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지대 가다]③철원, 전쟁 상흔 털고 생태계 낙원…세계유산 남북등재는 ‘글쎄’
[접경지대 가다]③철원, 전쟁 상흔 털고 생태계 낙원…세계유산 남북등재는 ‘글쎄’
  • 최종환 기자
  • 승인 2019.08.20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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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인적 드물어 생태계 그대로 보존
세계 최대 두루미 월동 지역이기도
“DMZ 세계유산 남북공동 등재 추진”

톱데일리 최종환 기자 = 강원도 철원이 숨겨 놓은 생태계의 속살을 드러냈다. 한국전쟁 이후 60여 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사향노루와 산양, 삵 등 멸종 위기 동식물 2710여 종이 서식한다. 한반도 전체 동식물 50%가 자라는 생태계의 보고로 불린다. 전쟁이 낳은 역설이기도 하다.

지역 대부분이 군사보호 시설인 철원은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 지대)와 맞닿아있다. DMZ는 1953년 휴전협정으로 무장이 금지된 땅이다. 휴전선 기준 남북 각각 2km씩, 동서 길이 248km에 달한다. 총소리가 나지 않을 뿐 언제나 긴장감이 흐른다. 냉전의 산물이면서, 남북한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화약고다.

분단의 역사와 천혜의 자연이 숨 쉬는 철원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한국전쟁 당시 장병들이 오고갔던 용양보 내 출렁다리 모습. DMZ생태평화공원 일대에는 가마우지와 고니, 청둥오리, 두루미, 기러기 등이 서식한다. 이날 오후 먹잇감을 찾는 가마우지가 카메라에 잡혔다.
한국전쟁 당시 장병들이 오고갔던 용양보 내 출렁다리 모습. DMZ생태평화공원 일대에는 가마우지와 고니, 청둥오리, 두루미, 기러기 등이 서식한다. 이날 오후 출렁다리에 앉아 먹잇감을 찾는 가마우지가 카메라에 잡혔다.(사진=최종환 기자)

■ 밀림에 온 듯 자연 습지의 웅장함

철원에선 신분증 검사가 다반사로 이뤄진다. 비무장지대 바깥 남방한계선을 경계로 남쪽 5~20km에 이르는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이 있어서다. 출입 신고를 하지 않았거나, 마을 주민이 아니면 이곳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

민통선 검문소에서 1km 떨어진 DMZ생태평화공원은 철원의 대표 생태관광지다. 이곳까지 누구나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 이 공원은 철원군과 국방부, 환경부가 지난 2016년 업무협약을 통해 평화와 생태가 공존하는 DMZ의 상징적 공간을 알리고자 조성됐다. 한국전쟁 이후 60여 년간 알려지지 않은 생태계가 탐방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DMZ생태평화공원은 지난해 4·27판문점 선언으로 ‘특수’를 맞았다. 중·고등학교 수학여행은 물론 기업과 시민단체 등의 워크숍 일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1만 2000명에 이어 올해 7월 기준 1만 명이 다녀갔다.

탐방로는 크게 두 가지다. 제1코스인 십자탑 탐방로는 한국전쟁 당시 혈전이 펼쳐진 장소다. 현재 북한 땅이 된 오성산의 북한군 초소까지 맨눈으로 볼 수 있다. 십자탑에서 내려다 보이는 2m 높이의 갈대밭은 철원 평야의 웅장함을 말해준다.

제2코스는 용양보 탐방로다. 기자가 찾은 이 길은 화강 하천변 둑길을 걷는 평지 산책 코스다. 휴전 이후 인적이 드물어 동식물의 낙원이자 수생식물의 보고로 불린다.

코스별 탐방은 두 시간으로 이뤄지고,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두 차례 출발한다. 인원은 안전 등을 고려해 1회 최대 40명이다.

주변에는 지뢰 매설 지역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탐방객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도록 군 당국이 주변 위험 시설을 철저히 통제·관리하고 있다. 탐방객이 길을 잃거나 부주의로 생길 수 있는 만일의 사고도 예방한다.

