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와 함께' 달린 한국영화...'눈물즙' 짜는 '신파의 제국'
'신파와 함께' 달린 한국영화...'눈물즙' 짜는 '신파의 제국'
  • 최은지 기자
  • 승인 2018.08.0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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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데일리 최은지 기자] # “지난해 ‘신과 함께-죄와 벌’을 친구와 봤어요. 재밌는 부분도 있었지만 극 후반 효심을 자극하는 부분은 좀 과하다고 생각했죠. 극장 밖을 나서던 친구가 ‘영화 보다 울었다’며 무척 자존심 상한 표정이었어요. ‘영화보다 울 수도 있지 않냐’고 물어보니 ‘신파 따위에 눈물을 낭비했잖아’라고 말한 게 기억에 남아요.” -대학생 이모씨(20)

한국형 블록버스터 점유율이 2011년부터 7년 연속 50%를 넘는 등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국내 대형투자배급사들은 ‘국제시장(2014)’ ‘부산행(2016)’ ‘군함도(2017)’ ‘신과 함께-죄와 벌(2017)’ 등 ‘신파 논란’이 따라붙는 대작들을 매년 쏟아내고 있다. 관객들은 반복되는 신파극에 피로감을 느끼고 불만을 표출하면서도 해당 영화를 보러간다. 이런 문화 이면엔 소수 대기업의 독점적 이익을 보전한 한국영화산업의 수직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개봉해 1440만의 관객을 동원한 전작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 1일 개봉한 ‘신과 함께-인과 연’이 9일 기준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많은 대중이 선택한 영화임에도 “또 한국형 ‘신파’ 등장했다” “아까운 눈물 쏟을 거 알면서 보러갔다” “1편처럼 또 신파로 무장했겠지” 등의 영화평들을 심심찮게 살펴볼 수 있다. 사진='신과 함께-인과 연' 공식포스터
지난해 개봉해 1440만의 관객을 동원한 전작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 1일 개봉한 ‘신과 함께-인과 연’이 9일 기준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많은 대중이 선택한 영화임에도 “또 한국형 ‘신파’ 등장했다” “아까운 눈물 쏟을 거 알면서 보러갔다” “1편처럼 또 신파로 무장했겠지” 등의 영화평들을 심심찮게 살펴볼 수 있다. 사진=‘신과 함께-인과 연’ 공식포스터

그간 천만 관객몰이에 성공한 역대 한국영화를 보면 신파는 안정적인 ‘흥행티켓’이다. 영화 후반부에 ‘강력한 가족애’로 관객의 눈물을 뽑았던 ‘신과 함께-죄와 벌(1440만, 2017년)’의 흥행공식은 ‘국제시장(1426만, 2014)’ ‘7번방의 선물(1281만, 2013년)’ ‘해운대(1145만, 2009년)’ ‘괴물(1302만, 2006년)’ ‘태극기 휘날리며(1175만, 2004년)’ 등에서도 이어진다. CJ E&M 영화사업부문 대표로 일했던 길종철 한양대 연극영화과 교수는 “국내 관객들이 ‘사연 있는 인물’에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몰입하기 때문에 신파 스토리텔링이 통한다”고 말했다.

‘신파’도 영화의 전체적 맥락과 정서에 부합한다면 훌륭한 극적 장치가 될 수 있다. 신파극의 사전적 정의는 ‘관객에게 눈물을 흘리게 해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형 신파’는 감동영화와 분명 차이가 있다. 똑같은 부성애를 다루지만 일본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감동으로 다가오고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의 죽음은 신파가 된다.

