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철 칼럼] 핵폭탄 그리고 비키니
[최주철 칼럼] 핵폭탄 그리고 비키니
  • 경희대학교 최주철 교수
  • 승인 2017.10.13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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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 앨라모고도 사막 하늘에 인류 태동 후 처음 보는 새로운 버섯모양의 구름이 뜨고 있었다.

바로 최초의 핵폭발 실험이었다. 20세기 초 만물의 원리를 밝혀내기 시작한 물리학자들의 기쁨과 희망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38년 독일 화학자 오토 한이 원자핵분열에 성공하자 세계 물리학자들은 큰 걱정에 빠진다. 이제 핵분열을 이용한 가공할 위력의 신 무기 개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천재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와 히틀러 나치 정권 외교부 차관의 아들이자 핵물리학자인 폰 바이츠제커가 있고 독일보다 먼저 개발해야만 민주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 아인슈타인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핵무기 개발을 권하고 '트리니티'라는 암호명이 붙여졌고 폭탄은 '가제트'라고 불렀다.

폭팔은 공군 기지 탄약 창고 폭발이라고 미리 입도 맞췄다. 하여튼 가제트는 성공적으로 폭발했고 12㎞ 위로 치솟는 버섯기둥을 만들었다고 한다.

핵실험 장소에서 240㎞ 떨어진 곳에서도 폭발이 만들어낸 빛을 볼수 있었다. 한달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탄 투하로 2차 세계 대전을 끝냈지만 핵 관련 연구와 실험은 계속됐다.

다음해인 1946년 7월1일 태평양 마셜 제도 비키니섬에서 미군은 원주민을 쫓아내고 섬에 돼지와 양을 풀어 핵 폭발이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1946년을 시작으로 1958년까지 스무 차례 넘게 핵실험이 진행된 이곳은 결국 생명이 사라진 '죽음의 섬'이 됐다.

1954년에는 수소폭탄 실험도 했다. 미국은 비키니섬을 포함해 마셜제도 소속 섬에서 67차례 핵실험을 했다. 과학자들은 비키니섬 일대의 오염이 제거되는 데 10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 비키니의 이름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은 첫 수소폭탄 실험 나흘 뒤인 1946년 7월5일 파리의 패션쇼에서 패션 디자이너 루이 레아르 공개한 충격적인 수영복 '비키니' 때문이다.

비키니는 파리 클럽의 누드 댄서 미셸린 베르나르디니 에게 이 수영복을 입혔다. 그리고 레아르는 비키니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것이라고 여기고 수소폭탄 실험을 한 섬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만큼 충격적일 것이라는 의미도 담았고 오늘까지 열정의 바닷가를 기다리는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전쟁은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는 서방의 순진한 정책 아래 체코슬로바키아가 희생되었던 것처럼 비키니의 물결이 사라진 공허한 해변에서 바람에 스러져 가는 모래 알갱이를 보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해 볼 질문이다.

글·최주철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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