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빛과 어둠②] 그들은 무엇으로 좌절을 달래나
[노량진, 빛과 어둠②] 그들은 무엇으로 좌절을 달래나
  • 유지윤ㆍ서은정ㆍ최은지 기자
  • 승인 2018.08.20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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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60대 1 경쟁률, “상상초월의 경쟁률을 뚫는 게 노력으로만 가능하겠냐”
청년들 사이 ‘스터디 문화’는 보편적인 현상, 노량진 공시생들의 스터디는 '불건전' 시선
"공부하는 사람, 안하는 사람 구역을 나눌 수가 없다"
코인 노래방 시간도 '킵' 해놔, 잠깐의 휴식도 사치
공시생들과 진로 및 취업 상담을 해주는 상담사 고은령 씨는 "대개 학생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다"며 "공부를 오래한 공시생들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우울함을 억누른다"고 말했다.
공시생들과 진로 및 취업 상담을 해주는 상담사 고은령 씨는 "대개 학생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다"며 "공부를 오래한 공시생들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우울함을 억누른다"고 말했다.

[톱데일리 기획취재팀= 유지윤 기자, 서은정 기자, 최은지 기자] “제일 공부 안 되는 이유는 불안감이죠. 하루 13시간 공부 매일 빠짐없이 1년 하면 무조건 붙어. 그럼 누가 안 해요. 아 이거 해도 안 되는 거 아냐? 이런 생각 드니까 공부가 안 되는 거죠.”

노량진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3년차 공시생 김혜진 씨(25, 가명)의 말이다. 김 씨는 “일정 이상 경쟁률이 되면 거스를 수 없는 운이 있는 것 같다”며 “상상초월의 경쟁률을 뚫는 게 노력으로만 가능하겠냐”고 말했다.

2018년 서울시 공무원 7, 9급 공채 시험 선발인원은 1971명으로, 총 12만4259명이 지원해 63.0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중 수험생 지원이 가장 많은 일반 행정직 9급의 경우 892명 선발에 6만8673명이 지원해 77.0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김 씨와 기자가 함께 앉아 있던 카페는 80석 정도. 이 카페에 손님이 꽉 찼다고 상상했을 때, 그중 단 1명만이 공무원이 돼 카페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노량진에서 1% 남짓한 사람들만이 이곳을 ‘탈출’할 뿐, 나머지 99%는 다시 머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약 없는, 치열한 경쟁 앞에 공시생들의 정신 건강 상태는 위태로웠다. 지난 2014년과 2015년 동작구 마음건강센터가 관내 수험생 고시원생의 정신건강을 검진한 결과 120명 가운데 70%(84명)가 우울증 및 자살생각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공시생들의 진로상담, 취업상담 등을 해주는 동작구 웰센터 상담사 고은령 씨는 “공시생들이 여기오면 첫마디가 너무 우울하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왜 그 우울한 것을 오래하고 있냐고 물어보면 다른 방법을 모르겠단 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 ‘섹터디’라고? "우리는 연애하면 안 되나요"

기약 없는 결과를 기다리며 치열한 경쟁 속에 내몰린 공시생들은 어떻게 자신을 달래고 있을까.

노량진에서 공시생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탈출구 중 하나는 ‘스터디’다. 공시생들 또한 여느 취준생들처럼 스터디를 통해 함께 공부하고, 친구를 사귀고, 연애를 한다.

노량진 유명 고시학원이 올 초 학생들에게 보낸 경고 문자. 소방 공무원 7급 재수를 준비하는 박모씨(32)는 "노량진에서 공부를 안해본 사람들은 (수험생들의) 외로움과 설움을 모른다"며 "다른 스터디원에게 방해가 안되는 선에서의 연애는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박모씨)
노량진 유명 고시학원이 올 초 학생들에게 보낸 경고 문자. 소방 공무원 7급 재수를 준비하는 박모씨(32)는 "노량진에서 공부를 안해본 사람들은 (수험생들의) 외로움과 설움을 모른다"며 "다른 스터디원에게 방해가 안되는 선에서의 연애는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박모씨)

