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서재] '1984'년에 태어나 '멋진 신세계'를 살다
[기자의 서재] '1984'년에 태어나 '멋진 신세계'를 살다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0.01.3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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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2020 우주의 원더키디’와는 다르지만 우리에게 2020년이 당도했다. 2020 원더키디의 작가는 상상력은 풍부할지라도 현실성은 떨어졌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라고 한다면 1989년의 원더키디 보다 1931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더 그럴 듯하다.

계급에 따라 일이 부여되고 순응하는 세계를 그린 헉슬리가 간과한 점은 헉슬리가 살던 시대보다 경제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헉슬리가 그린 미래는 유전자를 조작해 계급을 나눈다. 그렇기에 알파 계급과 엡실론 계급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능력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계급을 뛰어 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유전자를 조작하는 기술은 부족할지라도, 우리 몸 속에 ‘자본주의 유전자’가 계급을 나눈다. 누구의 말만 따라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시대는 지났다. 출생 직후부터 외모, 기술, 학업, 취업, 결혼에 이르기까지 돈으로 관리 받는 시대다. 돈이 있는 곳에서 사람이 나고 인재가 나고 리더가 나는 시대다. 돈이 없다면 그 차이를 뛰어 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게 시대정신이 돼버렸다. 마치 멋진 신세계의 인간들이 태어나 사회에 뛰어들기까지 보이는 것, 듣는 것, 느껴지는 것으로 생각을 강요당하는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도 생각하고 선택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 주어지는 정보를 판단할 능력이 상실되고 있다. 애초 처음 정보를 제공한 자는 저 위의 어느 누군가겠지만 그 정보는 곧 다수의 정보가 되고 사실이 된다.

‘나’와 또는 ‘우리’와 다른 사람은 미개하다. 야생 구역에 갇힌 채 1부1처제를 유지하는 그들은 미개하다. 멋진 신세계는 출산의 의무를 부여하지 않는다.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잠자리를 가져도 ‘피임’은 필수다. 굳이 누군가와 미래를 약속할 필요는 없다. 출산은 불쾌하고 미개하기에 국가가 세포배양을 통해 대신한다.

멋진 신세계의 인간들은 누리기만 하면 된다. 단지 주어진 대로. 아무런 책임감 없이. 그것이 ‘문명화’된 사회에서 인생의 행복이자 성공이란 생각은 삶의 살아가는 방식마저 ‘유행’으로 표현되는 이 시대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토머스 모어는 그리스어 ‘없는(ou)’와 ‘장소(topos)’를 합해 '유토피아(Utopia)'라 말했다. 세상에 없는 장소란 얘기다. 반면 디스토피아(Dystopia)는 너무나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태어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유토피아로의 희망은 있을까. 모두가 유토피아에서 살고 있다 여겨도 꿈틀대는 한 명 없다면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는다. 진정한 낙관주의자는 현실에 비관적이다 하지 않았던가. 우리를 유토피아로 이끄는 건 안락한 다수일까 꿈틀대는 한 명의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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