육군 3사단 관계자는 “안전을 위해 탐방로 주변에는 지뢰 등 위험 시설이 모두 철거된 상태다”며 “생태계의 본 모습을 보존해 시민들이 자연의 멋을 느끼도록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고 했다.

DMZ생태평화공원 일대는 천연기념물인 두루미와 재두루미, 독수리 등 다양한 겨울 철새들이 월동하는 지역이다. 수천 마리의 기러기가 하루에도 몇 차례 휴전선을 넘나들며 남북한을 오간다. 인간이 만든 편협한 이데올로기와 이념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한국전쟁 당시 장병들이 진출로 였던 용양보 내 출렁다리에는 가마우지와 고니, 청둥오리, 두루미, 기러기 등이 서식한다. 이날 오후에도 먹잇감을 찾는 가마우지가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평화로운 이들의 일상이 철원의 한 단면을 말해준다.

국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호수형 습지도 탐방객을 반겼다. 침수식물과 정수식물이 군락을 이뤄 밀림에 온 듯 그 자체로 호기심을 자극했다. 해설사는 인공이 아닌 자연이 만든 습지여서 더욱 빛이 바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김일남 원주지방환경청 자연환경해설사는 “DMZ생태평화공원은 전쟁과 생태의 역사가 공존하고 있다”며 “국내 대부분의 숲은 인위적으로 조성됐지만, 이곳은 모두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두루미 탐조대인 아이스크림고지(삽슬봉)에서 내려다 본 철원 평야. 여름에는 두루미를 볼 수 없지만, 월동기인 11월이 되면 수 백 마리의 두루미가 평야를 가득 메운다.
두루미 탐조대인 아이스크림고지(삽슬봉)에서 내려다 본 철원 평야. 여름에는 두루미를 볼 수 없지만, 월동기인 11월이 되면 수 백 마리의 두루미가 평야를 가득 메운다.(사진=최종환 기자)

 

철원 평야에서 월동을 맞는 두루미 떼. 지난해 12월 관찰된 두루미는 947마리로, 2000년 1월 332마리에 비해 3배가량 늘었다.(김일남 원주지방환경철 자연환경해설사 제공)
철원 평야에서 월동을 맞는 두루미 떼. 지난해 12월 관찰된 두루미는 947마리로, 2000년 1월 332마리에 비해 3배가량 늘었다.(김일남 원주지방환경청 자연환경해설사 제공)

■ 세계 최대 두루미 월동 지역

철원은 한반도 허리에 자리한 국내 대표 평야 지대다. 비옥한 토양과 겨울에도 얼지 않고 솟아나는 샘통(땅속에서 따뜻한 물이 나와 겨울에도 얼지 않는 지역)이 있다. 철원 평야는 세계 최대 두루미 월동 지역으로 꼽힌다. 임진강과 한탄강 일대 150㎢ 규모다. 대부분 민통선 안에 있어 인적이 드물다. 두루미 서식지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천연기념물 202호로 지정된 두루미는 멸종 위기 1급에 속한다. 세계적으로 20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아 멸종위협 종으로도 분류됐다. 매년 겨울이 되면 철원에만 1000여 마리가 몰려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은다.

철원의 생물 다양성은 매년 증가 추세다. 지난해 12월 관찰된 두루미는 947마리로, 2000년 1월 332마리에 비해 3배가량 늘었다. 재두루미와 흑두루미, 검은목두루미 등은 총 6398마리로, 2000년 1월 대비 10배가량 증가했다. 전국적으로 환경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지만, 철원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며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지난 2016년 문을 연 DMZ두루미평화타운은 두루미의 일상사를 관찰할 수 있는 요충지다. 두루미 관련 연구 사업을 비롯해 보존과 교육 프로그램 등을 벌인다. 두루미 도서관을 비롯해 카페, 전시관, 동영상 시청 교육관 등이 마련됐다. 벽면 곳곳에 걸린 두루미 사진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끈다.

여름휴가를 맞아 가족들과 나들이를 온 조성은씨(42·충주시)는 “시원한 공간에서 철새들의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아이들의 교육 공간으로 제격이다”며 “두루미가 희귀종으로 알려졌지만, 철원에서 많이 관찰된다고 하니 겨울이 되면 다시 한번 올 계획이다”고 했다.