청년들 사이에서 ‘스터디 문화’는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노량진 공시생들의 스터디는 유달리 비판적인 시선을 받는다. 이곳의 스터디는 다른 말로 ‘섹터디’라고 불린다. 공시생들이 모여 스터디를 하면 남녀가 성관계를 맺는 등 불순한 관계로 변질될 수 있다는 비하 표현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2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김지현 씨(25)는 “친구들이 걱정 많이 하던데요. 뭐하러 노량진까지 가서 공부하냐고. 거기서 스터디하면 무조건 연애하고 논다고”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공시생들의 생각은 다르다. 외부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노량진 생활에서 스터디를 통해 사귀는 친구, 연인 등이 수험생활에 활력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 2014년 에듀윌과 공무원 저널이 공시생 3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33.3%가 현재 이성교제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중 40%는 같은 수험생을 만나고 있다고 답했다. ‘수험 중 연애, 득일까? 실일까?’에 대한 답변으로는 76%가 ‘그저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21%가 ‘득이다’라고 답했다. ‘실이다’라는 답변은 3%에 불과했다.

“아무래도 공부하다보면 외롭고. 저도 여기 와서 너무 외로울 때 많았어요. 친구들한테도 연락하면 ‘공부안하고 카톡하냐’는 시선으로 볼까봐 자격지심 때문에 연락 못하겠어요. 인간관계도 많이 끊기고... 근데 그나마 위로가 됐던 건 같이 공부하는 수험생들과 했던 스터디였어요. 거기서 의지할 수 있는 친구도 사귀고”

지난 11일 오전 동작경찰서 인근에서 만난 교원 임용 준비생 강혜리 씨(24,가명)는 지방에서 올라와 힘들었던 자신에게 비슷한 처지의 수험생이 모였던 스터디는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직장인 남자친구가 있다는 강 씨는 “저도 남자친구 없었으면 스터디를 하다가 (이성을) 만났을 수도 있었을 거 같아요. 저는 사실 여자끼리만 스터디를 하긴 했지만, 정말 위로가 됐거든요. 남녀 섞인다고 다르겠어요?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말도 잘 통하고, 그러다 보면 사귀게 될 수도 있고... 자연스러운 건데”라고 말했다. 이어 “학원에서도 커플들 많이 보여요. 공부 안하는 느낌은 아니에요. 같이 밥 먹고, 도서관 가고, 서로 깨워주고 그러죠”라고 전했다.

지난 12일 노량진역 인근 카페에서 스터디를 하고 있던 교원 임용 준비생 김모씨(26)와 한모씨(33)는 입을 모아 “수험생들이 연애를 하는 건 자기 마음”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나도 스터디를 8개를 하고 남자친구도 있는데 바쁜 와중에 많이 의지가 된다. 오히려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어서 수험생활을 버티기 쉽다”고 말했다. 한 씨 또한 “나는 연애하면 공부가 잘 안되는 스타일이라 연애를 하고 있진 않지만 연애를 하면서 위로를 얻는 수험생들도 있지 않겠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후 11시 무렵 한 맥줏집에서 만난 김다혜 씨(가명)도 옆에 앉은 남자친구를 바라보며 “(남자친구가) 많이 힘이 되죠. 공부하다 만나서 같이 공부하다가 이렇게 술 가끔 마시러 오고 그래요”라고 말했다. 둘은 맞춰 입은 듯이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일반 공무원 1년차 준비생이라는 김 씨의 무릎 위엔 작은 문제집이 올려져있었다. 김 씨는 “불안하니 가끔 이렇게 술 마시러 올 때도 문제집을 놓기가 힘들다”며 웃었다.

전문가들 또한 폐쇄적인 공간에서 수험생들이 고립돼 지내는 것보다, 나름대로의 내부 관계를 형성하는 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김성호 정신과 전문의는 “수험생활은 단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지칠 때 기댈 사람이 필요할 수 있다. 특히 연인 관계 같은 경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덜한 관계기 때문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험생활에선 공부의 절대적 양만큼이나 휴식의 질도 중요하다. 자신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 ‘잘 쉬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수험생들에겐 다시 공부에 전념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술 한 잔에도 '등골브레이커' 죄책감

# “여기는 뭐 공부하는 사람, 안하는 사람 구역을 나눌 수가 없어요. 하루에 10시간 공부하고 밤에 술집에서 잠깐 푸는 사람들도 많고. 그거라도 위로 삼는 거죠. 저도 제게 유일하게 줄 수 있는 선물은 가끔 친구 만나서 술 마시는 거? 그게 정말 작은 보상이라 생각해요.” - 이모씨(27), 1년차 공시생

노량진의 한 고시 학원과 PC방이 같은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노량진의 한 고시 학원과 PC방이 같은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노량진은 피시방과 술집 등 유흥 공간과 학원가, 독서실, 고시원이 한 건물에 모여 있는 독특한 동네다.

