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서재] 당신의 '고도'는 무엇입니까
[기자의 서재] 당신의 '고도'는 무엇입니까
  • 이진휘 기자
  • 승인 2019.09.06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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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사뮈엘 베케트 지음
▲'고도를 기다리며'=사뮈엘 베케트 지음

톱데일리 이진휘 기자 =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

‘베케트적’이란 말이 있다. 흔히 실패와 공허에 대한 허무주의, 존재의 무의미성,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구 등을 의미할 때 쓰인다. 베케트의 다른 말은 '부조리극'의 대표 작가다.

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이 남아있는 황량한 언덕 아래 서 있다. 그들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고도’라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들은 고도가 누군지도 알지 못한다. 그저 막연한 기다림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다. 어떤 극적 사건도 없다. 고도를 기다리는 무한한 삶이 반복된다.

그들은 결코 깨닫지 못한다. 무엇이 잘못 돼 가고 있으며 누구를 기다리는지. 여전히 메마른 시골 언덕에서 고도를 기다릴 뿐이다. 

베케트는 독자에게 부조리를 설명하거나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두 인물의 끝없는 권태는 일상적 삶의 무의미와 허망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고도를 기다려왔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사실 고도를 기다렸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고도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살아왔던 것이다.

필연의 세계가 아닌 우연으로 가득한 세상, 그 속에서 스스로가 믿기로 마음먹은 ‘고도’라는 존재는 현존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그 누구도 부조리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대책없는 기다림을 조롱하던 독자들이 책을 덮으며 마주하게 되는 건 다름아닌 내 안의 '고도', 그 얼굴없는 기다림이다.

그렇다고 낙담하긴 이르다. 해답은 없지만 적어도 ‘해답이 없다는 사실’은 알게 됐으니까. 

고도는 신일까, 자유일까, 희망일까. 베케트는 말한다.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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