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서재] 사랑을 잃고 '나'를 쓰네
[기자의 서재] 사랑을 잃고 '나'를 쓰네
  • 이진휘 기자
  • 승인 2019.11.01 1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페터 한트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페터 한트케(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지음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페터 한트케(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지음

톱데일리 이진휘 기자 =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당혹감에서 출발한다. 언제나 당연히 자리에 있던 것이 사라진 그런 당혹감이다.

아내는 어느 날 종적을 감췄고 사내는 당황한다. 그녀가 떠나기 전 남긴 단서는 짧은 편지 하나.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더 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싶지 않으니까.”

사내의 감정엔 어떤 감정도 피어오르지 않는다. 애정은 쇠락한지 꽤 됐다. 다만 당혹감에 분노할 뿐이다. 그는 미국 전역을 방랑하기 시작한다.

길 위에서 사내는 서로를 참지 못했던 결혼생활을 떠올린다. 해코지와 모욕의 연속이었다. 아내는 역겨운 존재였지만, 아내의 빈자리는 더 역겨웠다. 그는 자신이 매달리는 건 아내가 아니라 아내와 행복했던 과거의 그라는 걸 깨닫는다.

수상한 편지들이 사내에게 날아든다. 편지 안엔 위협의 말들이 담겼다. 아내도 그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닿지 못하도록 아내는 발버둥쳤다. 위험하고도 이해하기 힘든 술래잡기다.

결국 그들이 해질녘의 한 바닷가에서 재회하면서 소설이 끝이 난다. 아내는 남편에게 총구를 겨눈다. 그들은 화해하지만 이별한다. 제대로 이별하기 위해 남편은 아내를 추적해온지도 모른다. 

준비되지 못한 이별 때문에 괴로워했던 그는 결국 아내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과거의 자신과 헤어지는 법을 터득한다. 너와 내가 만나 이뤘던 '우리'라는 것이 얼마나 헐겁고 낡아 비틀거렸는지 사내는 너무 늦게 이해한 셈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간다.” 작가는 말했다. 어쩌면 내가 나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나를 무시하고 살지 않으면 일상의 충돌은 너무 커져버릴지도 모르니까. 

 


관련기사

톱데일리는 독자분들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주신 제보와 취재요청으로 세상을 더욱 가치있게 만들겠습니다.
뉴스제보 이메일 top@topdaily.co.kr / 카카오톡에서 톱데일리 검색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나도 기자코너 운영
억울한 일, 알리고 싶은 일 기사로 표현하세요.
작성하신 기사와 사진(저작권 문제없는 사진)을 top@topdaily.co.kr 로 보내주시면 채택되신 분께 기사게재와 동시에 소정의 상품권(최소5만원이상, 내용에 따라 차등지급)을 드립니다.
문의 02-5868-114 시민기자 담당자
인기기사
단독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