이틀 연속 내리던 비가 갠 지난 12일 목요일 밤 8시. 노량진 ‘컵밥거리’는 북적거렸다. 거리엔 공시생보다 인근 회사원들,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컵밥거리에서 떡볶이를 팔고 있었던 곽종수 씨는 “10시 넘어서 수업이 끝나면 그때서야 학생들이 나온다. 그래서 밤 11시 30분까지 장사를 한다”고 말했다.

노량진에서 10년간 컵밥 장사를 해온 한정희 씨(48)는 “노량진의 공시생들이 어떻게 노는지 취재하러 왔다”는 기자의 말에 “여기서 노는 학생들 없을 텐데요”라며 웃었다. 이어 “사람들이 한참 잘못 알고 있어. 여기 학생들이 어떻게 사는데요. 밤새 공부하고, 눈에 실핏줄이 터져도 병원을 안가요. 시간 아깝다고”라고 말했다.

노량진에 12년째 살며 과일가게를 하고 있는 박주수 씨(46)도 노량진 ‘컵밥거리’가 유명한 지 묻자 “몇 년 동안 노량진 살면서 한두 번 먹고 안 갔다. 고시생들만 시간 아끼려 먹는 거지 맛있어서 먹겠나. 영양가 하나 없는데 안타깝지”라고 말했다.

11일 밤 11시 30분 경 노량진의 한 고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나와 번화가를 향해 걷고 있다.
지난달 11일 밤 11시 30분 경 노량진의 한 고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나와 번화가를 향해 걷고 있다.

밤 10시가 넘어가자 슬슬 학원, 고시텔 등에서 수험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음식점과 술집 등에도 수험생들로 보이는 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노량진역 대로변과 강남교회 사이 골목에 위치한 고깃집 ‘연탄집’에 들어가자 수험생들로 보이는 두 남성이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2년째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다는 강정호 씨(26,가명)는 공부가 끝나고 잠시 친구와 술 한 잔 할 겸 들렀다 했다. 기자가 동갑이라고 말하자 “그 쪽은 (그 나이에) 일하고 있는데 난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강 씨의 이날 외출은 하루 종일 공부하다 잠깐 바람을 쐴 겸 나온 나들이였다.

“공부 솔직히 전 많이 안하는 편이에요. 한 하루 여덟 시간? 일요일은 쉬어요. 일주일에 두세 번 이렇게 잠깐씩 나오고요. 전 되게 많이 노는 편이죠”

술 한 병을 더 시켜줄 테니 좀 더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자 강 씨는 “괜찮아요. 다 먹었어요”라며 자리를 떴다.

노량진의 한 고시학원 인근 맥줏집 벽면에 쓰인 낙서. '경찰 공무원 시험에 꼭 붙게 해달라'는 공시생의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노량진의 한 고시학원 인근 맥줏집 벽면에 쓰인 낙서. '경찰 공무원 시험에 꼭 붙게 해달라'는 공시생의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저녁 늦게 들어간 작은 맥줏집 벽에 걸린 낙서에서 ‘어제 순경 1차 시험. 2차엔 꼭 반드시 붙게 해주세요! 반드시’라는 글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잠들기 전 잠깐 맥주로 목을 축이는 순간에도 공시생들의 머릿속에는 합격에 대한 부담감이 가득했다. 이들에게 아무 걱정 없이 술을 마시고 유흥을 즐기는 것은 까마득히 먼 일처럼 보였다.

노량진에서 ‘연탄집’을 18년째 운영 중이라는 사장 강혜진 씨(48,가명)도 “노량진 학생들은 어떤 유흥을 즐기냐”는 기자의 질문에 “여기 유흥이 어딨냐”며 고개를 저었다.

