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테마주에 투자할 '작전'을 세우고 계십니까? [영화로 보는 경제]
'기술' 테마주에 투자할 '작전'을 세우고 계십니까? [영화로 보는 경제]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1.12.21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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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밀레니엄 시대의 도래, 인터넷 발달과 낙관론 대세
IT 업종에 몰리는 투자금…1990년대 말~2000년 초 증시 '후끈'
1998년 미국 금리인하, 김대중 정부 벤처기업 육성정책 한몫
기업이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묻지마 투자'의 끝은 IT기업의 몰락
작전(The Scam, 2009)감독: 이호재출연: 박용하(강현수), 김민정(유서연), 박희순(황종구), 김무열(조민형)별점: ★★★☆ - 밍밍한 엔딩씬을 빼면 흡입력 있는 수작 -
작전(The Scam, 2009)
감독: 이호재
출연: 박용하(강현수), 김민정(유서연), 박희순(황종구), 김무열(조민형)
별점: ★★★☆ - 밍밍한 엔딩씬을 빼면 흡입력 있는 수작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기술의 발전은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자동차와 철도는 전국을 생활권으로 만들어 줬고, 전화는 커뮤니케이션의 범위를, 비행기는 우리의 생활이 한 국가에만 머무르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무엇보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만큼 우리 생활에 변화를 준 경우를 찾긴 힘듭니다. 그리고 그 기술은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 누군가를 벼락부자로 만들어 줬지만 누군가는 쪽박을 차도록 만들었죠. 우리는 이 사건을 ‘닷컴버블’이라 부릅니다.

영화 ‘작전’은 우리나라에서 닷컴버블이 한풀 꺼진 2003년을 배경으로 합니다. 영화에 사용된 작전주는 환경기술을 배경으로 하지만 당시 가장 뜨거웠던 종목은 IT였죠. 통계청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1980년 106.87에서 IMF를 몇 해 앞둔 1994년 1027.37까지 오릅니다. 이어 IMF 외환위기 시기인 1997년 376.31까지 떨어 졌지만 2년 후인 1999년 1028.07까지 오릅니다.

코스피 및 코스닥 지수 추이. 그래픽=김성화 기자, 자료=통계청
코스피 및 코스닥 지수 추이. 그래픽=김성화 기자, 자료=통계청

새로운 밀레니얼 시대를 앞두고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낙관론이 번지고 있던 분위기가 주식시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습니다.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으로부터 승리를 거둔 사건은 상징적이었습니다. 아마존, 야후, 부닷컴, 라이코스 등이 주목 받았고 우리나라도 KTF, KTH, 한글과컴퓨터, 인터파크, 유비케어, 비트컴퓨터 등 IT기업과 벤처기업 주가가 오르던 시대입니다.

아무리 작전주라도 혼자 돈을 넣는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개미들의 돈이 들어와야 먹고 튈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개미들의 잘못이다, 욕심을 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영화도 작전주의 성공을 위해 개미들의 욕심을 자극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나 배경을 보면 단언하기 힘듭니다. 시대의 흐름이란 게 분명히 있었습니다. 닷컴버블의 본거지, 미국에서는 1989년 문서들을 하이퍼링크로 연결하는 ‘월드와이드웹’과 1993년 ‘모자이크’ 브라우저가 탄생하며 닷컴버블의 시초를 닦습니다.

모자이크를 개발한 마크 앤드리슨은 사명을 모자이크에서 넷스케이프로 변경하고 상장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주가가 상승합니다. 1995년 8월 19일 상장한 넷스케이프는 주당 28달러로 시작해 첫날 상한가 75달러를 찍은 후 종가 58달러로 마감합니다. 같은 해 넷스케이프 브라우저 베타버전이 출시되자 연말에는 170달러, 시가총액 65억달러를 기록합니다.

니들이 윈도우95를 아냐? 사진=구글
니들이 윈도우95를 아냐? 사진=구글

앤드리슨은 상장 시도 자체가 회사 홍보 수단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단순 홍보 효과 이상을 거둔 넷스케이프 성공은 많은 기업들이 모방하도록 했고, 이때 상장을 시도하던 회사들에 대한 평가는 실적이 아닌 성장성(이라 쓰고 막연한 바람이라고 읽는)을 내세우게 됩니다. 1999~2000년 사이 상장한 기업들의 60%가 벤처기업이었고, 이는 1년 전만 해도 40% 남짓이었음을 감안하면 확실히 바람을 타버렸습니다.

이런 바람은 무르익는 주식시장에서 흥행을 이어가려는 기업들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더욱 거세졌습니다. 이른바 ‘테이블에 돈 올려놓기’ 전략으로, 공모주 가격을 시장 예상보다 낮은 가격으로 내놓는 것입니다. 마치 협상 테이블에서 돈을 흘린 채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란 뜻으로, 자신이 취하고자 하는 걸 다 가져가지 못해 일종의 손해를 본 상황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닷컴버블에서만큼은 차익을 노리는 투기성 투자자들을 끌어 들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좋아해서 그냥 넣어 봤습니다. 사진=다음영화
팬이라 그냥 넣어 봤습니다. 사진=다음영화

여기에는 미국 정부가 닷컴버블에 앞서 1998년 금리를 인하해 유동성을 공급해 준 것도 한몫 했습니다. 1990년대 미국 가계부채는 GDP의 60%였지만 2000년에는 70%로 증가했습니다. 또 1997년 1월부터 2000년 3월까지, 닷컴버블이 무르익는 시기에 신용거래 대출은 144%가 증가합니다.

