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부동산 바보들]③ 부동산을 향한 군사정권의 몸부림
[위대한 부동산 바보들]③ 부동산을 향한 군사정권의 몸부림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0.03.1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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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성장과 맞물린 부동산 투기…말죽거리 지가 2년 새 30배 상승
전두환, 경기활성화와 투기 억제의 줄다리기…강남 불패의 시작?
노태우, 정권 초 마주한 부동산 급상승…토지공개념 3법의 등장
잠실 지역은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함께 서울 부동산 개발을 상징하는 지역 중 한 곳이다. 사진=서울데이터서비스
잠실 지역은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함께 부동산 개발을 상징하는 지역 중 한 곳이다. 사진=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투기와의 전쟁’이었다. 1967년 박정희 정권에서 ‘부동산투기억제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나온 후 2020년까지, 50여 년 간 쏟아진 부동산 대책의 대부분이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 덕분인지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은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거품 위기가 찾아온 시기는 아직 없었다.

■박정희 정권(1963년~1979년): 성장도 해야 하고 부동산도 잡아야 하고

1960년대는 전후 상처가 다 가시지 않은 채 주택보급 부족에 시달렸다. 특히 서울은 집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다.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에 따르면 1961년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56.8%, 서울 인구 절반이 집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고 이 추세는 박정희 정권 내내 지속됐다. 2002년 당시 건설교통부가 발간한 주택백서를 보면 1960년 전국 주택보급률은 84.2%로 이미 서울로 인구 집중이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 대장 부동산 ‘강남’의 기미가 무르익고 있지 않았을까.

낮은 서울 주택보급률이 낮은 공급량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1967년 2만9804호에 이르던 서울 주택건설실적은 1970년 3만6000 호, 1974년 4만5000호, 1978년 7만9000호까지 증가했다. 또 단독주택 비율이 낮아지고 아파트 비율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공급량 증가 추세에 따라 서울 주택수도 1966년 50만 호 미만에서 1976년 100만 호에 다가가고 있었다. 특히 1970년 기준 단독주택 재고율이 84.8%인데 반해 아파트는 3.9%였다. 단독주택 공급량은 줄어들고 아파트는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아파트 시대가 시작됐다.

이런 시기에 무슨 부동산 투기냐고 되물을 수 있지만 엄연히 존재했다. 박정희 정권은 부동산 투기에 자금이 쏠리면서 오히려 산업에 대한 투자가 위축됨을 고민했던 시기다. 제3한강교(현재 한남대교) 건설을 호재로 강남 말죽거리(현 양재역 부근) 인근 지가가 1966년 초 평당 200~400원에서 1968년 6000원대까지 솟아 오르기도 했다. 이런 투기 양상을 잡기 위해 나온 대책이 '부동산투기억제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서울과 부산 부동산 양도 차익의 50%를 ‘부동산 투기 억제세’로 부과하는 방안이 들어있었다.

부동산 시장의 혼동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1977년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돌파와 함께 시중에 자금이 쏟아졌고 1978년 기준 토지 가격이 전년 대비 49.0%가 급등, 특히 서울은 135%가 폭등했다.

또 한 번 등장한 대책이 1978년 8월 ‘부동산 투기 억제 및 지가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이었다. 양도소득세를 30%에서 50%로 올렸고 미등기 전매는 양도세 100%를 부과했다. 이후 부동산 시장은 안정을 찾았지만 1979년 제2차 오일쇼크의 도움을 받은 측면도 있었다. 지금과 같은 금융 시장과 부동산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서울 주택보급률. 사진=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서울 주택보급률. 사진=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전두환 정권(1980년~1988년): 강남 불패 기반을 다지다

1980년대가 들어오면 그나마 통계치를 통해 이전 시기와 부동산 가격 추이를 비교할만 하다. 특히 전두환 정권은 그 수치에서 ‘강남 불패’의 시초가 보이는 시기다.

서울시민의 자가율은 1960년 56.5%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해 1980년대 중반까지 80%대를 유지했다.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과 서울올림픽으로 상징되는 ‘한강의 기적’으로 가는 우리나라 경제호황의 교두보 시기였다. 명목GDP 기준 39조7250억 원으로 시작한 1980년대는 1989년 165조8020억 원, 3배가 넘는 성장을 보이며 1990년대로 넘어갔다. 실질GDP 성장률도 1980년 -1.6%를 기록했지만 이후 10년의 기간 중 5차례나 두 자릿 수 증가율을 보였다.

