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1]임시정부수립기념일은 4월 11일이다
[논리1]임시정부수립기념일은 4월 11일이다
  • 오광택 상해임정연구소
  • 승인 2013.05.0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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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수립기념일과 관련된 문헌에서 4월 13일 이 아닌 4월 11일이 임시정부수립기념일이 되어야 하는 근거를 살펴보고자 한다. 출처의 정확성, 자료의 타당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문헌을 발췌하여 기록함으로서 판단에 도움이 되고자 원본을 그대로 인용 편집한다.
 
국가보훈처가 발행(1999년)한 대한민국임시정부법령집에 편집된 임시정부헌장, 헌법, 선포문, 약헌, 강령, 선언문등에 임시정부 원년 4월 11일에 선포한 사실이 담겨 있다.
 

(1)제1회 임시의정원회의 (1919년 4월 10일 오후 10시~ 4월 11일 오전 10시 폐회)가 회기 일정이다. 본 회의에서 4월 10일①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란 회의 명칭결정과 의장단을 선출하였고, 4월 11일에는 ② 국호와 연호를 제정하였다. ③ 정부를 조직하며 각료를 선출하여 임명등 관제를 조직한다. ④ 임시헌장의 제정 ⑤ 임시정부 명의의 선포문과 정강을 채택한 것이다. 선포문에서 “臨時議政院의 決議로서 臨時憲章을 宣布하노라” 라고 4월 11일 선포하므로서 임정수립일 임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임시헌장 선포문 (민국원년 4. 11)
『“神人一致 中外協應하여 漢城에 起義한 지 三十有日에 平和的 獨立을 三百餘州에 光復하고 國民의 信任으로써 完全히 組織한 臨時政府는 恒久 完全한 自主獨立의 福利로 我 子孫黎民에게 世傳하기 爲하야 臨時議政院의 決議로서 臨時憲章을 宣布하노라”

 
(2)제6회 의정원 회의(1919. 8.18 하오2시~ 9.17, 하오3시 폐회)가 임시정부의 요구에 의하여 1개월의 회기로 개원하였다. 8월 28일 의정원에 제출된 임시헌장은 수차의 심의를 거쳐 9월 11일에 가결되었다. 본 회의에서 결의된 대한민국 임시헌법 본문과 제8장 보칙 58조에서 확인되며 내용은 아래와 같다.
 

대한민국 임시헌법 (1919. 9. 11)
【 我 大韓人民은 我 國이 獨立國임과 我 民族이 自主民임을 宣言하였도다.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였으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고하야 민족의 정권을 영유케 하였도다. 반만 년 역사의 권위를 대하야 이천만 민족의 성충을 합해야 민족의 항구여 일한 발전을 위하야 조직된 대한민국의 인민을 대표한 임시의정원은 민의를 체하야 원년 4월11일 발포한 10개조의 임시헌장을 기본으로 삼아 본 임시헌법을 제정하고 공리를 창명하며 공익을 증진하며 국방과 내치를 주비하여 정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보장이 되게 하노라】
대한민국임시헌법 제8장, 補則
 
제58조. “本臨時憲法은 公布日로부터 施行하고 원년 4월 11일에 공포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본 헌법 시행일로부터 폐지 함
설명) 앞의 임시헌법 선언문과 보칙 제58조에서 확인하듯이 4월 11일이 임시정부수립기념일임이 명백히 나타나 있다, 또한 공포일로부터 시행하였다는 것은 11일 폐회와 동시에 發布(宣言)된 것이다.
 

(3) 대한민국임시약헌 (제5장-제50조 : 1927. 4. 11일) 제5장 보칙
제5조 대한민국 9년 4월 11일부터 시행하고 대한민국 4월 7일 공포한 임시헌법은 동시에 폐지함
설명) 약헌과 같이 공포하고 시행 하였다. 즉 4월 11일 공포와 선포의 개념을 구분하는 것은 잘못 된 해석이다. 4월 11일 폐회하고 2일 지난 13일자에 선포(선언)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 된 것이다

 
(4) 대한민국건국강령 (1941. 11. 28) 을 제정하여 이에 공포함,
임시정부국무위원회 주석 김구,
국무위원 이시영, 조성환, 조완구, 조소앙, 박찬익, 차이석
제1장. 總 綱
강령 5조 : “우리나라의 獨立宣言(독립선언)은 우리 민족의 赫赫(혁혁)한 革命(혁명)의 發軔(발인) 新天地(신천지)의 開闢(개벽)이니 이른바『 우리는 祖國(조국)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我(아) 민족의 自由民(자유민)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만방에 告하여 人類平等의 대의를 闡明(천명)하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誥(고) 民族自存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하라』 하였다. 이는 우리 民族이 3· 1血戰(혈전)을 發動한 元氣(원기)며 同年(동년) 4월 11일에 13도 대표로 조직된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을 세우고 임시정부와 임시헌장 10條를 創造 發布하였으니 이는 우리민족의 자력으로써 異族專制를 顚覆(전복)하며 5千年 군주정치의 舊穀(구곡)을 破壤하고 새로운 민주제도를 건설하며 사회의 階級(계급)을 消滅(소멸)하는 第一步(제일보)의 着手(착수)이었다. (중략)
강령 6조 : 임시정부는 13년 4월에 대외선언을 發表(발표)하고 三均制度의 건국원칙을 闡明하였으니 (중략)

설명) 강녕의 5조 원문에서 원년 4월 11일에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성립을 발포하였음과 강령 6조에서 대외선언을 발표했다고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5) 대한민국임시헌장 (임시의정원 제36회, 7장 62조 改修 : 1944. 4. 22)
·…. (생략). 우리 국가가 强盜日本에게 敗亡된 뒤에 전 민족은 ·…. 피와 눈물로써 민족자유의 回復에 努力하여 3· 1大革命에 이르러 全民族의 要求와 時代의 趨向(추향)에 順應하여 政治. 經濟, 文化, 其他 一切 制度에 自由, 平等및 進步를 基本精神으로 한 새로운 大韓民國과 臨時議政院과 臨時政府가 建立되었고, 아울러 臨時憲章이 制定되었다·….(생략)
제3장, 임시의정원
제21조. “임시의정원은 매년 4월 11일 임시정부 사무소에서 自行召集함. 臨時議政院의 會期는 3週日로 定하고…….(이하 생략)
제6장. 회계
제60조 회계연도는 4월 1일자부터 익년 3월말까지로 定함
제62조 본 헌장은 공포일로부터 시행하고 대한민국22년 10월9일부터 시행한 임시약헌은 폐지함, 와 같이 임시헌법, 강령 등에서 보듯이 공포일로부터 시행하고 있다.

