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의 덫에 빠진 대한민국②] 더블케어 넘어 트리플케어, 캥거루 자녀 품다 등골 휜다
[효도의 덫에 빠진 대한민국②] 더블케어 넘어 트리플케어, 캥거루 자녀 품다 등골 휜다
  • 최은지 기자
  • 승인 2018.07.21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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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자녀 뒷바라지하는 50·60세대의 '부양부담' 이면엔 저성장, 청년 실업, 만혼 세태
일본의 '더블케어' 연령층 점점 낮아지는 추세..."우리나라도 국가적 차원의 부양 정책 마련 필요해"

[톱데일리 최은지 기자] # 상담사 박모씨(58)는 근무시간 중 은행을 찾았다. 지방 중소기업에 취업해 월급 200만원을 받는 딸이 "월세가 부족하다"며 연락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서른 다 돼 겨우 직장 잡아 이제 좀 딸 걱정에서 해방인가 싶었지. 근데 얼마 전 이직한다고 토익학원을 다니겠다는데 돈이 좀 모자라대. 그래서 학원비 겸 월세에 보태라고 돈을 주고 있지"라고 말했다. 박 씨는 지난해부터 80대 시아버지를 집으로 모셨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적적하실까봐 집으로 모셨는데 다시 시집살이하는 기분"이라며 웃던 박 씨는 "딸 결혼자금에 보태려고 남편과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죽어라 뒷바라지만 하다 노년에 용돈이나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 ‘더블케어’ 넘어 ‘트리플 케어’까지...노부모 부양하랴, 성인자녀 돌보랴, 허리 휘는 50·60세대

지난해 3월 24일 하우징 렌탈 웹사이트 '어보도'에 따르면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을 꺼리는 ‘캥거루족’이 늘고 있다.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성인 자녀는 34.1%로 이들 중 9.2%는 무직 상태이다. 취업한 사회초년생들은 대출을 상환하고 생활비를 절약하는 방안으로 부모의 그늘 안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생활을 해야 할 나이인 밀레니얼세대가 사회경제적 여건으로 부모에 의존을 하는 '캥거루족' 등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KBS 뉴스
사회생활을 해야 할 나이임에도 사회경제적 여건으로 부모에 의존을 하는 '캥거루족' 등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KBS 뉴스

청년 실업·만혼(晩婚)·저성장 문제 등으로 부모에게 기대는 자녀들이 늘어나며 부담은 50·60대로 전가된다. 일본의 소마 나오코 교수는 이를 '더블케어(Double Care)'라 불렀다. 이는 성인 자녀와 노부모를 동시에 지원하는 상황을 말한다. 지난 3월 13일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가 지난해 12월, 성인 자녀를 두고 있으며 양가 부모 중 한 분 이상이 살아있는 국내 만 50~69세 남녀 20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4.5%(691가구)가 더블케어인 것으로 나타났다.

설상가상 최근엔 맞벌이 자녀를 위해 손주까지 양육해야 하는 '트리플 케어(Triple Care)'까지 나타났다. 2015년 신한 은행이 금융 소비자 2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통사람 보고서'에 따르면, '트리플 케어' 가구 일부는 자녀에게 월 55만원 정도의 수고비를 받지만 대다수는 그마저도 받지 않았다. 손자를 돌봐주는 평균 기간은 26.5개월로 노부모 간병 기간 22개월보다 길었다.

최근엔 '캥거루족'에 이어 이미 결혼을 해 독립을 했는데도 돈이 필요한 순간 부모에게 도움을 받는 20·30세대 '신 캥거루족'이 생겨났다. 손주까지 돌보는 등 '트리플 케어'를 해야 하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사진=잡코리아 카드뉴스(2018)
최근엔 '캥거루족'에 이어 이미 결혼을 해 독립을 했는데도 돈이 필요한 순간 부모에게 도움을 받는 20·30세대 '신 캥거루족'이 생겨났다. 손주까지 돌보는 등 '트리플 케어'를 해야 하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사진=잡코리아 카드뉴스(2018)

이런 현상 이면에는 부모의 과잉보호가 자리잡고 있다. 현 20·30세대는 상대적으로 부모의 높은 관심 아래에서 자랐다. 전쟁 직후 빈곤함으로 먹고살기 바빴던 베이비붐세대는 '내 자식에게는 가난함을 물려줄 수 없다'는 의지가 강했다. 이들은 교육, 생활방식 등 자녀의 생활전반에 전 세대에 비해 높은 관심을 보인다.