이에 대해 쇼박스 영화홍보마케팅 김모씨는 “국내 영화가 신파라고 비난받는 것엔 억지 감정을 자아내 관객의 극적 몰입을 막기 때문”이라고 9일 답했다. 김 씨는 “국내에서 흥행하려면 대중의 취향을 만족시키고 돈을 벌 수 있는 ‘상업성’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장르적 특성과 무관하게 한국인이 좋아하는 ‘익숙한 이야기’ 이른바 신파적 소재를 부을 수밖에 없다. 액션물인 줄 알고 봤는데 갑자기 감정에 호소하니 당연히 관객에겐 억지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광화문 촛불집회를 연상하게 하는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억지감동’에 대한 거부감을 느꼈다. 극 중반에 접어들면서 영화는 1945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자의 참상보다는 한국인 내부의 갈등과 일본인과 한국인 지도자 사이의 음모, 그리고 군함도를 탈출하기 위한 계획과 과정을 극의 중심에 놓는다. 당시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주제가 ‘군함도 대탈출기’로 빠지다보니 주인공 사이의 억지 인연, 신파적 만남과 러브라인 등 내용이 진부하게 흘러간 게 아쉽다”고 말했다.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광화문 촛불집회를 연상하게 하는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억지감동’에 대한 거부감을 느꼈다. 극 중반에 접어들면서 영화는 1945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자의 참상보다는 한국인 내부의 갈등과 일본인과 한국인 지도자 사이의 음모, 그리고 군함도를 탈출하기 위한 계획과 과정을 극의 중심에 놓는다. 당시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주제가 ‘군함도 대탈출기’로 빠지다보니 주인공 사이의 억지 인연, 신파적 만남과 러브라인 등 내용이 진부하게 흘러간 게 아쉽다”고 말했다.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8일 저녁 교대역 근처 카페에서 만난 신동준 씨(34, 홍익대학원 앱 개발자)는 “사람들이 ‘신파’를 욕하는 데는 억지 감동도 있겠지만 독점도 있다”며 “유독 신파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들은 1달 반 넘게 영화관에서 상영된다. 재밌는 독립영화를 보려면 KT&G상상마당시네마, 서울극장 등에 직접 찾아가야 하니 이럴 땐 장기 흥행하는 (신파)극들이 얄밉다”고 말했다.

오늘날 한국영화산업은 소수 대기업의 독점적 이익이 가장 잘 보장된 곳이다. CJ(전신 제일제당), 롯데 등 소수 대기업 영화제작사가 기획, 제작, 투자, 배급, 상영, 부가판권(케이블tv)의 영화 산업 전 과정을 독점했다. 이런 제작실정에서 ‘신파’를 소재로 한 대작영화가 3대 국내 멀티플렉스 스크린(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에 걸리면 예술·독립영화와 같은 다양성 영화들은 상영관을 잡기 어렵다.

지난 2014년 연말에 개봉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 리틀빅피처스 제작)’이 대표적이다. 당시 흥행 대작 ‘국제시장(CJ E&M 제작·배급·상영)’에 밀려서 가족영화임에도 개봉 첫날부터 조조 시간대나 심야 시간대로 배정됐다. 엄용훈 前 리틀빅피처스대표는 2015년 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관객·평론가의 호평과 입소문으로 상영관을 늘려달라는 요청도 많았지만 중소배급사여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외적인 부분’ 때문에 관객들이 영화를 보지 못한 게 아쉽다. 하나의 대기업이 수직계열화해 영위하는 구조. 이 연결고리를 끊지 않는다면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한들 거대 자본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의 ‘자사 영화 밀어주기’에서 도태될 뿐이다. 지난해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PIC) 집계를 보면 전국 극장 452개(스크린 수 2766개)중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3대 멀티플렉스 상영관은 354개(스크린 수 2545개)다. 전체 관객의 90% 이상을 가져가는 셈이다.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강화된 것은 영화제작사가 대형화, 대자본화하면서 편당 제작비를 올렸기 때문이며, 동시에 이들이 영화관의 주인이 되어 제작과 상영을 안정적으로 묶어 흥행의 조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진=MBC 뉴스 화면 캡쳐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강화된 건 영화제작사가 대형화, 대자본화하면서 편당 제작비를 올렸기 때문이며, 동시에 이들이 영화관의 주인이 돼 제작과 상영을 안정적으로 묶는 '흥행의 조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진=MBC 뉴스 화면 캡쳐

일부 관객들도 영화의 선택권에서 피해를 본다. 최고은 씨(29, 단국대 영화콘텐츠 대학원생)는 “일본 애니메이션, 예술영화 등 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도 집 앞 영화관엔 국내외 대작영화만 있다”며 “그럴 땐 더숲아트시네마, 아리랑시네센터처럼 집에서 1시간이 넘는 영화관까지 가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영상 제작자를 꿈꾼다는 최 씨는 “재미와 감동이 두루 보장된다는 이유로 안정성이 검증된 선택만 반복한다면 감독만의 개성이나 스타일이 묻어나는 작품은 찾기 힘들 것”이라 덧붙였다.

박찬욱 영화감독도 영화 ‘아가씨(2016)’ 제작발표회에서 대형 투자배급사 영화의 제작방식을 지적한 바 있다. 박 감독은 “상업성을 추구한다고 (영화제작사들이) 흥행공식에 의존해서 검증된 방식대로만 영화를 만들어낸다면 문제다. 그런 영화만 만들어내면 사람들이 싫증을 내고 상업성이 떨어지게 된다는 걸 대기업 영화제작사들이 인지해야 한다. 대형 투자배급사 영화가 늘 비슷비슷하다고 언론이나 관객이 계속 지적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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