 
(6) 김삼웅 엮음 <抗日 民族宣言> 항일자료집. 한겨레비평총서(36)
충북중앙도서관 소장
p56쪽, 대한독립선언서 대한민족대표 (출전: 독립운동사 자료편)와
p67쪽, 대한민족대표선언문 박은식외 (출전: 對日民族宣言 , 一又文庫 간)는 동일 내용으로 (일부발췌)
“ 3월 1일에 우리 대한의 독립을 선언함으로부터 우리 2천만 민족은 心과 聲을 합하여…….(이하 중략) 대한민국 원년 3월 1일에 이이 우리 민족의 자유민임을 선언하고 인하여 금년 4월 10일에 임시의정원과 임시국무원이 성립되니 이에 우리 민족은 우리 민족의 일치화합한 의사와 희망에서 나온 대한민국의 국민이 된지라.·…….(중략)
만일 일본이 여전히 한·일 양 민족의 구원(久遠)한 이익과 세계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무시하고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의 점유를 계속할진대 우리 민족에게는 오직 최후의 혈전이 있을 분이니 3월 1일의 공약의 제3조를 준(俊)하여 최후의 1인까지 전(戰)함을 불사(不辭)할지며 아울러 이는 자유와 생명의 전쟁이매 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택하지 아니하기를 이에 성명하노라.”
공약 3장
1. 질서를 엄수하여 난폭한 행동이 없을 것
2. 부득이 자위의 행동에서 나왔더라도 부인·소아 및 노병 자에게는 절대로
해(害)를 가(加)치 말 것
3. 전 국민 일치로 독립의 요구를 강하게 표하되 최후의 일(一)인까지 할 것
대한민국 원년 10월 31일
대한민국 대표(30명)
박은식. 박 항, 박세충, 안정근, 안종술, 조선홍, 오능상, 허 완, 최정식,
최지화, 도인권, 정운시, 연병우, 신태화, 한우삼, 고일청, 이상노, 이락순,
이병덕, 이종오, 이화숙, 이근영, 명제세, 김 구, 김희선, 김경하, 김찬성,
김가준, 김기욱, 김 철.

 
(7) 姜德相 <上海임시정부의 수립과 呂運亨> p6~7
여운형은 첫 회합이 있은 후 그룹이 한 활동에 대해. “그로부터 상해 프랑스 조계의 하비로(霞飛路)329 (보창로 329)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조선내 독립운동의 상황을 각국 신문 통신에 게재하여, 파리의 김규식, 미국의 이승만에게도 그 상황을 상세히 보고” 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다…….(생략)
여운형이 말한 “독립운동이 상황을 각국 신문·통신에 게재하고 파리 김규식에게도……. ‘운운하며 가장 구체적으로 전개한 것은 그러한 정보를 실은 그룹의 기관지 『독립신보』(등사판, 일간)의 발간인데, 그 창간호는 3월 28일이었다. 당초는 서울에서 비밀리에 발간한 『조선독립신문』의 번재판(翻載版)에 가까웠는데 압정에 항거하는 민중의 투쟁을 전하고 있다. 주필은 김흥서(금릉대)가, 그리고 백남규(재일 신아동맹당), 배동선(금릉대), 이광수, 김성근 등이 편집에 참가했다. 영문판도 있어서 외국인들이나 각 신문사에 배포하고 있었는데, 그 면면을 봐도 여운형 등 신한청년당 그룹임에 틀림없다. 1호에서 10호(4월 11일)까지 활동이 확인되는데, 4월 10일자는 임시정부 수립을 알리는 호의였다. 그런 의미에서『독립신보』는 임시정부를 조직하기 위한 별동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8) 김형석 편저 一齊 金秉祚의 民族運動 . 재단법인 남강문화재단출판부 p195
부록, 김병조 韓國獨立運動史 上 上海 宣民社 1920, p253
제4장 大韓民國은 여단일(如端日)이 방승(方昇)하고 臨時政府는 약지주흘입(若砥柱屹立)이라
치의정원(置議政院) 개정관제 : 4月 11日에 各 地方 代表會를 開하고 임시의정원을 設置하여, 先에 선포(宣布)된 관제(官制)를 개(改)하여 執政官을 폐(廢)하고 헌법을 다소 개정하여 국무원을 내지 本部와 合議 選擧하니, 국무총리 이승만, 내무총장 안창호, 외무총장 김규식, 법무총장 이시형, 재무총장 최재형(亨), 군무총장 이동휘, 교통총장 문창범 제인(諸人)이라. 임시정부는 상해에 치(置)하고 政府 成立을 公布하다

 
(9) 김행식 편져, 일제의 한국침략과 저항사 도서출판 우삼, (사)독립정신선양회. 2001 p.400 : (국민선언서)
○ 의친왕(義親王)의 피체 - 전 광무황제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李堈)이 왜경의 철조망을 요행으로 탈출하여 미복(微服)으로 3등차를 탑승하고, 경의선을 경유하여 상해임시정부에 도착코자 하다가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 안동현에 이르러서 적 경찰에게 탄로되었다. 그래서 13일에 서울로 도로 붙들려 돌아가 총독부 소속이 한 작은 정자(亭子)에 유치(幽致)되었다.
○ 또한 의친왕은 김가진·전협(全協) 등 32현과 더불어 국민의 선언서(國民宣言書)를 발표하였다. 그 선언서는 가로되, “반만년 역사의 권위와 2천만 민중의 성충(誠忠)을 의지하여 우리 국가의 독립국 됨과 우리 민족의 자유민 됨을 천하 민국에 선언하며 또 증언하노라.····.(생략) 세계 개조의 민족 자결의 의논이 천하에 높이 오르고 우리나라의 독립과 우리 민족의 자유의 소리가 우내(宇內)에 가득 넘치는 지라, 드디어 3월 1일에 독립을 선언하고 4월 10일에 정부를 건설하였도다.
…….(중략), 만일 일본이 끝내 과오를 뉘우침이 없다면 우리 민족은 부득이 3월 1일의 공약에 의하여 최후의 일인까지 최대의 성의와 최대의 노력으로 혈전(血戰)을 불사코자 이에 선언하노라.” 여기에 연서한 사람은 의친왕 이하 양정, 이정, 김상열, 정상무,·····등 33인이었다. 손정도 의장은 상해에 도착한 의친왕을 파리까지 보내는 책임을 맡고 미리 상해에 온 것인데 의친왕이 도중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니 손정도의 준비한 탈출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10) 김희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세계사적 의의』독립기념관 2006. 4월호p6~7 1945년 4월 11일자 임시의정원 속기록에 의하면 “4월 11일은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수립 제26회 기념일이므로 의회개원식과 성립기념식을 합병거행하다”라고 명기 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 각 문헌은 아래와 같다 ( 편의상 이하생략, 중량으로 내용을 축소함)
1. 臨時議政院紀事錄 第1回 (1919. 4. 11)
대한민국임시헌장 선포문 (민국원년 4. 11)
『“神人一致 中外協應하여 漢城에 起義한 지 三十有日에 平和的 獨立을 三百餘州에 光復 하고 國民의 信任으로써 完全히 組織한 臨時政府는 恒久 完全한 自主獨立의 福利로 我 子孫黎民에게 世傳하기 爲하야 臨時議政院의 決議로서 臨時憲章을 宣布하노라”』

