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철 칼럼] 케네디 탄생 100주년 그리고 암살배후
[최주철 칼럼] 케네디 탄생 100주년 그리고 암살배후
  • 최주철교수
  • 승인 2017.11.04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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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태어난 지 100년 되는 해. 매력적인 아내 재키와 백악관에 입성한 젊고 잘생긴 대통령, 냉전후 미국 황금기를 상징하는 대통령이면서 미국 민주당 리버럴의 상징인 그의 때 이른 죽음(1963년)과 이어진 가족사의 불행 등 극적인 전개와 결말은 아직도 미국인의 마음속을 사로잡고 있다.

1963년 11월 22일 영부인 재클린과 함께 자신의 지지율이 그리 좋지 않았던 텍사스주 댈러스로 유세를 가게 되었는데 당시 댈러스 시내로 링컨 컨티넨탈 차량을 타고 가다 총에 맞아 암살되었고, 당시 존 F. 케네디가 타고 가던 차량은 방탄차량이었는데 지붕을 열어둔 상태에서 타고가다 댈러스 시내에 위치한 딜리 플라자에서 쏜 총에 목을 관통하면서 사망하게 된다.

앞좌석에 앉아있던 텍사스 주지사는 부상을 입고 케네디 암살사건이 발생한 직후 경찰은 대대적인 범인 수색을 시작했고, 2시간후 극장 근처에 숨어있던 교과서 보관 직원 오즈왈드를 암살혐의로 체포하였지만, 그는 자신은 희생양이라고 주장하면서 암살혐의를 부인하였다.

이틀 뒤 암살혐의를 받고 있던 오즈왈드를 감옥으로 압송중 마피아 하급단원이었던 잭루비에게 살해당했고 루비 역시 감옥에서 2개월만에 암으로 사망하여 이후 암살주체의 배후에는 FBI부터 CIA, 군산복합체, 마피아, 구소련 KGB, 쿠바, 유대계 금융자본세력, 존슨 부통령등 라는 온갖 음모설이 나도는 케네디 암살과 관련된 기밀문서 2891건이 54년 만에 베일을 벗었다.

1992년 제정된 기밀해제 시한에 맞춰 26일(미국 현지 시간)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암살범 리 하비 오즈월드가 범행 두 달 전 구소련 KGB 요원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고 구소련 KGB 사주설에 힘이 실리는 셈이다. 암살 사건을 조사한 워런위원회는 1964년 “오즈왈드의 단독 범행이고 배후는 없다”고 밝혔어도 이를 그대로 믿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

이번에도 암살 미스터리와 관련된 의혹이 말끔하게 풀릴지는 미지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공개 예정이었던 기밀문서 중 일부는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정보 당국의 의견에 공개를 미뤘다.

메릴린 먼로를 비롯한 숱한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고 ‘미국 역사상 가장 과대평가된 저명인사’로 평가되고 있는 지도자. 그럼에도 케네디가 남긴 정치유산은 평범하지 않은 무게를 지닌다.

냉전의 시대에서, 핵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1960년대 초반, 그는 미국 대통령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구소련의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에 맞서 핵 전쟁을 각오하고 해상 봉쇄를 결정하는 단호한 대처로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우주개발 경쟁에서 “우리는 달에 가기로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려워서 입니다” 등의 연설을 통해 미국 국민에게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과 도전을 제시했다.

존F케네디

짧은 재임 기간에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과 진취적 비전을 바탕으로 리더로서의 존재 이유를 각인시킨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복잡한 지금 우리에게도 국가 지도자로서의 케네디 리더십을 현명하게 참고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경희대학교 최주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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