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3만 시대]⑤봉사·창업으로 희망 찾는 탈북민
[탈북민 3만 시대]⑤봉사·창업으로 희망 찾는 탈북민
  • 최종환 기자
  • 승인 2019.06.27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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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과 자신감으로 무장한 북한이탈주민
이청 “함께 도우며 행복한 삶 이뤄낼 것”
문성림 “재밌는 일 찾으면 누구나 성공”

톱데일리 최종환 기자 = ‘북한이탈주민은 사회적 약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귀감이 되는 이들이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주말에도 봉사활동에 빠져있거나 재능을 살려 창업에 성공하는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이웃이 그 주인공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탈북 여정을 지나 안정적으로 남한에 정착한 두 명의 북한이탈주민은 하나 같이 긍정과 자신감을 강조했다.

사회적 편견과 지원 부재로 정착에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남한 사회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이들을 만났다.

 

이청 주사는 2014년 4월부터 안산시청 외국인주민지원본부의 특별순찰대원으로 일하고 있다.(사진=최종환 기자)
이청 주사는 2014년 4월부터 안산시청 외국인주민지원본부의 특별순찰대원으로 일하고 있다.(사진=최종환 기자)

■ ‘이주민 돕는 탈북민’ 이청 외국인주민본부 주사

안산시청 외국인주민지원본부 특별순찰대의 이청(47·가명) 주사는 2007년 탈북해 중국과 라오스, 태국을 거쳐 10여 년 째 남한생활을 하고 있다. 2014년 4월부터 이주민 돕는 일을 시작해 어느덧 6년차 공무원이 됐다.

첫 인상은 사뭇 진지하고 굳어 있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했다. 어릴 땐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 철도 기관사를 꿈꿨다는 그다.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가정을 꾸리고, 안정된 직장을 갖는 게 행복한 삶 아니겠어요? 저도 이주민(탈북민)이지만 함께 돕고 살아간다는 생각만 하면 이보다 뿌듯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사가 담당하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일대는 2009년 다문화특구로 지정됐다. 외국인 비율은 안산시 인구 71만6000명 중 8만6780명으로 10% 정도다. 이주민을 위한 외국인주민센터가 있고 한글보다 외국어로 된 간판이 더 많다. 100여 개 국가에서 온 이들이 한 마을에서 생활하다보니 ‘한국 속 작은 세계’라고 불린다.

이 주사는 주민 안전을 위해 온 종일 마을 구석구석을 누빈다. 늦은 밤 가로등이 꺼져있거나 길을 헤매는 이가 없는 지 확인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처음에는 순찰대 업무가 낯설고 힘든 부분이 적지 않았다. 외국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말 한마디로 오해를 산 경우도 있었다. 새벽까지 순찰 근무를 설 땐 육체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3인 1조로 이뤄진 팀에서 조직력을 다졌다.

 

이 주사는 업무 특성상 긴급 상황을 처리할 때가 많다. 늘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사진=남북하나재단 제공)
이 주사는 업무 특성상 긴급 상황을 처리할 때가 많다. 늘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사진=남북하나재단 제공)

직업 특성상 예상치 못한 일을 겪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난 설 연휴 땐 중국 동포가 새벽녘 만취한 상태로 안산역 인근 지하 도로를 걷다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사건을 접수한 이 주사는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도로를 통제하고 신원을 확인하는 등 사건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가 길을 헤매는 일도 있었다. 집 주소를 몰라 방황하는 그를 이 주사가 사는 곳까지 바래다주기도 했다. 할아버지 주머니에서 며느리 연락처를 찾아 신원을 빨리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주사는 “근무를 설 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며 “몸은 힘들지만 나의 작은 노력이 이웃을 돕는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솟을 때가 많다”고 했다.

이웃을 생각하는 일이 천성이라고 해야 할까. 이 주사는 본업 말고도 3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대부분 명예직으로 긴급 상황을 처리하는 일이다.

