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부동산 바보들]① 일본의 1980년 '광기, 패닉, 붕괴'
[위대한 부동산 바보들]① 일본의 1980년 '광기, 패닉, 붕괴'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0.03.06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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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무역수지의 증가, 갈 곳 없는 돈 '부동산'으로
미국 두 배의 부동산 가격, 글로벌 시총 상위권 싹쓸이
1985년 플라자 합의, 거품 제거 트리거로…1990-91년 기업 도산 건수 두배 급증
1980년대 일본 도쿄는 세상에서 가진 비싼 곳이었다. 사진=HIPPOPX
1980년대 일본 도쿄는 세상에서 가진 비싼 곳이었다. 사진=HIPPOPX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지난해 11월 한국거래소가 조사한 글로벌 시가총액 순위 1위에 오른 애플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최근 조사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회사 아람코가 1위라는 조사도 있지만 애플과 함께 상위권에 오른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의 이름을 접하지 못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NTT’라는 회사를 아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한때 전세계 시가총액 1위였던 일본의 통신기업을 말이다. 그만큼 1980년대 일본은 휘황찬란했지만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일본은 1980년대 빛나던 10년을 잃어버린 20년과 맞바꿨다. 찬란했던 10년이 잿빛의 20년으로 이어지게 만든 건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부동산’이었다.

‘광기, 패닉, 붕괴 - 금융위기의 역사’에서 찰스 P. 킨들버거는 일본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직전의 상황을 “일본은 금융세계의 ‘영구작동 기계’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마치 전설 속의 우물처럼 끊임없이 부가 창출됐다. 1980년대 일본에서는 도쿄에 위치한 일본 황궁 대지 가치가 캘리포니아 전체 부동산보다 더 높다는 말이 떠돌았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주 면적은 남한의 4배에 이른다. 구름에 가려진 마천루처럼 부동산 가격은 어디가 정점인지 알 수 없게 치솟았다.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다. 어떻게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꺼졌냐는 어떻게 거품이 생겼냐를 봐야 한다.

일본 GDP. 사진=구글
일본 GDP. 사진=구글

세계은행에 따르면 1960년 일본의 GDP는 440억 달러(한화 약 52조 원)이다. 10년 후 일본 GDP는 2120억 달러, 5배에 가까운 상승세를 보여줬다. 이 수치는 1975년 이후 또 한 번의 상승을 겪은 후 다시 5배가 커져 1980년 1조1054억 달러까지 성장했다.

이런 GDP 상승의 시작은 수출이었다. 두 방의 폭탄으로 폐허가 된 일본은 지금과 같이 기술 위주 수출 국가가 아니었다. 전기·전자제품이나 반도체, 자동차가 아닌 섬유류가 많은 수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1988년 기준 일본 무역 흑자 상위 10개국. 사진=한국무역협회

여기에는 본의 아닌 미국의 도움도 있었다. 미국은 꾸준히 일본에게 많은 무역 흑자를 안겨주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1988년 기준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6조1005억 엔의 흑자를 보고 있었다. 2위 홍콩 1조2294억 엔과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 사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 거품이 더 이상 차오를 수 없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데 결정적 원인이 된다.

다시 얘기를 돌려, 무역 흑자가 늘어나니 시중에 풀리는 돈도 늘어났다. 하지만 뚜렷한 투자처가 보이지 않았다. 킨들버거는 당시 “일본은 금융규제로 은행예금과 채권과 같은 고정가격 자산 수익률이 70년대까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부동산 소유자들만이 드물게 플러스 실질 수익률을 챙긴 집단”이라고 말했다. 갈 곳을 찾지 못한 돈들이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가는 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사진=국회예산정책처
일본 자산가격 추이. 사진=국회예산정책처

1949년 5월 니케이 평균 주가는 100으로 시작해 1980년 6000에 달했고 1989년 말 40000까지 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코스닥 지수는 1980년 106.87에서 1989년 909.72로 9배가 오르긴 했지만 이후 2005년 1379.37, 2010년 2051.00이다. 일본의 성장이 얼마나 가파른지 알 수 있다. 1980년대 말 일본 주식시장 시총과 부동산 시장가치는 미국의 두 배였다. 당시 일본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의 60~70%, 육지 면적은 5%에 불과했으니 어마어마한 가치를 담고 있었다.

이때 눈여겨 볼 부분은 일본의 황금기에서 시총 상위에 오른 기업들의 유형이다. 1988년 9월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NTT와 함께 글로벌 시총 상위에 오른 기업들은 스미토모은행, 아이이치칸교은행, 후지은행, 미쓰비시 은행, 노무라증권, 산와은행, 도카이은행, 미쓰이은행 등 금융권이 대다수다. 이들 기업 밑에는 미국의 AT&T와 포드, 제너럴 모터스가 있었다. 일본 최대 투자은행 '노무라'의 자본금은 미국 5대 투자은행을 합한 것보다도 많았다.

지금의 시총 순위와 비교한다면 금융권이, 특히 일본의 금융권이 이렇게 높은 가치가 매겨지는 건 이례적이다. 그 동력은 킨들버거가 지적한 ‘영구적 작동기계’였다. 일본의 은행들은 상당한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고 이와 함께 차입자들에게 부동산 담보를 요구했다. 당시 일본의 LTV(주택담보대출비율)은 70%였지만 시가 대비 110~120%까지도 잡아주는 게 관행처럼 이뤄졌다. 부동산 담보 비율이 높고, 부동산 가치가 올라갈수록 대출한도도 늘어나며 은행의 수익도 늘어난다.

