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서재] 그믐, 또는 당신이 돈 되는 글쓰기를 하는 방식
[기자의 서재] 그믐, 또는 당신이 돈 되는 글쓰기를 하는 방식
  • 신진섭 기자
  • 승인 2019.06.28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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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데일리 신진섭 기자 = 때론 내용이 아니라 형식과 맥락으로서 가치를 갖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뒤샹의 샘. 소변기를 떼다가 출품하니 ‘제도화하고 형식화한 미술 시스템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 제기’가 됐다. 

장강명 작가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하 그믐)’이 그런 식으로 읽힌다. 내용이 형식을 위해서 존재한다. 신파와 감동을 조직하는 텍스트는 비즈니스란 형식을 위해 작위적으로 쌓아 올려졌지만 작가의 의뭉스럽고 날렵한 문체와 혼란스러운 설계방식 덕분인지 이를 알아차리는 이는 적다.

비평을 읽을 때 알아둬야 하는 단어들이 있다. 본원적, 근원적, 심미적, 독보적, 현란한, 독특한, 환상적 등 단어에는 삭선을 그어야 한다. 이는 대체로 비평가들의 ‘읽어도 무슨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말을 대체하는 어휘다. 이 책을 향한 비평들도 대체로 그랬다. 모르면 밥줄이 끊긴다. 모르면 '불가해성', '삶의 난해함' 등의 말로 독자의 오독을 부추기는 게 프로들이 살아남는 힘이다. 

그믐은 ‘감정의 뷔페’다. 미식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부담 없는, 애슐리나 자연별곡같다. 소설로 먹고사니즘을 실천하는 사내는 접시에 감정을 산처럼 쌓기 시작한다. 학교폭력과 모정, 연애, 직장생활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들이 반복적으로, 그리고 형식적으로 교차된다. ‘어릴 적 괴롭힌 당한 기억은 있지? 그럼 멜로물은 좋아하지? 아니면 설마 엄마는 있지? 엄마가 없어도 설마 회사는 다니지?’ 여기에 SF 한 방울, 하루키 식의 의미는 전혀 없지만 무게감은 상당한 맥거핀(우주 알 등) 두 스푼을 넣은 뒤 홍상수식으로 휘저으면 장강명의 비즈니스 글쓰기가 완성된다. 트렌디하고 #인스타적이다. 

장강명이란 ‘간판’이 쏘는 네온사인에 홀린 독자들은 이 잡탕찌개를 들고 인지부조화를 겪다가 자아를 재조립하게 된다. ‘이해가 안 되지만 아무튼 감동이야.’ ‘문학동네작가상 받았잖아. 역시 대단해 무슨 소리인진 모르겠지만.“ 그의 소설은 평단을 거치면서 대단하지 않으면 안 될 어떤 것이 돼버렸다. 헐거벗은 임금님을 누구도 지적하지 못한다. 

작가가 책에서 말하는 ’패턴‘은 인간의 어떤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클리셰에 쉽사리 넘어가는 출판 비즈니스를 지칭하는 듯 보인다.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 혹은 ’인터스텔라‘에서 4차원적 시간을 따오고 성경과 ’밀양‘ 어딘가에서 해묵은 속죄를, ’마더‘보다 질낮고 단편적이지만 이해하기 쉬운 ’모정‘을 쉐이커에 넣고 마구 섞었다. 누가 그랬다. 엄마를 세 번 읊조리면 누구나 눈물이 난다고. 엄마는 언제나 잘 팔린다.

작가의 진심은 평단과 독자의 주된 해석보다는 사변적 이야기와 맥락에 있다고 본다. 이는 숨겨져 있다. 들키면 나중에 발뺌할 수 있을 정도로. 아래의 텍스트를 읽을 때 그가 문단의 가식과 허위를 고발한 르포 ’당선, 합격, 계급‘을 썼었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제가 소설을 쓰는 첫 번째 이유가 돈인 것은 아닙니다. 세 번째 이유쯤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인생을 걸고 어떤 일을 할 때, 세 번째 이유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 밥벌이의 싸움을 피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참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첫 번째, 두 번째 전장을 가벼이 여긴다는 의미가 아님을 잘 알아주시리라 믿습니다. … “ - 수상소감 中

학습만화 얘기도 마찬가지. 이 책에서 돈 잘 버는 학습 만화 작가 얘기는 흘려 넘기기 쉽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우화다. 책방보다는 마트에서 잘 팔리는, 공부 못하는 애들에게 엄마가 사서 안겨주는 그 책 때문에 출판사가 운영된다. 출판사 직원이 밥을 먹는다. 진실성 없이 클리셰 범벅인 책을 써도, 그런 걸 써야만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는 독자와 평단, 그들이 작가를 타락시킨다. 타락한 작가를 살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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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2019-07-11 17:57:20
그와 한통속이거나(표백) 한통속이길 바라거나(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그들 스스로가 통속이기때문이 아닐까요. (아마 그 무엇이 되었든 세번째 이유쯤일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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