一. 會期 大韓民國 元年 四月十日 下午 十時에 開會하야 四月十一日 上午 十時에 閉會하니라
二. 議場  中華民國 上海法界 金神父路
三. 議員
 玄楯 孫貞道 申翼熙 曹成煥 李光 李光洙 崔謹愚 白南七 趙蘇(素)昂 金大地 南亨祐 李會榮 李始榮 李東寧 趙琬九 申采浩 金澈 鮮于爀 韓鎭敎 秦熙昌 申鐵 李渶根 申錫雨 趙東珍 趙東祜 呂運亨 呂運弘 玄彰運 金東三

四. 本院名稱의 決定
 四月十日 開會 闢頭에 本會의 名稱을 臨時議政院이라 稱하기로 趙蘇(素)昂의 動議와 申錫雨의 再請으로 可決되니라

五. 議長 副議長 書記의 選擧
 四月十日에 正式議長 一人을 選擧하자는 趙蘇(素)昴의 動議가 有하매 金大地의 臨時議長 一人을 選擧하자는 改議가 有한 後에 李光洙의 正式議長 一人, 副議長 一人, 書記 二人을 選擧하자는 再改議가 可決된 後에 選擧方法은 無記名單記式投票로 選擧하자는 呂運亨의 動議가 可決되야 投票를 行한 結果로 議長은 李東寧, 副議長은 孫貞道, 書記는 李光洙 白南七이 當選되니라

六. 書記發言權의 許與에 關한 決議
 四月十一日에 書記도 議員中으로 選擧하야 發言權을 與하자는 韓鎭敎의 動議가 可決되니라

七. 臨時政府에 對한 決議
 四月十日에 臨時政府에 對한 討議를 開始하기로 崔謹愚의 特請이 可決되야 討議를 開始할새 本國에셔 組織된 臨時政府는 否認하자는 白南七의 動議와 李渶根의 再請이 有하엿스나 此는 否決되고 本問題의 討議가 長時間을 亘하다가 臨時政府의 所在만 表明하고 官制와 國務員은 別로히 議決하자는 趙蘇(素)昂의 動議와 鮮于爀의 再請이 可決되니라

八. 國號 · 官制 · 國務員에 關한 決議와 人選
 四月十一日에 國號 官制 · 國務員에 關한 問題를 討議하자는 玄楯의 動議와 趙蘇(素)昂의 再請이 可決되야 討議에 入할새 先히 國號를 大韓民國이라 稱하자는 申錫雨의 動議와 李渶根의 再請이 可決되니라
次에 官制에 入하야 執政官制를 總理制로 改하자는 崔謹愚의 動議와 李渶根의 再請이 可決되고 法務部와 軍務部를 增設하자는 申錫雨의 動議와 白南七의 再請이 可決되니라 次에 國務員에 入하야 左와 如히 決定되니라
 가.國務總理는 漢城에셔 組織된 臨時政府의 國務總理인 李承晩으로 選擧하자는 申錫雨의 動議와 趙琬九의 再請이 有한 後에 申采浩가 李承晩은 前者에 委任統治及 自治問題를 提唱하던 者이니 其 理由로써 國務總理로 信任키 不能하다는 辨論이 有한 後에 國務總理도 別노히 選擧하자는 申采浩의 改議와 韓鎭敎의 再請이 可決된 後에 李承晩과 其 外에 候補者 三人을 薦하야 投票選擧하자는 趙蘇(素)昂의 動議와 李渶根의 再請이 有하매 候補者 三人을 薦하되 方法은 口頭呼薦하야 現出席員 三分之二의 可決로써 被薦케 하자는 崔謹愚의 改議와 呂運亨의 再請이 可決되야 候補者를 呼薦할새 趙蘇昂은 朴泳孝를 薦하야 否決되고 申采浩는 朴容萬을 薦하야 否決되고 金東三은 李商在를 薦하야 否決되고 玄彰運은 申采浩를 薦하야 否決되고 呂運亨은 安昌浩를 薦하야 可決되고 申錫雨는 李東寧을 薦하야 可決되고 玄楯은 曹成煥을 薦하야 否決되고 李渶根은 金奎植을 薦하야 否決되고 玄楯은 李會榮을 薦하야 否決된지라 呼薦은 中止하고 旣히 被薦된 人中에서 正式國務總理를 選擧하되 選擧方式은 無記名單記式投票로 行하자는 趙素昂의 特請이 可決되야 投票를 行한 結果로 李承晩이 當選되니라
 나.內務總長은 漢城에셔 組織된 臨時政府의 內務總長인 安昌浩로 選擧하자는 申錫雨의 動議와 趙琬九의 再請이 可決되니라
 다.外務總長은 金奎植을 選擧하자는 趙素昂의 動議가 可決되니라
 라.財務總長은 候補者 三人을 公薦하야 投票選擧하자는 崔謹愚의 動議와 呂運弘의 再請이 可決되야 候補者를 呼薦할새 申錫雨는 南亨祐를 薦하야 可決되고 呂運弘은 李大衡를 薦하야 否決되고 崔謹愚는 金正鎬를 薦하야 可決되고 孫貞道는 崔在亨을 薦하야 可決된 後에 投票를 行한 結果로 崔在亨이 當選되니라
 마.交通總長은 漢城에셔 組織된 臨時政府의 交通總長인 文昌範으로 選擧하자는 申錫雨의 動議와 韓鎭敎의 再請이 可決되니라
 바.軍務 法務 兩部 總長의 選擧方法은 財務總長 選擧方法과 同一한 方法을 取하자는 申錫雨의 特請이 可決되야 先히 軍務總長을 呼薦할새 申錫雨는 李東輝를 薦하야 可決되고 曹成煥은 柳東悅(說)을 薦하야 可決되고 呂運弘은 朴容萬을 薦하야 可決된 後에 投票를 行한 結果로 李東輝 가 當選되니라
 사.法務總長을 呼薦할새 申錫雨는 李始榮을 薦하야 可決되고 韓鎭敎는 南亨祐를 薦하야 可決되고 呂運弘은 趙素昂을 薦하야 可決된 後에 投票를 行한 結果로 李始榮이 當選되니라

九. 國務院 秘書長의 設置決議와 及 其 人選
 四月十九日에 國務院에 秘書長의 職을 設하고 人員을 選하자는 申錫雨의 動議와 玄楯의 再請이 可決된 後에 選擧方法은 二人을 公薦하야 投票 選擧하자는 申錫雨의 特請이 可決되여 申錫雨는 趙琬九를 薦하야 可決되고 玄楯은 趙素昂을 薦하야 可決된 後에 投票한 結果로 趙素昂이 當選되니라

