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서재] 리처드 도킨스는 당신이 '이기적'이라 말하지 않았다
[기자의 서재] 리처드 도킨스는 당신이 '이기적'이라 말하지 않았다
  • 김성화 기자
  • 승인 2019.07.05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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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넌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

나를 위한, 나만을 위한 이기심 대신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이타심은 인간이 가져야 할 미덕으로 여겨진다. 이타심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기 때문에 쉽게 행할 수 없어서인 점도 있다.

그렇다면 도킨스는 인간이 이기적이란 걸 수백 쪽에 걸쳐 말하고 싶은 걸까? 아마 도킨스는 “인간의 본능은 이기적인가”라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답변할 것이다. 그 이유는 유전적·진화적 관점에서 이기심은 때때로 이타심과 통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는 사회성 곤충으로 여겨지는 벌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일벌의 침은 강력한 독을 품고 있지만 침을 쏘면 내장이 같이 빠져나와 죽게 된다. 하지만 침을 쏘지 않으면 집단을 지킬 수 없다. 일벌이 침을 쏘는 행위는 모든 생물체의 가장 근본적인 본능 ‘생존’과 ‘번식’을 포기하는 것이다. 반대로 여왕벌은 오로지 ‘생존’과 ‘번식’에만 충실하다. 인간의 기준으로 일벌과 여왕벌은 극단적 이타심과 이기심의 사례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정작 우리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

도킨스는 이 지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기심의 범위를 하나의 ‘개체’로 볼 것인지, 좀 더 많은 ‘다수’ 또는 ‘집단’, 아니면 ‘종(種)’의 범위까지, 어디를 기준으로 봐야 하냐는 것이다. 일벌들에게 일을 시키고 알을 낳기만 하는 여왕벌이 이기적인가? 알을 낳지 못하게 진화한 대신 독침을 가지게 된 일벌은 그저 이타적인 건가?

‘종’을 위해 희생하는 일벌의 진화를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란 말로 바꿀 필요는 없다. 기본은 개체에 유리해야 생존과 번식이 가능하고 집단과 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거다. 하나의 진화의 방식이 줄곧 유지되진 않는다. 한 번의 진화는 또 다른 진화 방식을 불러온다. 그렇기에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이 무조건 옳지도 않다.

그럼 무엇이 옳은 진화의 방식일까? 유전자가 지능을 가지고 선택했을리는 없다. 말 그대로 본능적 선택이다. 도킨스는 이를 ‘죄수의 딜레마’와 ‘ESS(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로 설명한다. 죄수의 딜레마는 두 명의 죄수가 서로에게 유리한 진술을 내놓는 게 결국 서로의 죄를 고백한 꼴이 됨으로써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는 상황을 풀이한 이론이다. ESS는 각 개체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하는 진화적으로 가장 안정된 전략을 뜻한다.

이를 합쳐서 풀이하면 나에게 유리하다고 여겨진 진화 방식이 오히려 집단 또는 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고, 나에게 불리한 줄 알았던 진화 방식이 오히려 집단의 번식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무엇이 가장 안정된 진화 방식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가장 안정된 진화 방식은 결국 유전자 결정에만 따르는 것일까? 도킨스는 유전자가 이기적 또는 이타적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또 이기적 방식과 이타적 방식 중 어느 한쪽이 더 유리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진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살아남은 방식이 성공적인 진화 방식이었을 뿐이다.

다만 인간은 여타 종들보다 뛰어난 선험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 완벽하진 않아도 인간은 과거 진화 방식을 기록해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성’의 존재는 선험적 능력과 과거의 기록을 통해 더 나은 진화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그러니 책 제목만 보고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라며 이기적인 방식으로 진화를 꿈꾸지 말자. 당신에게 좋은 ‘이기적’ 진화가 인류에겐 암세포의 진화와 같을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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