1984~1991년 사이 기술회사가 미국 증시에 기업공개를 한 건수는 연당 100건이 넘지 않았지만, 이후 1996년에만 274개, 1999년에는 371개가 됐습니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쉴러에 따르면 당시 S&P500 지수는 1990년부터 1996년까지 115% 올랐고,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은 28이었습니다. 이는 S&P500 기업들 가치가 실제 연간 수익의 28배란 얘기입니다. 1996년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이사회 의장은 주식시장의 비이성적 과열을 경고했지만 S&P500은 1997년 30%, 1998년 26%, 1999년 20%가 오르며 이를 불식시켰습니다. 그리고 200년 3월에는 그린스펀 경고 시점보다 110%가 상승해 있었습니다. 기술기업 비중이 높던 나스닥은 1990년 3월부터 2000년 3월까지 1055%란 상승률을 보여줍니다. 주식을 가지고 있는 개인 투자자 수는 1989년 4210만명에서 1998년 7580만명까지 증가했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벤처기업 정책은 현재 IT 강국의 면모를 다지게 된 시발점이지만 당시 주식시장에서는 과도한 버블을 만든 계기이기도 합니다. 1999년 벤처기업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 사진=국가기록원
김대중 정부의 벤처기업 정책은 현재 IT 강국의 면모를 다지게 된 시발점이지만 당시 주식시장에서는 과도한 버블을 만든 계기이기도 합니다. 1999년 벤처기업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 사진=국가기록원

우리나라는 미국과 조금 분위기가 다릅니다. 미국은 1950년대 말부터 벤처기업 대상 지원이라기보다 넓은 의미에서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미국 닷컴버블은 이런 긴 흐름 속에서 폭발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경제 활성화를 위한 카드로 단기적인 벤처기업 지원 정책을 꺼내들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5년간 벤처기업 2만 개 창업 지원’, ‘9000억원 벤처 지원자금 마련’, ‘창업 벤처기업 3억원 지원’ 등 관련 정책을 내놓았고 1998~2001년까지 매월 벤처기업 500여개가 탄생하며 말 그대로 ‘붐’이 일어납니다. 인터넷 광고의 시초(?)인 골드뱅크커뮤니케이션즈 주가는 상장 후 1년 만에 50배가 올랐고, ‘무료 인터넷 전화’ 새롬기술은 상장 6개월 만에 150배가 상승합니다. 새롬기술은 한때 시총 3조원으로 현대자동차를 앞서기도 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닷컴버블은 외국에 비해 벤처 생태계가 취약했고 이로 인해 피해도 커졌음을 의미합니다. 2000년 5월 LG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초기창업투자 비중은 금액 기준 54.9%로 미국의 23.3%나 유럽의 11.7%보다 훨씬 높다”며 위험성을 지적했고 “우리나라 벤처기업들은 제조업과의 연계가 미흡하고 원천기술력이 부족하며 수익 기반이 취약하다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999년 코스닥 시장과 장외거래에서 큰 폭의 가치상승을 기록하면서 거품 논쟁”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 보고서가 나온 시점은 이미 닷컴버블 붕괴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적어도 아직은 저점이 아닐 수 있다는 의견으로도 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1999년 12월 1028이던 코스피지수는 2000년 5월 731.88, 12월에는 504.62까지 떨어졌습니다. 코스닥 지수는 같은 기간 2561.40에서 1441.50, 525.80을 기록합니다. 이제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시대라 그런지 미국도 비슷한 시기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2000년 4월 10일부터 14일까지 나스닥은 25% 하락했고 S&P500 지수는 10% 떨어졌습니다. 이후 9월까지 회복세를 보이던 나스닥 지수는 또 다시 하락세를 보였고, 2002년 9·11 테러까지 겹치며 2년 반만에 77%가 떨어집니다. S&P500 지수 또한 48%가 하락합니다.

구글 이전 가장 핫했던 라이코스(Lycos)는 굉장히 빠른 사업확장 속도를 보여줬지만 이에 동반되는 수익성은 없었고, 이로 인해 빠르게 몰락하며 닷컴버블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진=구글
구글 이전 가장 핫했던 라이코스(Lycos)는 굉장히 빠른 사업확장 속도를 보여줬지만 이에 동반되는 수익성은 없었고, 이로 인해 빠르게 몰락하며 닷컴버블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진=구글

체력이 약했던 IT 기업들은 급성장만큼 급격히 사라집니다. 온라인 식료품 배송 서비스 ‘웹반’은 31억달러던 시총이 0달러로, B2B 포털업체 ‘버티컬넷’은 2000년 3~4월 사이 78억달러가 감소합니다. 아마존도 이때 주당 106달러에서 6달러까지 떨어집니다. 우리나라 골드뱅크와 드림라인, 메디슨, 하우리, 로커스 등도 닷컴버블 이후 상장폐지됐습니다.

‘버블: 부의 대전환’은 닷컴버블의 이유로 신기술 등장에 따른 거래비용 감소, 인터넷 발달에 따른 주식거래의 용이, 시간외거래의 활성화를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또 미국의 경우 1987년 증시 폭락 때 보여준 그린스펀의 시장개입이 이번에도 있을 것이란 기대도 한몫 했습니다.

무엇보다 벤처기업들의 실질적인 사업능력을 살펴보지 않은 ‘묻지마 투자’가 가장 근본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기대감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미국 닷컴버블 당시 기관들은 개미들보다 한발 빨리 손절했습니다. 2000년 3월부터 6월까지 개인 투자자들이 매수하는 사이 기관들의 수요는 감소하고 이미 있었다고 합니다. 또 내부 관계자들은 나스닥 정점 한 달 전 매도 주식수가 매수 주식수 대비 23배나 많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요. 코로나19와 ESG 대세 시대 속 신기술에 투자하려는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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