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 도입 일주일, 서민의 밤은 더 분주해졌다
주52시간 도입 일주일, 서민의 밤은 더 분주해졌다
  • 최은지 기자
  • 승인 2018.07.0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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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직보다 현장직 근로자 감소 체감도 높아, "평균 20~30% 급여 줄었다"
직장인들 편의점 알바, 대리기사에 '택틀'까지
빈곤계층 위한 정책이 한계계층의 삶 위협하는 '역설'로

[톱데일리 최은지 기자] 노동시장에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된 지 일주일째, 현장·사무직 일부 회사에서는 한숨이 터져 나오고 있다. 주 52시간제로 줄어드는 월평균 임금은 37만원, 정규직임에도 생계부담에 퇴근 후 '투잡(Two job)'을 뛰는 근로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특히 야근과 주말근무로 생계를 유지하던 일부 현장근로자들은 ‘워라밸’ 같은 저녁 있는 삶은 ‘사무직 근로자’에게나 가능하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빈곤계층을 위한 정책이 오히려 노동시장의 하층구조에 자리 잡은 '한계계층'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역설'이다.

◆ 저소득 현장근로자, 대리기사·편의점 ‘저녁 아르바이트’ 수요↑

지난 7일 '블라인드' 앱에서 '주52시간'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현장직, 사무직 등 다양한 직종의 근로자들이 임금과 업무환경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남겨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진= 블라인드 직장인 커뮤니티 캡쳐
지난 7일 '블라인드' 앱에서 '주52시간'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현장직, 사무직 등 다양한 직종의 근로자들이 임금과 업무환경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남겨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진= 블라인드 직장인 커뮤니티 캡쳐

지난 7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앱에서 현장근로자라 밝힌 한 직장인은 “주 52시간제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주로 연봉제 사무직 근로자에게 맞춰진 것 같다”며 “통계자료에서는 임금 7%만 감소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서민들은 평균 20~30%로 급여가 줄어 생계부담 체감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본지가 서울 강남, 영등포, 마포, 용산 일대의 직업소개소 5여곳에 문의한 결과 지난 6월 이후 소개소에는 야간이나 주말 시간제 일자리를 찾는 문의가 늘었다. 강남의 한 직업소개소 사장은 "주 52시간제에 대한 언론 보도가 쏟아져나온 지난 6월부터 전화나 방문으로 아르바이트 문의가 많다"며 "직업도 생산직, 택배/건설업 등 다양한데 다들 소득을 메우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투잡 뛰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알짜배기 아르바이트'로 불리는 대리운전 시장은 '불황 속 호황'을 맞았다.

'대리운전 새벽을 달리는 사람들', 다음 카페 '대리운전 대리기사' 등 온라인 카페에는 ▲'대리운전 투잡 후기' ▲‘로지건당보험(투잡하는 대리기사들을 위한 보험료 절감 서비스)문의' ▲'처음 대리기사 시작하려면' 등의 글이 최근 빈번해졌다. 지난달 대리운전 연결서비스 '카카오 드라이버'에 대리 기사로 등록한 사람은 11만명으로 전년 동기 등록자 수(8만명)보다 3만여 명이 늘었다.

기자가 지난 7~8일 한 대리운전 카페에 '본업이 있음에도 대리기사를 하는 직장인'이 있는지 글을 올려보니 대리기사 서모씨(42)가 연락이 왔다. 두 딸을 둔 서모씨는 "본업이 포크레인 기사인데 모든 공사현장 일이 그렇듯 봄·여름·가을철에만 일이 몰려 있어 요즘에 바짝 벌어놔야 하고 아이들이 한창 클 때라 생계 걱정도 된다"며 "월급이 50여만원 깎여 퇴근 후 대리기사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대리기사를 시작해서 손님 잡기가 쉽지 않아 카페에서 택시기사를 소개받고 함께 '택틀(택시셔틀)'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택틀'은 서울/경기 지역 택시 중 시내 차편이 끊기는 시간대에 움직여야 하는 대리기사를 시내까지 이동하게 해주는 영업용 택시다. 서모씨는 협업하는 대리기사와 택시기사를 두고 '공생하는 밤의 생태계'라 말한다. 그는 "경기도나 외곽으로 가면 허허벌판에 떨어져 난감할 때가 많은데 그때 서울로 가는 빈 택시와 협업해 30분당 통행비로 3000원씩 택시기사에게 내고 서울로 올라온다"며 "가다가 다른 대리기사들이 보이면 최대 4명까지 태워 다시 서울쪽으로 돌아오는 방식"이라고 했다.

