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환자들은 어떻게 보험사기범이 되나…보험사들의 '협박신청서'
중증환자들은 어떻게 보험사기범이 되나…보험사들의 '협박신청서'
  • 유지윤 기자
  • 승인 2018.06.0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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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관련 피해 접수현황은 2014년 771건, 2015년 797건, 2016년 1018건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은 보험금 지급 관련 피해다.
보험관련 피해 접수현황은 2014년 771건, 2015년 797건, 2016년 1018건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은 보험금 지급 관련 피해다.

[톱데일리 유지윤 기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암 보험. 지금 바로 가입 하세요.“

한 보험회사의 광고 문구다. 보험회사들이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험금을 지급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보험관련 피해 접수현황은 2014년 771건, 2015년 797건, 2016년 1018건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은 보험금 지급 관련 피해다.

일부 영리 보험사들이 중증 질환자에게 보험급 지급을 거부하며 오히려 환자들을 보험사기범으로 몰고 있다. 돈을 지급한 의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부터 아픈 환자를 대상으로 소송을 거는 것까지 그 방법도 다양하다. 

◆진단 본 적 없는 의사의 진단서...‘자문의(醫) 소견서’

최현우(52)씨가 직접 진단 받은 의사의 진단서와 이에 대한 한 보험사의 자문의 소견서. 최 씨의 진단서와 달리 보험사의 자문의 소견서엔 '일반적으로 치조골 괴사는 만성 치주염에 의해 초래된다'는 말이 덧붙여져있다. 이어 '치조골 증상 및 임플란트 배식이 근본적으로 당뇨병 치료가 될 수 없다'고 언급돼있다. 사진=최 씨 제공
최현우(52)씨가 직접 진단 받은 의사의 진단서와 이에 대한 한 보험사의 자문의 소견서. 최 씨의 진단서와 달리 보험사의 자문의 소견서엔 '일반적으로 치조골 괴사는 만성 치주염에 의해 초래된다'는 말이 덧붙여져있다. 이어 '치조골 증상 및 임플란트 배식이 근본적으로 당뇨병 치료가 될 수 없다'고 언급돼있다. 사진=최 씨 제공

”나는 의사한테 직접 처방받고 다 했잖아. 그런데 얼굴도 못 본 놈이 내가 (당뇨병이 아니라) 세균 때문에 치조골 수술을 받았다는 거야.“

서울 도봉구에 사는 최현우(52)씨는 당뇨병을 앓으면서 10년이 넘게 내로라하는 규모의 보험회사들과 홀로 싸워왔다. 최 씨는 당시 당뇨병으로 수술을 하면 오백만원을 주는 보험이 세 개가 가입이 돼 있었고,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치조골 수술을 마흔 네 번 해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곧 어마어마한 대기업들과의 끝 없는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최 씨는 ”분명 ‘당뇨병이 직접적 원인이 돼 치조골이 급속도록 파괴 흡수’됐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보험회사가 가져온 자문의 소견서엔 ‘만성치주염으로 인한 치조골 괴사’일수 있다며 병명이 바뀌어 있었다“고 토로했다.

보험사들은 각 회사마다 ‘자문의 시스템’을 두고 있다. 계약자의 병을 직접 다시 진단하는 것도 아니고, 보험사가 제출한 계약자의 진단서를 자문의가 재검토하는 시스템이다.

복수의 보험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각 회사마다 의료자문을 위탁하고 손해사정 업무를 보는 자회사를 두고 있다. 이 자회사들은 위탁업체에 자문의 선정을 받아 자문 한 건 당 비용을 주고 자문을 받는다. 보험사들은 이렇게 받은 ‘자문의 소견서’를 보험금 부지급 근거로 삼을 수 있다. 

한마디로 일면식도 없는데다가 보험사가 돈까지 지불한 의사의 소견서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당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험사에겐 ‘화해 신청서’, 환자들에겐 ‘협박 신청서’

보험금을 모두 지급하지 않기 위해 ‘화해 신청서’를 내밀며 회유책을 쓰는 경우도 있다. 말이 화해신청서지 하루하루가 생명줄인 환자들에겐 이는 ‘협박 신청서’나 다름이 없다. 환자가 이를 받지 않으면 분쟁, 소송을 걸거나 다른 상품 보험금을 제한하는 등 가능한 방법들은 총 동원하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환자들은 스트레스가 치명적이잖아요. 암 환자 같은 경우는. 이거로 싸우고 여기저기 싸우고 그러다가 돈이 진짜 무슨 소용이냐. 이러다가 내가 죽겠다 했어요.“

유방암 3기를 앓으며 5일간 본 병원, 8개월간 암 요양병원에 입원해있었다는 간호조무사 조미영씨는 지난 95년 A보험사의 무제한 입원비 상품에 가입했지만 400만원을 받고 화해신청서를 작성했다. 조 씨는 유방암 3기를 앓으며 5일간 본 병원, 8개월간 암 요양병원에 입원해있었다. 림프절 19개를 떼어내 팔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던 데다가, 본 병원 주치의 또한 요양병원에서의 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보험사에선 ”요양병원은 암에 직접적인 치료가 되지 않아 원칙적으론 입원급여를 지급할 수 없지만 400만원은 지급하겠다“는 화해신청서가 왔다.