“유흥? 여기 그런 거 없어요. 뭐 공부하다가 근처 코인노래방 잠깐 가서 스트레스 푸는 거? 그거 한 시간 소리 지르면서 스트레스 푸는 건데 그게 유흥이라고 말해 어떻게. 얘네들은 오랜만에 가는 건데. 얘네들한텐 그거도 얼마나 사치라고.” 

이어 강씨는 ‘부모 지원 빵빵하게 받는 애들이 몰린다’는 것도 잘못 알려진 사실이라 했다.

“여기 애들 1년 2년차 때는 솔직히 부모 지원이 있어. 근데 3년차 때부턴 다 지들이 벌어 해. 그러니까 오래 걸리는 거야. 공부도 하고 알바도 하느라.”

“솔직히 공시생들은 기자님들이 먹는 이거(꼼장어) 못 먹지. 이거는 가격이 2000원 더 나가잖아. 얘네는 1000원, 2000원이 아깝다고. 내가 반찬 무한 리필 해주면 그걸 다 또 바리바리 싸가지고 들고 가서 공부하고. 그렇게 공부해도 떨어지고.”

이어 강 씨는 “노량진을 이상하게 쓰는 기자들이 너무 많다”며 역정을 냈다.

“알지도 못하면서 기사를 써. 노량진을 제대로 써야 돼. 여기 애들이 논다고? 나도 장사하고 있고 하지만 눈물 나. 애들이 얼마나 불쌍한데. 여기 애들이. 하루 종일 공부하다가 아주 오랜만에 나오는 거 같다가 뭔 유흥을 즐긴다면서. 아주 화가 나.”

◆ ‘논거 인 듯 논거 아닌 논거 같은 나’...맘 편히 쉬지도 못하는 공시생 현실

“킵 해놓은 거 쓸게요.”

12일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 노량진 뒷골목에 위치한 지하 코인노래방에 젊은 남녀 4명이 들어왔다. 주인아주머니는 익숙한 듯 3번방에 들어가라고 말했다. 코인노래방 19개 호실 중 6개 방이 차 있었다.

‘킵’이 무엇이냐고 묻자 주인은 “왜 시간 없을 때 있잖아요. 학생들이 학원에 급하게 들어가 봐야 할 때. 이미 결제해 놓은 걸 ‘킵’ 해놓고 나중에 쓸 수 있게 하는 거예요”라고 답했다. 입구 쪽 냉장고 벽면에 그려진 그림 위에는 나뭇잎 모양의 포스트잇들이 붙어 있었다. 포스트잇에는 사람 이름과 시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코인노래방 주인은 “예전에는 1시면 꽉 차서 사람들이 로비에서 기다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없어요. 이젠 잠깐씩 놀지도 않나봐요”라고 말했다.

노량진 공시생들에겐 ‘잠깐의 휴식’도 사치가 됐다. 지난 5월 한 커뮤니티에 익명의 공시생이 “독서실에서 5년째 혼자 공부하려 하니 외롭고 힘들다”는 글을 올리자 “지금 놀면 ‘엠생(엠X인생)’된다” “그렇게 놀 궁리만 하니 N수하는 것이다” “그런 나약한 생각을 할 시간에 공부나 해라” 등 공시생을 비판하는 댓글들이 연속으로 달렸다.

노량진역 3번 출구 앞에 위치한 경찰고시학원 앞에 공시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기자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한 학생은 "합격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공부 시작하며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됐다"고 말했다.
노량진역 3번 출구 앞에 위치한 경찰고시학원 앞에 공시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기자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한 학생은 "합격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공부 시작하며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됐다"고 말했다.

고시원들이 모인 골목 지하에 위치한 한 당구장의 주인은 “학원들이 실강비를 올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가격이) 부담스러운지 길게 노는 것도 안 해요”라고 말했다. 당구장 안에는 할아버지 두 분만이 당구를 치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피시방 때문에 다른 업소들이 타격이 커요. 예전에는 그래도 학생들이 60~70%는 됐는데 요즘은 30%도 안돼요. 학생들 사정이 빤해서 그런지 (노량진에) 피시방만 엄청 들어오고. 고구려 있던 자리가 200평인데, 거기에도 이달 말에 피시방 오픈한대요. 내가 말해주는 피시방들 가 봐요. 엄청나게 잘 해놨으니까”라고 말했다.