허두영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는 "베이비부머에 해당하는 50·60세대는 자녀에 대한 투자가 남달랐다"며 "그러다보니 성인이 돼 사회에 나가도 자녀들은 여전히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고민을 나눌 멘토를 요구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 은퇴한 베이비붐세대 직장인이 방송에 출연해 심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베이비붐세대는 젊어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다 지금 와서 조기 은퇴, 자녀 교육, 부모 봉양 등의 문제를 떠안게 됐다. 심각한 우울증의 위험이 있으며 이를 방치하면 사회적 악순환이 된다. 사진=KBS 창원 다큐 '베이비부머 100세시대, 은퇴 그후 새희망을 찾다'편
한 은퇴한 직장인이 방송에 출연해 심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의 50·60대는 젊어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다 지금 와서 조기 은퇴, 자녀 교육, 부모 봉양 등의 문제를 떠안게 됐다. 이들은 심각한 우울증의 위험을 안고 있으며 이를 방치하면 사회적 악순환이 될 수 있다. 사진=KBS 창원 다큐 '베이비부머 100세시대, 은퇴 그후 새희망을 찾다'편

저성장과 청년실업률은 성인 자녀의 정신적ㆍ경제적 독립을 늦추는 요인이다. 한국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1980~1990년에 자식은 일단 길러 놓으면 손을 떼도 되는 존재였다. 당시 경제성장률은 9.8%였고 청년실업률은 5.5%에 불과했다. 본인이 노력만 하면 취업은 가능했던 시대였다. 

현재의 20·30세대에겐 취업 문턱은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1%, 최근 5년 평균을 따져도 3%를 맴돈다. 청년실업률은 치솟고 있다. 지난해 1분기 말엔 청년(15~29세) 실업률이 11.3%까지 올라갔다. 취업 희망 여부와 상관없이 취업이 가능한 잠재인구를 고려한 '확장실업률'은 24%다. 청년 10명 중 2.5명은 실업상태다. 청년층의 미혼 인구 비율은 2000년 82.1%였지만 2015년 이후로는 94.1%로 올라갔다. 

제 때에 경제적 독립을 못한 자녀들은 집안의 골칫거리가 된다. 4년째 임용고사 시험에 도전 중인 이모씨(27·서울)는 60대 부모와 함께 산다. 시험에 붙으면 독립하려 했지만 계속 낙방하고 있다. 이 씨는 "'공부 말고 취직을 해보라'며 부모님이 조언하는 날이면 곧장 말다툼으로 이어 진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어 그는 "부모님과 관계도 소원해져서 요즘은 원룸을 구하려 하는데 소득이 없다. 공부는 집 근처 공공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집에 늦게 들어가 부모님을 피하고 있다"고 했다.

송신영 에이플러스에셋 재무설계사는 "60살이면 고령이었던 과거와 달리 20~40년 이상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본인의 노후 대신 자녀교육에 헌신했던 부모들이 개인적으로 부담을 느낀다"며 "이제 소비 활동을 해야 하는 세대가 됐지만 역대 최고의 실업률, 저성장 등으로 자녀들의 삶도 팍팍해 부모 봉양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 '더블케어'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양 문제 거시적 논의 필요

전문가들은 부양 부담은 이번 세대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 전망한다. 사회·경제적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다음세대까지 고스란히 겪게 될 수 있기에 위기의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보다 청년들의 만혼 현상을 일찍 경험한 일본은 50·60세대의 더블케어 현상에 미리 대비해왔다. 요코하마시에서는 상담 창구를 설치해 더블케어와 관련된 고충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원스탑 상담을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도 사태는 심각했다. 현재 더블케어의 덫에 빠진 연령대가 이미 40대로 낮아졌고, 30대로까지 낮아질 조짐을 보여 정부가 비상에 걸렸다. 

윤치선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구위원은 "(일본의 상황은) 남의 일이 아니다. 더블케어 상태는 지금의 50·60세대 원해서 된 게 아니라 수명 연장과 저성장이라는 거시적 환경 변화가 개인들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 것"이라며 "피할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일 방법을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고령화나 만혼화 속도에 비해 육아 및 부모 간병에 대한 지원 제도가 미흡한 상황"이라며 "앞으로 계속 늘어나는 사회적 부양비용이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길 수 있어 부양 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논의와 국가적 차원의 부양 정책 마련 등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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