전두환 정권은 부동산을 경기부양책으로 활용하고 싶으면서도 오르는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는 두 가지 모습을 모두 보여줬다. 경기 호황과 부동산 상승 사이 임시방편을 내놓는 성격이었다.

1981년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으로 민간아파트 분양가격 자유화와 양도소득세율 인하, 자금출처조사 배제 등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꺼냈던 전두환 정권은 1년 후인 1982년 말 차등적 분양가 상한제 시행과 전매금지 기간 2년 등을 담은 '주택투기억제대책'을 내놓는다.

전두환 정권은 투기의 원인을 수급불균형에서 찾고 주택과 택지공급에 초점을 맞춘 대책을 병행해 사용했다. 1983년 2월 부동산투기억제 대책에 이어 4월 ‘토지 및 주택문제 종합대책’, 1985년 9월에는 주택건설활성화 조치, 1986년 3월 허가제 확대를 담은 '부동산투기억제 조치'를 꺼냈다.

이런 노력은 전두환 정권 말 다소 무색해졌고 노태우 정권에서 빛을 보게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부동산 매매가격은 1986년 -2.7%에서 1987년 7.1%, 1988년 13.2%의 상승률을 보였다. 또 같은 기간 서울은 -4.4%에서 2.0%, 9.1%를, 강남은 -6.2%에서 3.05와 15.2%, 강북은 -2.8%에서 1.4%와 2.8% 상승했다.

이런 추세는 1980년대 중반 서울에서도 미분양이 발생하는 시기라 불안했다. 3저 호황까지 더해지자 여의도와 반포, 압구정, 개포 등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1986년 이전 평당 200만~300만 원대에서 1~2년 사이 최소 800만 원에 이르며 현재 서울 부동산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여의도 및 강남지역 아파트 가격. 사진=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노태우 정권(1988년~1993년): 토지공개념과 1기 신도시의 시작

노태우 정권은 시작과 함께 부동산 급상승을 마주해야 했다. 1989년 전국 주택가격 상승률은 14.6%, 1990년은 21.0%였다. 서울과 강남은 더 가팔랐다. 서울은 같은 기간 16.6%와 24.2%, 강남은 18.1%와 29.0%였다. 다소 주춤했던 강북도 14.7%와 18.2% 상승하며 동참했다.

노태우 정권은 1989년 ‘부동산투기억제종합대책’과 공시지가 제도로 대표된다. 이 두 가지 정책은 토기공개념에 기반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은 박정희 정권부터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1978년 ‘8·8조치’의 일환으로 토지공개념위원회가 구성됐고 당시 신형식 건설부 장관이 “토지의 사유 개념을 시정돼야 하며 토지의 공개념에 입각한 각종 토지정책을 입안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첫 제도화한 게 노태우 정권이었다. 노태우 정권이 부동산투기억제종합대책에서 보여준 토지초과이득세법과 개발이익환수제, 택지소유상한제는 토지공개념 대표 3법으로 일컫어 진다.

또 부동산 등기의무화, 대기업의 토지과다보유 억제와 비업무용 부동산 처분 조치, 증여세 강화도 함께 이뤄졌던 시기다.

공시지가 제도는 대선을 앞두고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민심이 들끓은 이유도 있지만, 같은 서울 하늘 아래 너무도 다른 땅값이 문제시 여겨졌던 것도 사실이다.

노태우 정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1988년 8·10 종합대책의 후속조치인 주택 200만 호 건설이었다.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1기 신도시 계획과 맞물려 이전 연 20만 호에 머물던 주택생산능력을 50만 호까지 끌어올렸다. 같은 시기 서울 인구 증가율도 둔화되면서 수급불균형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은 주택가격 하락으로 나타났다. 1991년 전국 주택가격은 -0.5% 감소했다. 특히 서울과 강남, 강북도 각각 -2%대 하락세를 보였다. 평당 1200만 원을 넘어갔던 여의도 아파트 가격도 1000만 원 이하로 떨어졌으며 압구정 지역은 600만 원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11월을 100으로 봤을 때 전국 주택매매가격은 1986년 35.4에서 1990년 59.6까지 상승한 후 노태우 정권을 넘어 1990년대 내내 하락세를 보인다.

하지만 안정될 것 같던 부동산 시장은 10년을 넘기지 못했고 반대로 급하락 충격이 덮친다. IMF 외환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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