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서재] 한반도 평화는 왜 이리 어려울까
[기자의 서재] 한반도 평화는 왜 이리 어려울까
  • 최종환 기자
  • 승인 2019.10.04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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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론으로 본 동아시아와 한반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4월 27일 정상회담장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 그림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정책브리핑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4월 27일 정상회담장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 그림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정책브리핑 제공)

톱데일리 최종환 기자 =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

지난해 4월 11년 만에 마주한 남북 정상은 4·27판문점 선언을 앞두고 이같이 말했다. 두 정상이 웃으며 군사분계선을 오가는 모습과 판문점 내 도보다리 회담 장면은 적잖은 울림을 줬다. 이듬해 6월 한국전쟁 이후 처음 마주한 북미 정상은 ‘수십 년간 지속된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한다고 전 세계에 확약했다. 70여 년간 켜켜이 쌓인 증오는 금세 없어지는 듯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세계사에 오래 남을 명장면이다.   

주변에선 북한 비핵화는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가 이행된다고 믿었다. 이산가족 상봉이 정례화되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이 재개될 거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평화는 생각처럼 쉽게 오지 않았다. 비핵화와 분단 해소, 남북철도연결 사업 등은 현재까지 오리무중이다. 좋게 말하면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여기서 우리가 가져야 할 질문은 ‘한반도 평화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라는 점이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중국과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륙세력과 일본, 미국 중심의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경제·군사력 세계 1·2위를 다투는 나라들이 반세기 넘게 각자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고자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제국주의론으로 본 동아시아와 한반도’ 책.
‘제국주의론으로 본 동아시아와 한반도’ 책.

‘노동자연대’의 김영익과 김하영 두 사람이 쓴 ‘제국주의론으로 본 동아시아와 한반도(2019)’는 오늘날 길고 험악한 한반도 평화의 여정을 ‘제국주의’라는 개념으로 소개한다. 단순히 북한과 미국의 갈등을 넘어 한반도에 둘러싼 구조화된 ‘폭력’을 설명한 책이다.

크게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한반도의 갈등을 어떻게 봐야 하고, 동아시아에서 발현하는 제국주의의 특성을 설명한다. 이어 남북·북미 정상회담 전후 평화로의 이행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화해의 의미를 짚었다. 끝으로 사반세기 누적된 북핵 문제와 현재 한반도에 나타나는 제국주의 징후를 분석했다.   

이들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제국주의 국가가 갈등을 재생산하고, 평화를 유예한다는 전제에서 논의를 끌어낸다. 

저자는 “동아시아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제국주의 간 갈등이다”이라며 “세계 3대 경제 대국들이 서로 경쟁을 벌이고 있고, 거기에 한국을 포함한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도 군비 증강을 통해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고 했다. 북한 비핵화든 한반도 평화체제 이행이든 핵심은 한 국가의 정치적 결정으로 해결될 수 없다. 나무보다 숲을 봐야 한다는 의미로, 한반도에 둘러싼 거대한 폭력이 제거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제국은 진보 진영에서 흔히 말하는 미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저자는 블라디미르 레닌 (Vladimir Lenin)의 ‘제국’ 개념을 끌어와 한반도 문제에 적용한다. 레닌에 따르면, 제국은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세계를 지배하며 서로 경쟁하는 체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 아래 한반도 주변에서 패권을 유지하지만 중국과 러시아 등 경쟁국의 도전을 받고 있다.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해관계를 높이려 경제·군사적으로 무한 경쟁에 돌입한다. 그 부산물로 한반도가 불안정해졌다는 의미다.  

특히 제국의 군사적 경쟁은 평화를 해치는 근본적인 해악이다. 저자는 “군비 증강은 단지 미국과 중국만의 일이 아니다”며 “두 제국주의 국가의 경쟁에 자극받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도 경쟁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군비 증강을 선도하는 동아시아는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역설적으로 ‘힘에 의한 평화’가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든 셈이다. 

제국의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부터 ‘자주국방’을 내세웠다.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고,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한다는 의지는 분명 평가받을만하다. 문제는 군비 증강이다. 정부는 내년(2020) 국방 예산을 사상 첫 50조원 대로 끌어올렸고,  F-35A 등 미국의 최첨단 전략자산을 도입했다. 북한의 격렬한 반대는 당연했다. 최근 쏘아 올린 북한의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쉽게 이해된다.

미 국방부는 지난 6월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를 통해 북한을 ‘불량국가(rogue state)’로 지목했다. 6·12싱가포르회담에서 약속한 ‘적대관계 청산’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국방력 증강으로 북한과 중국을 봉쇄한다는 의미가 강했다. 

중국의 해군력 증가 역시 남중국해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은 이곳에 항구와 활주로, 레이더 기지 등 대규모 군사시설로 미군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고 있다. 베트남과 필리핀이 미국과 손잡고 대중국 압박에 맞서는 조치다. 이미 중국의 군사비 지출은 미국 다음으로 높은 세계 2위다. 한반도 불안정이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문제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오늘날 제국의 군비 증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강대국들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경제·군사적 힘을 과시하고 사용하는 것은 현대자본주의의 일상사다. 세계 자본주의는 위계적이고 이뤄진 살벌하고 냉혹한 체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국주의 갈등을 마냥 지켜볼 수는 없다. 대안은 무엇일까. 두 사람은 다소 급진적인 주장을 편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편도 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한미동맹’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한국에선 당장 실현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무엇이든 급박하게 처리하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해법은 정부가 진보·보수 진영을 끊임없이 만나고 설득하는 일이다. 제국의 군비 증강에 편승하기보다 대화와 협상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도 놓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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