지난 7일 자정을 넘긴 시간 경기 일산 한 쇼핑몰 앞에서 '대리운전 셔틀'(대리기사들을 위해 특정구간을 운행하는 집단 운행)을 볼 수 있었다. 봉고차의 전면유리에 네온/ LED를 부착해 대리기사들이 '셔틀'임을 알게 하고 목적지(손님이 있는 곳)에 데려다주는 방식이다.
지난 7일 자정을 넘긴 시간 서울 금천구 시흥사거리 앞에서 '대리운전 셔틀'(대리기사들을 위해 특정구간을 운행하는 집단 운행)을 볼 수 있었다. 봉고차의 전면유리에 네온/ LED를 부착해 대리기사들이 '셔틀'임을 알게 하고 목적지(손님이 있는 곳)에 데려다주는 방식이다.

결혼을 앞둔 건설업 직원 김모씨(32)는 서울 종로구 번화가에서 대리기사로 '투잡'을 뛰고 있다. 김 씨는 회사에서 오후 5시에 퇴근하면 근처 편의점에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고, 저녁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꼬박 일해서 일당 5만원 정도를 번다. 주 52시간 이후 월급이 40만원 정도 깎였다는 그는 이런 식으로 일주일에 4일 이상 일하고 있다. 오는 11월 결혼예정일 전까지 넉넉하게 한 달 100만원을 벌기 위해서다.김 씨의 휴식 시간은 잠자는 시간을 포함해 하루 4시간이다. 직장만 다니던 때보다 5시간이 줄었다. 

편의점 알바 자리에도 투잡 일꾼들이 몰린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박모씨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는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월급이 50만원이나 줄었다"며 "초등학생 자녀가 두명이어서 지출을 줄일 수 없다. 차비라도 아끼려고 집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 중소기업 사무직도 고민, 업무량 많은 부서는 퇴근 후 집에서 일해

주 52시간제 도입에 따른 충격도 기업 규모에 따라 상이하다. 대부분의 대기업 사무직은 주 52시간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탄력근무제, 유연근무제를 통해 근무하고 있다. 쌍용차는 생산직 근무 형태를 주·야간 2교대에서 밤샘 근무를 없앤 주간 연속 2교대로 바꿨다. 근무제를 바꾸면서 노동자 한 명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이 기존 10.25시간에서 8.5시간으로 줄었다. CJ그룹과 롯데그룹 등은 ‘PC 오프(셧다운)제’를 도입했고, 업무시간 외에 소셜미디어로 업무 지시를 하지 않게 강제했다.

문제는 중소기업 사무직이다. 재계에서는 50~299인 사업장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는 2020년에 큰 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시화공단의 한 금속가공 업체 근로자는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대기업의 공급사슬에 엮여 있기 때문에, 대기업이 필요로 할 경우 즉시 대량으로 납품해야 한다”며 “퇴근 후에도 회사 불을 끄고 인근 카페에서 일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근무시간 단축이 '워라벨'로 연결되려면 한 사람당 업무량이 줄어야 하고, 모자라는 일손을 채우기 위해 기업이 추가로 채용을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주 평균 노동시간이 6.9시간 줄어들고 일자리 14~18만개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직장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추가 채용 대신 개인당 업무량만 늘어날 거란 '회의론'이 우세다.

지난 6월 25일 전국 20~50대 남녀 직장인 500명(여자 250명, 남자 250명)을 대상으로 한 모바일 리서치 업체 오픈서베이 조사에 따르면, 남성(61.6%), 여성(68%) 등 응답자의 64.8%는 회사가 추가 채용을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직군별로는 사무직(67.9%) 직장인이 인력 보충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정부 전망이 현장 분위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KEB 하나은행에 다니는 한 은행원은 지난 6일 '블라인드' 앱에서 "퇴근은 일찍 하라면서 인력 보충은 없고 업무량은 그대로니 퇴근해서 집에서 일하는 현실"이라며 "전엔 돈이라도 받고 야근했는데 이젠 '자원봉사'하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9일 톱데일리와의 전화통화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도입하기 이전에도 사무직보다 현장직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하기 어려울 거라는 예상이 있었다"며 "현장직은 기계 설비, 생산공정을 위해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데 기업이 아니기에 업체 부담감이 클 것"이라 말했다. 이어 주 이사는 "현장직에서도 고용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고용노동부가 세제 혜택 등을 현장근로자에게 주는 등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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