十. 各部次長의 人選
四月十一日에 各部次長을 左와 如히 選擧하니라
 가.內務次長을 選擧할새 崔謹愚는 申翼熙를 薦하야 可決되고 韓鎭敎는 李光洙를 薦하야 可決된 後에 投票를 行한 結果로 申翼熙가 當選되니라
 나.外務次長을 選擧할새 崔謹愚는 玄楯을 薦하야 可決되고 呂運亨은 申錫雨를 薦하야 可決된 後에 投票를 行한 結果로 玄楯이 當選되니라
 다.財務次長을 選擧할새 漢城에서 組織된 臨時政府의 財務次長인 李春塾으로 選擧하자는 韓鎭敎의 動議와 呂運亨의 再請이 可決되니라
 라.交通次長을 選擧할새 韓鎭敎는 鮮于爀을 薦하야 可決되고 李渶根은 金大地를 薦하야 可決된 後에 投票를 行한 結果로 鮮于爀이 當選되니라
 마.軍務次長을 選擧할새 玄彰運은 曹成煥을 薦하야 可決되고 李光洙는 金榮璿을 薦하야 可決된 後에 投票를 行한 結果로 曹成煥이 當選되니라
 바.法務次長을 選擧할새 韓鎭敎는 南亨祐를 薦하야 可決되고 呂運亨은 李光洙를 薦하야 可決된 後에 投票를 行한 結果로 南亨祐가 當選되니라

十一. 臨時憲章의 議決
 四月十一日에 臨時憲章을 起草討議할새 審査委員으로 申翼熙 李光洙 趙素昂 三人을 薦하고 審査案을 三十分 以內로 報告케 하자는 玄楯의 動議와 申錫雨의 再請이 可決되야 三十分後에 審査報告가 有한 後에 左와 如한 改正이 有하니라
第六條에 兵役을 添加하기로 申錫雨의 動議와 玄楯의 再請으로 可決되고
第八條에 舊皇室優待條件에 對하야는 一生이라는 期間을 削除하기로 趙琬九의 動議와 趙素昂의 再請으로 可決되니라
右와 如히 改正이 有한 後에 臨時憲章을 全部 通過하기로 可決되니 其 全文은 如左하더라

  大韓民國臨時憲章
 第一條 大韓民國은 民主共和制로 함
 第二條 大韓民國은 臨時政府가 臨時議政院의 決議에 依하야 此를 統治함
 第三條 大韓民國의 人民은 男女貴賤及 貧富의 階級이 無하고 一切 平等임
 第四條 大韓民國의 人民은 信敎 · 言論 · 著作 · 出版 · 結社 · 集會 · 信書 · 住所 · 移轉 · 身體及 所有의 自由를 享有함
 第五條 大韓民國의 人民으로 公民資格이 有한 者는 選擧權及 被選擧權이 有함
 第六條 大韓民國의 人民은 敎育 納稅及 兵役의 義務가 有함
 第七條 大韓民國은 神의 意思에 依하야 建國한 精神을 世界에 發揮하며 進하야 人類의 文化及 和平에 貢獻하기 爲하야 國際聯盟에 加入함
 第八條 大韓民國은 舊皇室을 優待함
 第九條 生命刑 · 身體刑及 公娼制를 全廢함
 第十條 臨時政府는 國土回復後 滿一個年內에 國會를 召集함

十二. 臨時議政院法 起草委員選定
 四月十一日에 臨時議政院法 起草委員을 申翼熙, 孫貞道, 趙素昂, 李光洙로 選定하야 院法을 起草케 하자는 申錫雨의 動議가 可決되니라


 
2. 臨時議政院紀事錄 第2回 (1919. 4. 22)
一. 會期
 大韓民國 元年 四月二十二日 下午 九時에 開會하야 二十三日 上午 九時에 閉會하니라

二. 會場  中華民國 上海法界 金神父路

三. 議員
 玄楯 孫貞道 申翼熙 曹成煥 李光 李光洙 崔謹愚 白南七 趙素昂 金大地 南亨祐 李會榮 李東寧 李始榮 趙琬九 申采浩 金澈 鮮于爀 韓鎭敎 秦熙昌 申鐵 李亨根 申錫雨 趙東珍 趙東祜 呂運亨 呂運弘 玄彰運 崔浣 尹顯振 金弘敍 梁濬明 洪震義 韓南洙 金弘祚 趙永晉 李致俊 金宇鎭 閔濟鎬 閔忠植 玉成彬 柳璟煥 裵亨湜 徐成權 金龜(九) 張正櫓 金秉祚 安承源 趙元昌 金應繕 金應燮 李永賛 韓基岳 金鉉軾 李春塾 李鳳洙 鄭元澤 柳範奎 李駜珪 尹愿三 金鼎穆 李圭廷 高漢 金甲 金弘權 白南圭 李起龍 金甫淵 兪政根

四. 國務院秘書長及 四次長의 辭免請願受理
 四月二十二日에 國務院秘書長 趙素昂, 內務次長 申翼熙, 軍務次長 曹成煥, 法務次長 南亨祐, 財務次長 李春塾의 辭職請願을 受理하니라

五. 次長制廢止와 委員制使用의 決議
 四月二十二日에 臨時政府 官制에 關하야 各部 次長制를 廢止하고 委員制를 使用하자는 徐丙浩의 動議와 金甫淵의 再請으로 一致 可決되니라

六. 各部委員의 人選
 四月二十二日에 右와 如한 決議가 有한 後에 各部委員의 選擧方法은 選擧委員 十五人을 選定하야 該委員이 選薦한 人員을 本院에셔 議決하자는 崔謹愚의 動議와 金宇鎭의 再請으로 可決된 後에 選擧委員의 選定은 法務總長, 議長, 副議長, 前秘書長, 前內務次長, 前軍務次長, 前財務次長及 議員中 八人으로 하되 議員中 八人은 議長이 自辟케 하자는 呂運弘의 動議와 徐丙浩의 再請으로 可決되야 議長이 徐丙浩, 金應燮, 韓南洙, 金龜(九), 李起龍, 曹檉, 金大地, 尹顯振을 自辟하니라
右選擧委員이 選薦한 政府委員을 議決할새 一部式 朗讀한 後에 斟酌決定하자는 金應繕의 動議와 裵亨湜의 再請으로 可決되야 左와 如히 決定되니라
 가.國務院委員은 趙琬九, 趙東祜, 趙蘇(素)昂, 洪濤, 李春塾 五人을 選薦한지라 右를 全部 選任하자는 裵亨湜의 動議와 姜大鉉의 再請이 可決되니라
 나.內務部委員은 申翼熙, 尹顯振, 徐丙浩, 韓偉健, 趙東珍, 裵亨湜, 金龜(九), 崔謹愚, 金大地, 林承業 十人을 薦擧한지라 右를 全部 選任하자는 裵亨湜의 動議와 金練洙의 再請이 可決되니라
 다.外務部委員은 玄楯, 呂運亨, 張健相, 白南七, 李光洙, 李光 六人을 薦擧한지라 右를 全部選任하자는 金宇鎭의 動議와 兪政根의 再請이 可決되니라
 라.財務部委員은 金澈, 金應繕, 宋世浩, 具榮泌, 徐成權, 崔浣, 金弘權, 韓南洙 八人을 薦擧한지라 右를 全部 選任하자는 兪政根의 動議와 金甫淵의 再請이 可決되니라
 마.法務部委員은 南亨祐, 金應燮, 韓基岳 三人을 薦擧한지라 右를 全部選任하자는 呂運弘의 動議와 李鳳洙의 再請이 可決되니라
 바.軍務部委員은 曹成煥, 金榮璿, 申澈, 朴嵩秉, 金忠一 五人을 薦擧한지라 右를 全部 選任하자는 金甫淵의 動議와 金宇鎭의 再請이 可決되니라
 사.交通部委員은 鮮于爀, 梁溶明, 李範敎, 高漢, 尹愿三, 李圭廷, 孫晉衡, 金溍源, 李永賛, 李鳳洙, 林玄 十一人을 薦擧한지라 右에 對하야 申國權 을 添入하야 全部 選任하자는 金宇鎭의 動議와 李起龍의 再請이 可決되니라

