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부동산 바보들]④ 김영삼과 김대중, 정치만큼 엇갈린 결과물
[위대한 부동산 바보들]④ 김영삼과 김대중, 정치만큼 엇갈린 결과물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0.03.2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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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금융실명제+부동산실명제 = "부동산 투자하기 무섭다"?
김대중, IMF 위기 극복 부동산활성화→안정화로 방향 선회
기대한 정책과 반대의 결과물…1990년 이후 두 번째 20%대 집값 상승
1998년 1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노태우 대통령을 끝으로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민간 정권이 들어섰다. 뒤 이어 우리나라 민주화의 상징적인 인물인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라는 교집합을 가지 있다. 두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결과물은 교집합을 사이에 두고 다른 의도의 정책을 펼쳤고 결과물도 달랐다. 마치 대통령 선거를 두고 엇갈린 정치행보를 보는 듯 하다.

■김영삼 정권(1993년~1998년): 발 빠른 개혁, 예상하지 못한 외환위기

김영삼 정권에 대한 평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IMF 외환위기에 대비하지 못한 무능함과 그것으로 모두 가려지기엔 아까운 공적이 있다는 의견이다.

부동산 정책 관점에서 가장 먼저 언급할 건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다. 1993년 8월 12일, 김영삼 정권은 ‘금융실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동하고 이튿날인 13일부터 모든 금융 거래는 실명으로 하도록 했다.

이어 김영삼 정권은 1997년 7월 모든 부동산 등기를 실권리자 이름으로 등기하게 하며 명의신탁은 금지한 부동산실명제를 시행했다.

금융실명 확인 및 전환실적. 사진=기획재정부
금융실명 확인 및 전환실적. 사진=기획재정부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는 자금과 부동산 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실명계좌의 실명확인율은 실명제 실시 직후인 1993년 10월 81.3%에서 1996년 6월 98.2%로 높아졌다. 또 비실명예금의 실명전환은 실명제 실시 이후 2개월 내라는 기한으로 인해 1993년 10월 97.1%의 전환율을 보였고 금융기관의 실명제 위반 건수도 1993년 84건에서 1995년 22건으로 줄었다. 금액으로 본다면 실명 미확인 금액은 1993년 10월 72조 원에서 1996년 6월 4조 원으로 급감, 실명예금으로 전환되지 않은 금액은 같은 기간 813억 원에서 358억 원으로 줄었다.

정책 시행 당시 목적을 달성했냐고 묻는다면 절반의 성공과 실패라 말할 수 있다. 투명성 제고라는 정책 목적은 성과를 보였지만 기대만큼 무기명과 가명, 차명거래에 사용된 금액이 부동산 거래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금융실명제 시행 당해를 포함한 전국 주택 평균 매매가격 동향을 보면 1993년 -2.9%, 1994년 -0.1%, 1995년 -0.2%로 김영삼 정권 첫 3년은 하락세였다. 서울은 같은 기간 -3.2%, 0.5%, -0.6%였으며 강남은 -3.5%, 0.9%, -0.1%로 나타났다. 이는 금융실명제보다는 앞서 노태우 정권에서 실시했던 주택 200만 호 건설의 영향이 더 크다는 분석도 있다.

또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상거래와 부당한 거래 노출을 꺼려한 듯 통화량은 오히려 줄어들기도 했다. 전체 통화 대비 민간보유현금 비율로 본 현금통화비율은 금융실명제의 영향으로 7~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비율은 통화당국의 통화 공급 대응으로 1995년 회복됐다.

금융실명제 전후 주택매매 가격 동향 및 금 매매 동향. 사진=기획재정부
금융실명제 전후 주택가격 및 금값 동향. 사진=기획재정부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1990년 전국 주택매매가격이 평균 21.0% 상승했음을 감안한다면 결과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됐다는 평이 많다. 실명제 시행 이후 이어진 1996년과 1997년도 각각 1.5%와 2.0%의 상승률을 보이며 부동산 시장은 김영삼 정권 내내 큰 요동을 치지 않았다.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는 정치적 성격도 더해져 있었고, 반대로 정치적 성격이 덜한 부동산 정책은 소홀한 면이 있었다. 특히 전세가격을 보면 2008년 12월을 100으로 기준으로, 1993년 12월 59.1이었던 지수가 1997년 12월 68.7까지 정권 내내 상승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1994년 ‘전세가격 상승에 대한 대책’ 뿐이었다.