해설사와 함께 두루미 탐조대인 아이스크림 고지(삽슬봉)로 향했다. 민통선 안에 있는 이 고지는 DMZ두루미평화타운에서 차량으로 15분가량 떨어졌다. 한국전쟁 당시 고지 점령을 위해 남북한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곳이다. 수만 발의 포탄이 떨어져 고지 전체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름에는 두루미를 볼 수 없지만, 월동기인 11월이 되면 수백 마리의 두루미가 평야를 가득 메운다.

철원군이 두루미 서식지로 유명하게 된 것은 민간의 역할이 컸다. 주민 주도로 운영되는 ‘철원두루미협의체’가 두루미 보존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어서다. 지난해 1월 결성된 이 협의체에는 철원군 대마1·2리, 양지리, 이길리, 정연리 등 5곳 마을 이장·부녀회장이 참여한다. 유관단체로는 철원 농민회를 비롯해 두루미학교, 원주지방환경청 등이 있다. 매년 사업을 계획해 조사와 워크숍, 생태관광 체험프로그램 등을 갖는다.

탐방객을 위한 편의시설 제공과 동영상 교육, 두루미 탐조 안내 등도 협의체 회원 몫이다. 지난 1월에는 ‘철원두루미의 밤’ 행사를 열었다.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에게 두루미의 생태적 가치를 알린 의미 있는 행사였다.

철원군은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내년 12월까지 30억 원을 들여 국제두루미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동송읍 양지리 일대 2층 규모의 이 센터에는 두루미 탐조대와 전시 공간 등이 들어선다. 이를 계기로 철원은 두루미 서식지 보전과 생태네트워크의 중심지로 떠오를 전망이다.

전종미 철원두루미운영협의체 사무국장은 “주민들이 단합해 두루미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며 “내년 국제두루미센터가 들어서면 탐방객을 위한 전시회, 교육 등 계절별 관광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계획이다”고 했다.

 

DMZ두루미평화타운에 자리한 두루미 조각상. 이곳에서 활동하는 철원두루미협의체는 두루미 보존을 위한 교육, 봉사활동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사진=최종환 기자)
DMZ두루미평화타운에 자리한 두루미 조각상. 이곳에서 활동하는 철원두루미협의체는 두루미 보존을 위한 교육, 봉사활동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사진=최종환 기자)

■ “DMZ 세계유산 남북공동 등재”… 가능성은 ‘글쎄’

70여 년간 한반도를 갈라놓은 DMZ는 자연 생태계 보전에 힘입어 최근 세계유산 남북공동 등재 추진으로 또 한 번 관심이 쏠렸다.

강원도는 경기도, 문화재청과 지난달 11일 DMZ를 남북 공동으로 세계유산에 올리고자 손을 잡았다. 지자체들은 ‘비무장지대(DMZ)의 세계유산 남북공동 등재를 위한 업무협약’에 따라 비무장지대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기초·문헌·실태조사, 비무장지대 세계유산 남북공동 등재 실무협의체 구성 등을 벌이기로 했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지정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 두 성격을 모두 갖춘 혼합유산으로 분류된다. 한반도 중심부를 4km 폭으로 나누는 DMZ는 그간 한국의 첫 혼합유산 후보로 거론됐다. 한국전쟁 이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생태계가 잘 보존됐다는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 세계유산 지정까지 넘어야 할 산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문화재청은 DMZ의 세계유산 남북공동 등재를 긍정적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실제 북한 측과 협의는 이루지 못했다. 세계유산 지정을 위해선 국가별 신청을 받고 조사단의 실사가 있어야 하는 데 북한의 동의는 이 과정에서 필수다. 최근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사업이 원만하게 추진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DMZ의 연내 세계유산 지정을 낙관할 수 없는 이유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현재 DMZ의 세계유산 남북공동 등재 추진은 현재 국내 지자체별로 합의만 한 상태다”며 “북한 측과 접촉은 하지 못했다. 남북관계 등 여러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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