부동산의 가파른 상승과 수익률은 금융권이 아닌 여타 산업들까지 뛰어들며 부동산 상승에 기여하게 했다. 또 낮은 금리도 한몫했다. 일본은 1980년대 들어 경제계획을 고도 성장에서 안정적 성장으로 변경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승자’가 될 수 있는 산업 부문에 원활한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예금금리와 대출금리를 낮게 유지했다. 8%가 넘던 일본 금리는 1980년대 중반 5%대까지 낮아졌다.

엔/달러 환율 및 주가 추이. 사진=국회예산정책처
엔/달러 환율 및 주가 추이. 사진=국회예산정책처

일본의 금리를 더 낮추는데 미국이 등장한다. 일본의 대미 무역 흑자가 탐탁지 않던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프랑스와 독일, 영국, 일본을 상대로 각국 정부가 나서 달러 강세를 해소하자고 합의했다. 1985년 말 달러당 238.1엔이었던 엔화환율은 1988년 말 128.2엔, 3년 동안 46.2%가 올랐다.

이로 인한 일본과 미국의 무역수지는 별 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환율의 영향으로 일본 수출이 감소하고 시장도 위축돼 갔다. 엔화가치 상승으로 일본의 총수출물량이 1985년 5.1% 증가에서 1986년 -5.1%, 1987년 -1.0%로 부진했다. 오히려 그 수혜는 3저 호황으로 우리나라가 받았다.

플라자 합의는 일본 정부가 금리인하와 부동산 규제 완화라는 경기 부양책을 꺼내게 했다. 1980년대 초 금융 자유화 바람과 함께 낮아진 금리를 등에 업고 일본 기업들은 더 공격적으로 부동산 매입에 나섰다. 미쓰이부동산의 엑손빌딩 매입이 이뤄졌던 시기 미쓰비시 부동산은 록펠러센터를, 스미토모은행은 캘리포니아 페블비치 골프장, 소니는 콜럽비아 레코드와 영화사, 마쓰시타는 MGM 유니버셜을 인수했다.

또 일본 은행들은 부동산을 매입하려는 차입자들에게 대출을 풀었다. 차입자들은 은행 이자를 신규 차입으로 메웠다. 빚이 또 다른 빚을 불러오지만 상관없다. 상승하는 부동산 가치는 부동산을 임대해 얻는 낮은 수익을 만회하며 빚 부담을 덜어주기에도 충분했다. 당시 일본 야쿠자들은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으며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감정가를 얻어 내기도 했다. 이들은 골프장과 골프회원권, 호텔에까지 손을 댔다. 문제될 건 없었다. 실제 부동산 가치는 곧 감정가를 따라 잡았다. 1980년 가계자산 중 30%가 되지 않았던 부동산 비중은 1990년 60%까지 증가했다.

그렇게 또 다른 부동산을 매입하고, 담보로 잡힌 부동산 가치가 오르고, 또 대출을 불러오고, 또 부동산을 매입한다. 일본 은행들은 무려 100년 기한의 부동산저당증서를 개발하기도 했다. 부의 창출을 위한 영구 작동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부동산 불패는 마치 영생불사의 교주를 믿는 것처럼 ‘신화’에 가까웠다. 신화를 써내려간 건 인간이었고 무너뜨린 것도 인간이었다. 일본 정부는 부동산 거품의 위험을 지적하며 대출금리를 1989년 5월 2.5%에서 1990년 8월 6%까지 인상시켰다. 또 대출 총량규제, 지가감시구역 실시 등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으며 부동산 관련 대출을 묶었다.

거품을 위험하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어렵지만 어떻게 걷어 내느냐도 어렵다. 결과론적이지만 일본 정부가 거품을 걷어내는 방식은 실패로 드러났다. 대출을 더 이상 받기 힘들자 부동산 매입자들의 현금이 동결되면서 돌고 도는 고리가 끊겼다. 어쩔 수 없이 부동산을 내놓기 시작했다. 불패 신화는 사라졌다.

부동산이 떠받쳤던 주가도 함께 하락했다. 1989년 말 3만9000대였던 니케이 주가는 1990년 4월 2만8000, 같은 해 10월 2만까지 내려앉았다. 시가지 지가는 1990년 말 정점을 찍은 후 5년 만에 반토막이 났고 지금도 1990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킨들버거는 “도쿄증권거래소 주식 거래량은 1983년 1200억 주, 1989년 2800억 주로 주가 상승세에 비하면 큰 변화가 없었다”고 언급한다. 그간 주가 상승에는 부동산과 함께 반복된 매수와 매도가 작용했다.

일본 GDP 성장률. 사진=구글
일본 GDP 성장률. 사진=구글
일본 도산기업 건수. 사진=한국경제연구원
일본 도산기업 건수. 사진=한국경제연구원

일본 정부는 1991년부터 1993년까지 급하게 대출금리를 1.75%까지 인하했지만 더 이상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일본의 GDP 성장률은 1990년 4.89%에서 3.42%, 0.85%, -0.52%를 기록했다. 일본의 도산 기업 건수는 1986년 1만5000개 이상에서 1990년 5000개로 감소하는 추세였지만 1991년 1만 개 이상으로 급증했다. 신화는 무너졌고 찬란한 10년에 이어 잃어버린 20년이 찾아왔다.

일본의 1980년대는 드라마틱했고 그만큼 떨어졌을 때 충격도 컸다. 일본 부동산 거품은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 실수는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꺼진 후 10여 년이 지나 이번엔 바다 건너 미국에도 위대한 부동산 바보들이 있다는 사실로 되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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