법무부 산하 인천 출입국사무소 이민 협력관 활동이 대표적이다. ‘특별 사회봉사요원’ 신분으로 이주민들에게 필요한 행정 서류가 무엇인지 안내하고 유관 기관과 협력해 조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다.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쌓기 위해 아파트 동대표도 맡고 있다. 주민들이 생활에 불편을 겪으면 달려가 해결사 역할을 한다.

이 주사에게는 ‘사랑하면 하늘이 열리고 뜻이 이루어진다’는 좌우명이 있다. 남한에 정착한 이주민 누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믿는 그다.

 

문성림 대표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영문이름 루시(LUCY)와 네일(NAIL)을 합쳐 네일샵 루시네일을 열었다.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사진=최종환 기자)
문성림 대표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영문이름 루시(LUCY)와 네일(NAIL)을 합쳐 네일숍 루시네일을 열었다.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사진=최종환 기자)

■ ‘재능 살려 창업한’ 문성림 루시네일 대표

문성림(36) 루시네일 대표는 재능을 살려 창업에 성공한 경우다. 남북하나재단의 취·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이수해 네일숍을 차린 사례는 문 대표가 최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한 결과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한 그다.

문 대표는 2002년 1월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사를 넘나든 탈북행을 택했다. 당시 나이는 19살 이었다. 남한에 정착해 1년 만에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2005년 연세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라는 말이 솔깃해 공무원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기회는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학교를 다니다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기획하고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껴 남들이 안하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문 대표는 대학 졸업 후 2년 동안 IT회사에서 일했다. 웹, 모바일 기획을 맡았으며 남다른 재능을 키웠다. 그는 “고된 일상이었지만 다양한 사람과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으로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를 봐줄 곳이 마땅치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면 경력이 단절될 거라는 두려움도 컸다.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 나만의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해 네일아트에 눈을 돌렸다. 학창시절부터 꾸미고 만드는 일에 재주가 남달랐던 만큼 일정 교육만 받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당시 상황을 떠 올린 문 대표는 “아이를 가진 뒤 흔히 말하는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며 “네일아트에 관심을 갖게 돼 관련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를 돌봤다”고 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일선 학원에서 진행하는 네일아트 자격증반은 3개월 과정으로, 수강료만 200만 원에 달했다. 피부 관리와 메이크업반도 이수하려면 각 200만 원씩 추가 비용이 들었다. 재료비까지 포함하면 10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부담을 느낀 문 대표는 남북하나재단에 문을 두드렸다. 당시 남북하나재단은 취업지원 바우처를 운영하고 있었다. 북한이탈주민이 재단과 협약한 학원 등에서 교육을 이수하면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문 대표는 재단으로부터 네일아트 자격증반 비용의 절반을 지원받았다. 상권 분석과 대출 등 창업에 필요한 여러 정보도 얻었다.

문성림 대표는 네일아트 분야 전문 강사로도 성장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알리고 싶어 한다.(사진=최종환 기자)
문성림 대표는 네일아트 분야 전문 강사로도 성장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알리고 싶어 한다.(사진=최종환 기자)

2년 동안 준비한 끝에 문 대표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영문이름 루시(LUCY)와 네일(NAIL)을 합쳐 네일숍 루시네일을 오픈했다.

회사 이름을 알리고 고객 유치를 위해 여러 이벤트를 마련했다. 회원권을 재결제하는 손님에게는 적립금을 주기도 했다. 그는 “네일아트는 매니아층이 많다. 최근에는 남자 손님도 많아지고 있다”며 “단골손님은 100명이 넘는데, 대부분 재결제를 하거나 30만 원 상당의 회원권을 구매한다”고 했다.

문성림 대표는 탈북민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자신만의 강점을 찾라고 조언했다. 그는 “무엇이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분야를 찾고 꾸준히 하면 성과를 이룰 수 있다”며 “스스로 부족하고, 한계를 결정하기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본인만의 사업을 꾸리기까지 과거 힘겨운 과정을 거쳤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창업 신화를 쓰고 있다는 자신감은 물론, 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는 자부심도 느껴졌다.

문 대표는 향후 계획에 대해 “네일아트 강사로 우뚝 서 나만의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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