무난한 듯 흘러가던 부동산 시장을 뒤엎는 사건이 김영삼 정권 말기에 터진다. 1997년 한보철강 부도를 시작으로 연쇄적인 기업 부도가 이어졌고, 같은 해 11월 김영삼 정권은 IMF 구제금융을 공식 신청한다. 이를 마냥 정권 탓으로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모 일간지는 1997년 캉드쉬 IMF 총재와의 인터뷰 내용을 2차례 인용해 “한국경제 위기 아니다”고 기사를 내보냈었다.

조선일보 1997년 3월8일 및 9월18일자 지면. 사진=조선일모
조선일보 1997년 3월8일(위) 및 9월18일(아래)자 지면. 사진=조선일보

알고 모르고를 떠나 부동산은 반응했다. 1980년대 이후 평균 주택매매가격이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이상으로 떨어진 건 1998년이 유일하다. 전년 대비 -12.4%, 서울은 -13.2%, 강남은 -15.3%를 보였다. 그만큼 우리나라 역사에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다.

■김대중 정권(1998년~2003년): 부동산 활성화에 이은 안정화, 과실은 강남이

김대중 정권은 시작부터 연이어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1998년 5월 분양가 자율화와 양도세 한시 면제, 토지거래 허가-신고제 폐지, 분양권 전매 한시 허용을 담은 ‘주택경기활성화 대책’을 꺼냈다. 또 6월 분양주택 중도금 대출과 재개발 사업 기금지원을 담은 ‘주택경기활성화 자금지원방안’, 9월에는 중도금 추가지원과 민영주택 분양가 자율화를 포함한 ‘건설산업활성화 방안’, 12월은 민영주택 분양가 추가 자율화와 양도세 한시 감면 범위를 확대한 ‘건설 및 부동산경기 활성화대책’이 정권 첫 해 쏟아졌다.

김대중 정권은 2년 차부터 ‘안정화’란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1993년 3월, 재건축 가구당 2000만 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주택경기활성화 조치’로 포문을 열었지만 5월 중소형과 소형 주택공급에 금리인하와 융자를 담은 ‘서민주거안정대책’, 8월 매년 임대주택 10만 호 건설과 근로자 주택구입자금 지원한도를 상향한 ‘중산층 및 서민 주거안정대책’을 내놨다.

이어 2000년에도 주택건설촉진대책과 함께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함께 발표했고 2001년부터는 ‘서민주거안정대책’, ‘서민주거안정을 위한 전월세종합대책’, ‘전월세안정화대책’, ‘주택시장안정대책’, ‘부동산시장안정대책’ 등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정책들이 대다수를 이뤘다.

김대중 정권의 정책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1998년 -5.1%를 기록했던 실질GDP 상승률은 1999년 11.5%, 2000년 9.1%, 2001년 4.9%, 2002년 7.7%까지, 1980년대 부럽지 않은 성장률을 보였다.

부동산활성화 대책 덕분인지 부동산 시장 하락세는 1년 만에 잡혔다. 1999년 전국 주택매매가격은 전년 대비 3.4%가 올랐다.

월간 주택가격 동향. 사진=한국지방세연구원
월간 주택가격 동향. 사진=한국지방세연구원

문제는 서울, 강남의 상승폭은 전국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1999년 서울은 5.6%, 강남은 무려 9.1%가 증가했다. 강북은 2.0%에 그치며 같은 서울이라도 다른 부동산 성격을 보여줬다.

이 양상은 김대중 정권 말기까지 되풀이 됐다. 2000년 전국 평균 주택매매가격은 0.4%이지만 서울은 3.1%, 강남은 4.4%다. 2001년엔 전국 평균 9.9%, 강북 7.7%가 오르며 전국 부동산이 모두 호황이었다. 그러나 서울 12.9%, 강남 17.5%와 비교하면 이조차도 양호한 수준으로 보인다.

가장 심한 건 2002년이었다. 월드컵만큼이나 뜨겁게 부동산이 치솟았다. 전국 평균 16.4%는 1990년 21.0% 이후 최고 증가율이었다. 서울과 강남도 각각 22.5%와 27.4%를 기록하며 1990년 이후 두 번째 20%대 상승률을 보였다. 이때 강북도 16.3%, 수도권은 21.8% 상승했다.

김대중 정권은 부동산활성화 대책과 안정화 대책을 함께 썼지만 전자의 효과가 더 컸다. 노태우 정권 이후 주춤했던 서울 부동산 가격은 오히려 더 증가했다. 2001년 여의도 아파트 가격은 평당 1400만 원을 돌파했다. 반포, 개포 대비 아파트 가격이 낮았던 압구정도 평당 1000만 원 선에 들어섰다.

서울 부동산 가격 상승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강남의 아파트는 한 번 더 상승의 기회가 남아있었다. 그것도 채 10년이 지나기도 전, 천도(遷都) 바람과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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