七. 臨時議政院 成立 發佈에 關한 決議
 內地에 在한 國民大會에 對하야 臨時議政院이 成立된 것을 發佈하자는 李春塾의 動議와 趙琬九의 再請이 可決되니라

3. 臨時議政院紀事錄 第3回 (1919. 4. 25)
一. 會期 大韓民國 元年 四月二十五日 下午 四時에 開會하야 同日 下午 十二時에 閉會하니라

二. 會場 : 中華民國 上海法界 金神父路

三. 議員
 玄楯 孫貞道 申翼熙 曹成煥 李光 李光洙 崔謹愚 白南七 趙蘇(素)昂 金大地 南亨祐 李始榮 李東寧 李會榮 趙琬九 申采浩 金澈 鮮于爀 韓鎭敎 秦熙昌 申鐵 李渶根 申錫雨 趙東珍 趙東祜 呂運亨 玄彰運 崔浣 尹顯振 金弘敍 梁濬明 洪震義 韓南洙 金弘祚 趙永晉 李致俊 金宇鎭 閔濟鎬 閔忠植 玉成彬 柳璟煥 裴亨湜 徐成權 金九 張正櫓 金秉祚 安承源 趙元昌 金應變 金應繕 李永賛 韓基岳 金鉉軾 李春塾 李鳳洙 鄭元澤 柳範奎 李駜珪 尹愿三 金鼎穆 李圭廷 高漢 金甲 金弘權 白南圭 李起龍 金甫淵 兪政根 徐丙浩 金東三

四. 臨時議政院法 議決
 四月二十五日에 臨時議政院法 起草案을 通過할새 起草委員中 申翼熙가 全部를 一次朗讀하고 다음에 逐條하야 可否를 決定할새 第一條를 通過 可決된 後에 規則을 輕率히 通過하면 後日 實行上 障礙가 不無하리니 起草案을 謄寫하야 各議員의게 分配硏究한 後에 다시 會集하야 討議決定하자는 徐丙浩의 動議와 閔忠植의 再請이 有하엿스나 審査委員 五人을 選擧하야 一時間 後에 審査報告케 하야 可否를 議決하자는 呂運亨의 改議와 玄楯의 再請이 可決되니라 右와 如히 可決된 後에 金鉉軾이 動議하되 審査委員 選擧方法은 口頭로 十人을 呼薦하야 其中에서 五人을 投票選定하자 하매 李起龍의 再請이 有하여 可決된지라 臨時議政院法 審査委員을 呼薦할새 李春塾 裴亨湜 柳璟煥 趙東祜 南亨祐 金大地 洪濤 徐丙浩 李光 崔謹愚 諸人이 呼薦된 後 投票한 結果로 南亨祐 李春塾 徐丙浩 張濤 李光 五人이 被選되니라 卽時에 臨時議政院法을 審査하기 爲하야 一時間 停會하엿다가 繼續 開會하야 決議할새 審査委員 李春塾이 審査한 案을 全部 朗讀한 後에 滿場一致로 可決되니라

五. 議員選擧의 件과 選擧細則及 臨時政府官制製定의 方法에 關한 決議
 四月三十日 以內로 議員을 選擧할 것과 選擧細則及 臨時政府官制 製定에 關한 件을 臨時政府國務院에 委任하기로 李光洙의 動議와 呂運亨의 再請으로 可決되니라

 
4. 大韓民國臨時議政院法 (1919. 4. 25)
  第一章 綱 領
第一條 議政院은 各 地方人民의 代表議員으로 組織
第二條 議員의 資格은 大韓國民으로 中等敎育을 受한 滿 二十三歲 以上의 男女에 限함
 議員의 額數는 地方人口 多寡에 依하야 定하되 三十萬에 議員 一人을 定하고 成數未及에 對하야도 一人을 選定함을 得함
 人口 精査前에는 下에 依하야 定함
  京 畿 道 六人 忠 淸 道 六人   慶 尙 道 六人 全 羅 道 六人
  江 原 道 三人 咸 鏡 道 六人   黃 海 道 三人 平 安 道 六人
  中領僑民 三人 俄領僑民 三人   美領僑民 三人
第三條 議員 任期는 二個年으로 하되 每年에 三分의 一을 改選함을 得함
第四條 議長 副議長은 議員이 互選함
第五條 本院 議員이 行政官吏로 任命되는 時난 票決權이 無함
第六條 議政院의 職權은 下와 如함
 一 一切 法律案을 議決함
 二 臨時政府의 豫算 及 決算을 議決함
 三 全國의 租稅 貨幣 及 度量衡의 準則을 議決함
 四 公債募集과 國庫負擔에 關한 事項을 議決함
 五 國務員 駐外公使를 選定함
 六 宣戰媾和와 條約締結에 同意함
 七 大赦, 特赦, 減刑, 復權에 同意함
 八 臨時政府에 諮詢事件을 答覆함
 九 人民의 請願을 受理함
 十 質問書를 國務院에 提出하야 出席答覆을 要求함
 十一 臨時政府에 咨請하야 官吏의 納賄와 其他 違法한 事項을 査辦함을 得함
 十二 國務院의 謀叛行爲가 有할 時난 出席員 四分의 三 以上의 可決로 彈劾함을 得함
 十三 國務院의 失職 或 違法이라 認할 時난 出席員 三分의 二 以上의 可決로 彈劾함을 得함
第七條 議政院의 議決事項은 臨時政府 國務總理의 公布로 施行함
第十二章 經 費
第五十六條 議政院 經費난 另定함
第十三章 附 則
第五十七條 本法은 公佈日로붓터 施行함
▪ [延世大 現代韓國學硏究所, 『雩南李承晩文書』 東文篇 6, 127~142쪽]

