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서재] ‘미국 예외주의’가 낳은 비극
[기자의 서재] ‘미국 예외주의’가 낳은 비극
  • 최종환 기자
  • 승인 2020.01.13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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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
책 ‘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
책 ‘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

톱데일리 최종환 기자 = ‘냉전과 대결’의 관계였던 북한과 미국이 재작년 6월 싱가포르에서 만났다. 상대를 향해 총구를 겨눴던 7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신뢰를 다지기로 했다. 세상은 환호했고, 평화의 여정이 시작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신뢰는 열매를 맺지 못한 채 1년을 허비했다. 한반도에는 새해 정초부터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물리적 대립은 없었지만, 상대를 향한 조롱과 비난이 넘쳤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아전인수격 자화자찬’이라고 깎아내렸고, 미국 역시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알렸다.

미국과 북한은 왜 화해하지 못할까. 북한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폐기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비핵화와 ‘정상국가’로의 전환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이 바라보는 글로벌 사회와 핵 문제는 북한이 이해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책 ‘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2004)’는 현재 전개되고 있는 북핵 문제를 비롯해 미국의 대외정책 방향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김지석 저자는 미국이 정당하다고 믿는 ‘예외주의’와 ‘합법적 폭력’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무엇이 문제인지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책의 핵심 개념인 ‘예외주의’는 19세기 중반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스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의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나왔다. 토크빌은 미국이 민주공화국으로 이행하게 한 결정적인 가치로 자유와 평등, 개인주의, 포퓰리즘, 자유방임을 제시했다. 미국인들은 유럽과 달리 봉건제를 거치지 않아 이런 신조를 바탕으로 국가가 세워졌다고 믿었다.

미국은 ‘예외주의’라는 인식 아래 자국이 실천하는 모든 행위는 선이고 체제가 다른 국가는 악이라고 여겼다.

9·11테러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이 잘 보여준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테러를 주도한 단체로 알려진 알카에다(Al-Qaeda)를 제거한다는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다. 2003년에는 사담 후세인이 집권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보유하고 국제 테러를 지원했다며 침공을 감행했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기후변화협약(UNFCCC) 교토의정서 탈퇴를 비롯해 국제형사재판소(ICC) 거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 거부 등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미국 스스로 구축한 자유주의 제도와 가치를 상당 부분 부인했다는 점에서 이는 퇴행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 예외주의는 북한 문제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했다. 9·11 테러 이후 적대 세력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였다. 같은 해 5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으며, 국가안보전략보고서를 통해 선제타격을 시사했다.

북한은 맞대응으로 2006년 10월 제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강대 강’ 국면이 이어졌고, 한반도의 핵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출범 초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행정부 역시 부시의 노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란과 맺은 핵 협정 파기와 유네스코(UNESCO) 탈퇴 등은 미국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나라와 기구에 대해선 상대하지 않겠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저자는 이러한 미국의 대외정책을 두고 “미국이 패권과 제국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자국은 공공연하게 제국의적 태도를 보였다”며 “평화와 통합보다 갈등과 대결을, 보편적 가치보다 기독교적 가치를 우선시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이유로 나타난 ‘예외주의’와 ‘팽창주의’, ‘선과 악’의 구분이 역설적으로 평화를 위협한 셈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대외정책을 제어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분단 문제를 마냥 지켜볼 수도 없다. 평화의 여정을 이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미동맹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한국사회에서 당장 미국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주장은 모험주의에 가깝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한국 주도의 ‘평화 로드맵’을 수립하면서도, 국가이익과 부합하지 않는 미국의 일부 정책에 대해선 과감히 ‘노(no)’라고 말하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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