기자는 당구장 주인이 말했던 피시방들 중 한 곳에 찾아갔다. 1~2층으로 운영되는 대형 피시방 입구는 작은 카페처럼 꾸며져 있었다. 총 240석이라는 피시방 안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의 머리가 보였다.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매니저는 “게임하는 사람이 70% 정도, 인강을 듣거나 프린트 출력을 하는 사람이 30% 정도 돼요. 시험 끝날 때나 이럴 때는 꽉 차는데, 평소에는 절반 정도. 오후나 저녁 즈음 지나면 많이들 오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매니저 옆으로 아르바이트 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쟁반에 받친 컵라면을 들고 지나갔다. 매니저는 “여기서 식사를 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피시방 건물 옆에서 만난 김모씨(30)과 박모씨(29)도 담배를 피우며 “(피시방에서) 죽치고 있진 않는다”며 “밥도 저기(피시방)서 같이 먹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작년에는 거의 안 했는데. 한두 번 떨어지니까... 멍해질 때가 많죠. 눈은 보는데 뭘 봤는지도 모르겠고. 그럴 땐 나와서 담배 피다가 (피시방)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광주가 고향이라는 박 씨는 “왔다갔다 하는 이동시간이 아까워서 노량진에 들어왔다”고 했다.

이동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고 여기는 노량진 공시생들에게 피시방은 그나마 눈치 보지 않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는 공간이다. 깨어 있는 시간에 오롯이 공부에만 100% 집중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할 텐데도, 이들에게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과 외부의 압박감은 상당수 존재한다.

9급 공무원을 4년째 준비 중인 김윤지 씨(29)는 “며칠 전 8개월 만에 대학 친구와 만나 저녁을 먹고 들어왔는데 부모님이 ‘너가 직장인도 아닌데 왜 불금을 즐기냐’고 핀잔을 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수학 교사를 꿈꾸며 임용 고사를 준비하는 박선화 씨(27)는 “초수생일 땐 괜찮았는데 자꾸 시험에 떨어지니 이젠 인근 공원 산책하는 것조차 눈치 보인다”며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노는 시간을 줄이려 스트레스 해소를 담배 피우는 것으로 대체하는 심정이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노량진에서의 시간은 바깥보다 냉혹하다. 시험 날짜는 이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8년동안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다는 네티즌이 한 인터넷커뮤니티에 "8년째 공시생입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사진='오늘의유머' 화면 캡처 ID Piadpa, 2016년 6월 18일
8년동안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다는 네티즌이 한 인터넷커뮤니티에 "8년째 공시생입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사진='오늘의유머' 화면 캡처 ID Piadpa, 2016년 6월 18일

공무원 시험을 장기간 준비하다가 다른 직업을 구해 취직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지난 2016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인사담당자가 서류전형 합격자를 선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기준은 ‘최종 학교 졸업 시점’이었다. 다른 취업준비생과 달리 공시생들의 시험 준비 기간은 공백기가 될 뿐이다.

이 같은 취업 상황은 공시생들이 계속해서 시험에 매달리게 되는 원인이 된다. 올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그저 나이만 한 살 더 먹게 된다’는 것,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더욱 좁아진다’는 것은 공시생들이 스스로를 매섭게 채찍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피시방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박 씨는 “공부하다 보면 불안한데 그렇다고 종일 불안하기만 하면 돌 것 같아서 (피시방에) 오는 거예요. 차라리 나가서 바람 쐐라 사람 만나라 그러기도 하지만. 괜히 시간 쓰고 돈 쓰고 만나봤자 하는 얘기도 뻔한데”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멀어지는 박 씨의 발걸음 뒤로 희미한 그림자가 계속해서 따라붙었다. 공부에 대한 압박, 합격에 대한 불안, 잠깐의 휴식에도 더해지는 죄책감, 점점 짧아지는 시간에 대한 초조함, 어떻게든 내보내기 힘든 스트레스가 그림자의 어둠을 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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