 
5. 한·일관계사료집 4권

第三章 獨立運動에 關 略史
 三月一日에 大韓民國獨立을 宣言다 盖韓國民族이 十年間 霹靂의 手段 及 霜雪苛政下에셔 深思窮慮바 但 日本의 鐵鏈을 抵死脫出 外에 更無他技바 擧國輿論이 不謀而同야 一代의 雅望을 集中 各宗敎의 頭腦와 各團體의 首領이 京城에 會集야 正義와 人道로 興復을 圖할 孫秉熙, 吉善宙, 李弼柱, 梁漢黙, 劉如大, 李甲成, 金昌俊, 權東鎭, 權秉德, 羅龍煥, 羅仁協, 梁甸伯, 白龍城, 金完圭, 金秉祚, 李明龍, 李昇薰, 李鍾勳, 李鍾一, 林禮煥, 朴準承, 朴熙道, 朴東完, 申洪植, 申錫九, 吳世昌, 鄭春洙, 洪秉箕, 崔聖模, 崔麟, 韓龍雲, 吳華英, 洪基兆, 三十三人은 皆 道德 忠義 文學 言論의 名流라 一心誓天고 義旗를 首揚니 當日에 京城, 開城, 平壤, 鎭南浦, 宣川, 安州, 義州, 元山, 咸興, 大邱, 黃州, 谷山, 遂安, 諸都會處에셔 或 數千 或 數萬人의 獨立軍이 一時에 俱起엿스며 是日브터 各郡이 爭相蜂起니라
 三月七日에 金秉祚의 警告官憲文이 有다(別紙添付)
 九日에 總督府內務部長 宇佐美와 司令官 渡邊이 韓國에 現住 宣敎師 奇一, 魯普乙, 河鯉泳, 魚斐新, 片夏薛, 謝樂秀, 等 八人을 請야 時局에 對 意見을 問엿 八人의 答辨이 大端 有理더라
 十日에 韓國男女少年團이 巴里講和會에 請願書를 提出다(別紙添付)
 十四日에 趙衡均 等 十一人이 三十三人을 繼續야 總督의게 獨立請願書를 提出고 同時에 被囚다(別紙添付)
 十七日에 俄領에 在한 韓人들이 國民議會를 組織고 獨立宣言書를 發布다(別紙添付)
 下旬頃에 各處 獨立團이 臨時政府建設에 汲汲야 翹楚人士들이 上海로 雲集 李光洙 東京으로 鮮于爀, 金澈, 徐丙浩, 玄楯, 崔昌植은 韓國으로 呂運亨은 俄領으로 呂運弘은 美洲로셔 會來야 臨時事務室을 法界 寶昌路 三二九號에 定고 玄楯을 總務로 야 各國에 宣言書를 發布더니 適에 韓國 京城 獨立團本部 로셔 李鳳洙를 派遣야 假政府를 組織라 거늘 本事務所에셔 本部로셔 組織이 可 것과 巴里代表의게 信任이 緊急과 國民統一關係로 政府를 速히 組織여야  意見으로 李君을 本部로 還送다 時에 中國北京과 俄領 等地로셔 李東寧, 李始榮, 趙琬九, 曺成煥, 金東三, 趙英鎭, 趙鏞殷, 等 三十餘人이 偕來니 此 新韓靑年黨의 召集을 因이라 臨時政府를 組織쟈 輿論이 蜂起나 後日에 無數 政府가 生가 慮야 優遊不斷더라
 四月五日에 中國廣東省國民議會에셔 康基鎬 以下 三百三十一人의 聯署로 韓國獨立을 承認라고 北京政府에 上書고 巴里專使의게 打電다(別紙添付)
 同月八日에 韓國 京城 獨立本部로셔 姜大鉉이 李東暉(輝)를 執政官으로  閣員名錄과 臨時政府憲法의 原文을 帶來니 多少 紛議가 不一한中 韓南洙, 李春塾, 李奎甲, 洪濤, 李鳳洙 諸君이 亦來하엿더라
 是日 總督府에서 所謂 貴族團을 請하야 獨立軍鎭壓策을 討議할새 李完用의 三種答陳이 有하니 一. 勸喩 解散 二. 派兵示威 三. 屠戮無遺하라 하엿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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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十一日에 孫貞道, 李光洙君의 提議로 各地方代表會를 開고 臨時議政院을 始設하니 議長은 李東寧이라 四月八日에 宣布된 官制를 改하야 執政官을 廢하고 憲法을 多少 改正하고 國務員을 內地本部와 合議選擧하야 內外에 頒布하니 總理 李承晩, 內務總長에 安昌浩, 外務總長 金奎植, 法務總長 李始榮 後에 辭免, 財務總長 崔在亨, 軍務總長 李東暉, 交通總長 文昌範 諸人이러라  
十三日에 安承源, 金秉祚, 張德櫓, 李元益, 趙尙燮, 金九 等이 內地로셔 繼至야 於是에 韓人會衆이 千有餘人이요 道郡地方的 代表人物이 畢至지라 前設 議政院이 具體的이 아님을 因야 議政院法을 製(制)定하고 更히 議員을 地方會로 選擧 國內의 八道와 俄領, 美領, 中領, 十一地方으로 分야 地方選擧會로셔 代議士를 票薦니 議長은 孫貞道요 議員은 京畿道 趙琬九(申錫雨 辭免代) 吳義善, 李起龍, 申翼熙, 崔昌植, 崔謹愚(鄭大鎬 辭免代), 黃海道 金甫淵(辭免) 金錫璜(孫斗煥 辭免代) 李致畯, 平安道 孫貞道, 金秉祚, 李元益, 李喜, 金弘叙(金鉉湜 辭免代), 高一淸(李光洙 辭免代), 忠淸道 兪政根, 李奎甲, 趙東祜, 吳翼杓(辭免), 慶尙道 金昌淑, 柳景煥, 金正黙, 白南奎, 尹顯振(辭免), 金甲, 全羅道 金澈, 羅容均, 韓南洙, 張炳俊, 江原道 李駜珪, 宋世浩, 金聲根, 咸鏡道 李春塾, 林鳳來(辭免), 姜泰東(辭免), 俄領 曺聖, 中領 黃公浩, 美領 鄭仁果, 黃鎭南 四十餘人이 被選다 (院法 民國法令初集 叅看)
 臨時政府를 上海에 置고 各部에 委員을 選任 國務委員 趙琬九, 趙鏞殷, 趙東祜, 李春塾, 內務委員 申翼熙, 尹顯振, 徐丙浩, 韓偉權(建), 趙東珍, 金九, 崔謹愚, 金大智, 林承業, 外務委員 玄楯, 呂運亨, 白南七, 李光洙, 張建相, 法務委員 金應燮, 韓基岳, 財務委員 金澈, 崔浣, 金弘權, 徐成權, 宋世浩, 具榮佖, 韓南洙, 軍務委員 曺聖煥, 金榮璿, 申徹, 朴崇秉, 金忠一, 交通委員 鮮于爀, 梁濬明, 申國權, 李範敎, 高漢, 尹愿三, 李奎禎, 金甲, 孫晋衡(別世), 李鳳洙, 林鉉, 諸人이 勤務 平和會 列邦代表와 內外人民의게 政府成立을 公佈고 金奎植은 外務總長兼專權大使의 信任狀을 發送다 (政府章程은 民國法令初集 叅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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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四月十四日에 美國빌나델비아에 居留 韓國人들이 獨立宣言을 聞고 合衆國의 許諾으로 華盛頓獨立紀念舘에 會集야 三日間 獨立宣言式을 擧行고 巴里에 打電야 大韓政府承認을 請다
 時에 俄領에셔 代表 元世勳이 來言기를 俄領에도 國民議會가 有니 議政院을 合고 政府位置를 俄領으로 移置쟈 言論을 提出야 若干의 異議가 有엿더라
 是日에 韓國에 來住 美國宣敎師 等이 韓人의 日人의게 無限 虐待를 受 情形을 威逸遜統領의게 報告다(別紙添付)
 時에 國務院令 第一號 通諭文을 公佈하다(別紙添付)
 五月十二日에 我大使 金奎植氏가 巴里講和會議에 大韓獨立請願書를 提出하다 二十三日에 新韓靑年黨代表 呂運弘이 巴里發向할 牧師 安承源, 金秉祚, 孫貞道, 張德櫓, 李元益, 趙尙燮, 長老 金時爀, 金承萬, 張鵬, 趙普根 十人의 聯署로 國際聯盟會와 萬國長老敎聯合總會에 韓國敎會가 日本의 壓迫下에셔 勢如累卵임을 陳述야 呂君便에 寄送니라 (別紙添付)
 二十五日에 內務總長 安昌浩君이 美洲로브터 上海에 到着야 俄領에 在 總長들의게 致書야 狀況을 交通며 數日間에 韓人大會를 召集고 時局의 方針에 對야 慷慨活潑 演說이 有 後 一般人民의 推戴로 國務院에 就야 勞心焦思로 晝夜勤務니 自此로 政綱이 大振고 秩序整頓야 庶績이 咸熙더라 七月七日에 政府令으로 史料調査編纂部를 置고 文士 李光洙, 金秉祚, 李元益, 金枓奉, 曺東祜, 金弘叙, 李漢根, 朴賢煥, 金輿濟, 張鵬, 金翰 合十一人으로 여 吾朝鮮歷史의 獨立實力과 日韓의 關係를 辨明編史야 聯盟會에 提出케 다
 時에 俄領老人團代表 金舜若氏가 來야 該團은 五千人으로 組織되고 回數를 定야 二 三人式 內地京城으로 入送야 內地老人團을 聯絡 運動되 將來의 事業은 靑年黨의게 一任고 萬歲示威 老人團이 自擔기로 進行 것과 上海政府를 俄領同胞가 一心信仰다 報導(道)가 有더라. 十五日에 美國에 在 長老敎傳道總會에셔 노리스博士가 韓國獨立問題에 對야 流暢히 演說고 韓國宣敎師의 報告 것은 十九日 紐育港에셔 刊行엿스며
 二十七日 美國上院代議士 고믹氏 議會席에셔 日本人의게 韓國人의게 虐待 二十四張의 記錄書를 朗讀야 議會錄에 記載되고 代議士 욱쓰氏 韓國의 慘狀을 調査 決議쟈고 提議엿더라
 七日브터 十九日지 臨時議政院會를 開고 議事의 槪要 如左니
一. 常任委員公選
二. 國務院의 提案에 依야 國際聯盟會에 大韓代表 三人은 徐載弼, 李承晩, 金奎植 三人으로 可決되다
三. 國際聯盟會에 請願案製定委員은 金秉祚, 李春塾, 吳義善, 鄭仁果, 崔昌植 五人을 票選고 外務委員 三人을 加야 八人으로 選定다
四. 政府의 提案을 依야 二千萬元公債券을 發行케 다 同時에 愛國婦人會와 篤志人士들이 同心發起야 獨立戰爭의 預備로 韓國赤十字社를 組織니 會長 李喜儆, 副會長 金聖謙, 書記 金泰淵, 査檢 安定根 金昌世 金順愛, 常任委員 金澈 金秉祚 李光洙 李和淑 呂運亨 鄭仁果 吳義善 高一淸 金弘叙 徐丙浩 姜泰東 金翰 元世勳 玄楯 金甫淵 李春塾 李起龍 玉成彬 孫貞道 張建相 金泰淵이더라
 八月五日에 民國法令을 依야 委員制를 廢고 次長制를 實行 次長의 叙任은 內務에 玄楯 外務에 呂運亨 財務에 尹顯振 法務에 申翼熙 軍務에 李春塾 交通에 金澈 諸君이 當選고 國務院秘書長은 崔昌植君이 被選다 吉林軍政司督辦 柳東說이 部下 全三德을 遣야 軍政司의 規章과 軍政進行의 良好을 報告다

