌던 걸까요. 1985년 이후 땅값이 크게 오르자 기업들도 사업보다 땅 투기가 수익이 크다며 부동산 시장을 주도했고, 자금조달 구조가 취약한 게 원인이었습니다. 이때 정부 규제 완화가 기업들이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 환경을 가져다줍니다. 이 돈들은 일본 내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미국 부동산에 투자한 금액은 1985년 19억달러에서 1988년 165억달러로 늘어납니다. 이렇게 기업들이 구입한 부동산은 자산이 되고 대출에서 담보로 작용합니다.

이와 함께 1949년과 1953년에 개정된 법에 따라 재벌기업집단들이 서로의 계열 은행들을 이용해 서로의 계열사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한 곳이 망하면 다른 곳도 망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또 단기투자용 지분에 대한 낮은 세율로 인한 투기화가 버블을 더욱 쌓았고, 상장 요건이 완화되면서 마구 기업을 만들어 상장하며 자금을 조달합니다. 1988년 발행된 신주는 거래 첫 주 평균 7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버블로 고! 타임머신은 드럼식’의 주된 내용은 정부의 부동산 금리 인상 조치를 막으려는 시도입니다. 실제로는 그 전에 정부가 주식시장 과열 분위기를 잡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연착륙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행은 금리를 1989년 4월 2.5%에서 12월 4.5%까지 올립니다. 그리고 도쿄 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된 일본 내 기업 주가 지표인 토픽스 지수는 1990년 1월 5% 하락하더니 같은 해 9월 30%가 떨어집니다. 10월에는 금리가 6%까지 올랐고 토픽스 지수는 정점 대비 46%, 1992년 8월에는 62%가 하락합니다.

화려하지 않고 한듯 안한 듯한 화장은 더 이상 호화로운 삶은 없다는 걸 보여주는 듯 합니다. 사진=다음영화
화려하지 않고, 한듯 안한 듯한 화장은 더 이상 호화로운 삶은 없다는 걸 보여주는 듯 합니다. 사진=다음영화

앞서 기업 자금이 은행에서 나왔고 이는 부동산 시장을 거쳐 주식 시장으로 흘렀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주가가 떨어진 지금 대출 상환 여력이 불안해지고, 은행들은 담보들에 대한 평가를 낮게 잡으며 대출을 줄여 갔습니다. 여기에 1990년 4월 일본 재무부가 부동산 회사들에 대한 대출 규제까지 시작하면서 일본이 경제 성장 원동력으로 삼았던 부동산 시장에서의 거품도 꺼지기 시작합니다. 1995년 도심 토지 가격은 절반으로 떨어졌고, 이후 2005년 정점 대시 76%까지 낮아 져서야 하락세를 멈춥니다. 이때 실질지가는 1980년대와 동일한 수준이었으니 약 20년 간의 후퇴입니다.

종이달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회색빛입니다. 간혹 색감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 장면은 주인공이 남의 돈을 가지고 흥청망청 돈을 쓰는 순간 뿐이죠. 종이달은 사진관에서 가짜 달을 만들어 사진에 함께 찍었던 것에서 유례해 ‘한 때의 가장 행복한 추억’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일본은 정말 행복했을 겁니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지만 '1980's JAPAN'은 그것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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