이에 반발하자 A보험사는 ”(금융감독원에)민원을 넣으시라“고 말하며 ”하지만 민원을 넣으시면 화해도 없다. 400만원 반환하시고 금감원에 신고하라“고 통보했다. 조금 더 버텨보려 했지만, A보험사에 가입해놓았던 실손 보험금까지 ‘암 입원 보험 건이 해결이 돼야 지급될 수 있다’며 끊겨버리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 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기울어진 법망…보험사가 하면 민사 책임, 계약자가 하면 형사 책임?

이렇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계약자들이 늘어나는 데는 제도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엔 보험사를 기망하는 계약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장치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으로 마련돼 있지만, 계약자들을 기망하는 보험사들을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은 전무하다. 

보험계약자가 잘못하면 보험사기방지특별법에 의해 형사의 영역에 들어가지만 보험사가 잘못했을 때엔 사기죄로 묶이거나 민사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보험업법 제 95조 2항에 따르면 보험회사 또는 보험의 모집에 종사하는 자는 계약자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험계약의 중요 사항을 일반보험계약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한다는 계약자 보호 조항이 있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의 제 5조(보험계약자등의 보호)에서도 개인정보보호와 더불어 ‘보험회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 없이 보험사고 조사를 이유로 보금의 지급을 지체, 또는 거절하거나 삭감해서는 아니 된다’고 짧게 언급됐다.

하지만 이나마도 무용지물이다. 보험사가 계약자를 보험사기범으로 몰아 소송하면 얼마든지 보험금 지급 지체가 가능할 수 있도록 예외상황이 명시된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시행령 제 3조에 따르면 ”보험회사가 보험사고 조사 과정에서 보험계약자 등의 행위가 보험사기행위로 의심할만한 근거가 있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한 경우“ 보험 지급 지체가 가능하다.

◆판례 따라 부지급 결정되는데 판례는 알려주지도 않아

현재 보험사기방지특별법에는 ‘보험사기죄’의 세부적인 죄목들은 열거돼있지 않다. 단지 제 2조에서 ”보험사기행위란 보험사고의 발생, 원인 또는 내용에 관하여 보험자를 기망하여 보험금을 청구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추상적으로 정의돼있을 뿐이다. 

보험사의 부당한 부지급에 대한 법이 특별히 마련돼 있지 않은데다가 보험사기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 자체도 부족하다 보니, 이러한 문제들은 대부분 판례나 분쟁조정 사례에 따를 수밖에 없다.

보험업계 관계자 또한 “보험사기죄의 기준을 어떻게 봐야 하냐”는 질문에 “보험사가 보험 사기가 의심되는 계약자를 소송을 걸면 그 판례가 보험사기 사유가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보험금 지급전에는 이러한 판례들을 일일이 얘기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된 보험업법 제 95조 2항에 언급된 ‘보험계약의 중요 사항’에 판례들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보험 설계사들 또한 수개월 되는 교육기간 동안 모든 상품의 판례들을 배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전(前) A생명보험 설계사 정 모(48)씨 또한”교육기간 동안 딱히 판례에 대해선 배우지 않는다. 뭉뚱그려 어떤 부지급 사유가 있는지 배우는 정도“라고 귀띔했다.

어려운 약관과 법률 등에 무지할 수밖에 없는 일반 계약자들에게 부지급과 보험사기죄의 핵심 기준인 판례까지 알려주지 않으니 정보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정 씨는 ”보험사 약관은 정말 어려워 2-3년 간 공부해도 모자라다. 이런 약관을 소비자는 찾아본다고 해봤자 인터넷에서 하루 찾아보는 정도니 정보격차가 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울어진 법망과 정보의 비대칭 속에서 일부 보험 계약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보험 사기범으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약관 명료화하고 보험 이용자 보호할 수 있는 특별법 만들어야 

보험 이용자 측과 일부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보험 약관의 명료화와 더불어 공정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2월부터 금융감독원 앞에서 꾸준히 집회를 열어온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보암모)는 ‘암보험약관 명확화’와 ‘암입원일당 보험금 100% 지급’을 요구해왔다.

앞서 인터뷰에 응해준 전 보험설계사 정 씨 또한 ”보험 약관이 어렵고 애매하다보니 오히려 마음먹고 사기 치려는 사람들은 (약관을) 오랫동안 공부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고, 약관을 모르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당하는 일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미숙 보험이용자협회 대표 또한 제도적 문제에 대해 강하게 지적했다. 김 대표는 ”사실상 보험이용자 권익을 위한 법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이어 "있다고 한들 보험이용자보고 소송해서 입증해 쟁취하라는 식인데, 거의 포기를 종용하는 것“이라며 ”보험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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