 
(6) 조선민족운동년감
(상해)"4월 13, 安承源, 金秉祚, 張德櫓, 李元益, 趙尙燮, 金九 等 朝鮮에서 상해로 오다. 당시
上海에 집합한 獨立運動者數는 千餘 人이라 하며 議政院法을 제정하여 議員을 地方會에서
選擧하는데 鮮內 8도, 노령, 중화령, 미국령 등 11지방으로 구분하여 지방선거회에서 代議士를
投票하여 選擧하다. 의원이름은 아래와 같다.
議長 孫貞道.
議員 京畿道 趙琬九(申錫雨 辭免代) 吳義善, 李起龍, 申翼熙, 崔昌植, 崔謹愚(鄭大鎬 辭免代), 黃海道 金甫淵(辭免) 金錫璜(孫斗煥 辭免代) 李致畯, 平安道 孫貞道, 金秉祚, 李元益, 李喜, 金弘叙(金鉉湜 辭免代), 高一淸(李光洙 辭免代), 忠淸道 兪政根, 李奎甲, 趙東祜, 吳翼杓(辭免), 慶尙道 金昌淑, 柳景煥, 金正黙, 白南奎, 尹顯振(辭免), 金甲, 全羅道 金澈, 羅容均, 韓南洙, 張炳俊, 江原道 李駜珪, 宋世浩, 金聲根, 咸鏡道 李春塾, 林鳳來(辭免), 姜泰東(辭免), 俄領 曺聖, 中領 黃公浩, 美領 鄭仁果, 黃鎭南 (四十餘人)
 
(상해) 臨時政府의 각위원은 다음과 같다.
國務委員 趙琬九, 趙鏞殷, 趙東祜, 李春塾,
內務委員 申翼熙, 尹顯振, 徐丙浩, 韓偉權(建), 趙東珍, 金九, 崔謹愚, 金大智, 外務委員 玄楯, 呂運亨, 白南七, 李光洙, 張建相,
法務委員 金應燮, 韓基岳,
財務委員 金澈, 崔浣, 金弘權, 徐成權, 宋世浩, 具榮佖, 韓南洙,
軍務委員 曺聖煥, 金榮璿, 申徹, 朴崇秉, 金忠一,
交通委員 鮮于爀, 梁濬明, 申國權, 李範敎, 高漢, 尹愿三, 李奎禎, 金甲,
孫晋衡(別世), 李鳳洙, 林 鉉,
(상해) 內外에 獨立政府成立을 宣言고 金奎植의 外務總長 兼 專權大使의 信任狀을 發送다 " (國聯提出韓日關係史)
 
(7) 韓民國臨時憲法 (1919. 9. 11)
我 大韓民國은 我 國이 獨立國임과 我 民族이 自主民임을 宣言하엿도다.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엿스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엿도다.
半萬年 歷史의 權威를 仗하야 二千萬 民衆의 誠忠을 合하야 民族의 恒久如一한 自由發展을 위하야 組織된 大韓民國의 人民을 代表한 臨時議政院은 民意를 體하야 元年 四月 十一日에 發布한 十個條의 臨時憲章을 基本삼아 本 臨時憲法을 制定하야써 公理를 彰明하며 公益을 增進하며 國防及 內治를 籌備하며 政府의 基礎를 鞏固하는 保障이 되게 하노라.

第1章 綱 領
第1條 大韓民國은 大韓人民으로 組織함
第2條 大韓民國의 主權은 大韓人民 全體에 在함
第3條 大韓民國의 疆土는 舊韓帝國의 版圖로 定함
第4條 大韓民國의 人民은 一切 平等함
第5條 大韓民國의 立法權은 議政院이 行政權은 國務院이 司法權은 法院이 行使함
第6條 大韓民國의 主權行使는 憲法 範圍內에서 臨時大統領의게 委任함
第7條 大韓民國은 舊皇室을 優待함 ·········(이하 중략 )

第8章 補 則
第55條 本臨時憲法을 施行하야 國土回復 後 限 一個年 內에 臨時大統領이 國會를 召集하되 其 國會의 組織及 選擧方法은 臨時議政院이 此를 定함
第56條 大韓民國憲法은 國會에서 制定하되 憲法이 施行되기 前에난 本臨時憲法이 憲法과 同一한 效力을 有함
第57條 本臨時 憲法은 臨時議政院 議員의 三分 二 以上이나 或 臨時大統領의 提議로 總員 五分 四 以上의 出席, 出席員 四分 三 以上의 可決로 改正함을 得함
第58條 本臨時憲法은 公布日로부터 施行하고 元年 四月 十一日에 公佈한 大韓民國臨時憲章은 本臨時憲法 施行日로부터 廢止함

 
(8) 대한민국건국강령 (1941. 11. 28)
제1장. 總綱
강령 5조 : “우리나라의 獨立宣言(독립선언)은 우리 민족의 赫赫(혁혁)한 革命(혁명)의 發
軔(발인) 新天地(신천지)의 開闢(개벽)이니 …….(중략), 이로써 자손만대에 誥(고) 民族自存의 正
權(정권)을 永有(영유)하라』 하였다. 이는 우리 民族이 3· 1血戰(혈전)을 發動한 元氣(원기)며
同年(동년) 4월 11일에 13도 대표로 조직된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을 세우고 임시정부와 임
시헌장 10條를 創造 發布하였으니 이는 우리민족의 자력으로써 異族專制를 顚覆(전복)하며 5
千年 군주정치의 舊穀(구곡)을 破壤하고 새로운 민주제도를 건설하며 사회의 階級(계급)을 消滅
(소멸)하는 第一步(제일보)의 着手(착수)이었다. (중략)
강령 6조 : 임시정부는 13년 4월에 대외선언을 發表(발표)하고 三均制度의 건국원칙을 闡明하였으니 (중략)

 
(9) 大韓民國臨時憲章(1944. 4. 22)
 우리 民族은 優秀한 傳統을 가지고 스스로 開拓한 疆土에서 悠久한 歷史를 通하여 國家生活을 하면서 人類의 文明과 進步에 偉大한 貢獻을 하여왔다. 우리 國家가 强盜 日本에게 敗亡된 뒤에 全民族은 寤寐에도 國家의 獨立을 渴望하였고 無數한 先烈들은 피와 눈물로써 民族自由의 回復에 努力하여 三 · 一大革命에 이르러 全民族의 要求와 時代의 趨向에 順應하여 政治, 經濟, 文化, 其他 一切 制度에 自由, 平等 및 進步를 基本精神으로 한 새로운 大韓民國과 臨時議政院과 臨時政府가 建立되었고 아울러 臨時憲章이 制定되었다. 이에 本院은 二十五年의 經驗을 積하여 第三十六回 議會에서 大韓民國 臨時憲章을 凡 七章 共 六十二條로 改修하였다.

第1章 總 綱
第1條 大韓民國은 民主共和國임
第2條 大韓民國의 疆土는 大韓의 固有한 版圖로 함
第3條 大韓民國의 人民은 原則上 韓國民族으로 함
第4條 大韓民國의 主權은 人民全體에 있음. 國家가 光復되기 前에는 主權이 光復運動者 全體에 있음
········(이하 중략)
第20條 臨時議政院 議長은 院을 代表하며 會議를 召集하며 院의 議事를 整理하며 院의 行政을 辦理하며 院內의 警察權을 執行하며 院의 會計를 處理하며 五日 以內의 議員請由와 傍聽者를 許함
 副議長은 議長을 補佐하며 議長이 有故할 때에는 그를 代理함
第21條 臨時議政院은 每年 四月 十一日에 臨時政府 所在地에서 自行召集함
 臨時議政院의 會期는 三週日로 定하고 必要로 認할 때에는 延期함을 得하되 全會期의 三分之 一을 超過함을 不得함
 議院의 決議나 政府의 要求나 總在籍 議院 三分之 一 以上의 要求가 있을 때에는 臨時議會를 召集함
第22條 臨時議政院은 總在籍 議員 半數 以上의 出席으로 開會함
········(이하 중략)
第6章 會 計

第57條 租稅와 稅率은 法律로 定함
第58條 國家의 豫算 決算及 會計는 檢査 確定한 會計檢査院의 報告와 같이 議政院에 提出하여 通過를 要함
第59條 會計檢査院에서는 國家의 一切 會計를 隨時로 檢査함
第60條 會計年度는 四月 一日부터 翌年 三月末까지로 定함

第7章 補 則
第61條 本憲章은 臨時議政院에서 總在籍 議員 三分之 一 以上이나 政府의 提案으로 總在籍 議員 四分之 三의 出席과 出席議員 三分之 二의 贊同으로 改正함을 得함
第62條 本憲章은 公布日로부터 施行하고 大韓民國 二十二年 十月 九日부터 施行한 臨時約憲은 廢地함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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