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남보다 못한 한국의 대북지원
[기자수첩] 남보다 못한 한국의 대북지원
  • 최종환 기자
  • 승인 2020.03.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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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데일리 최종환 기자 = 코로나19 확산 이후 북한의 방역은 전례 없이 이뤄졌다. 지난 1월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한 데 이어 국경 폐쇄 조처를 내렸다. 최근에는 고열(37℃ 이상)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의심환자로 분류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에 종합병원을 짓겠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일사상과 수령체제를 고수한 북한이지만, 코로나19를 ‘중대한 정치 문제’로 규정한 만큼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응은 자국의 보건·의료 실태와 무관하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결핵 환자는 13만여 명, 사망자는 2만 명에 이른다. 열악한 주거와 식생활로 면역력이 떨어져 결핵으로 번지는 경우가 상당수다.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내걸고 있지만, 제대로 된 종합병원 하나 없는 현실이 북한 보건 정책의 뼈아픈 실책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제사회는 자국의 국경을 봉쇄하면서도, 대북지원을 서두르고 있다. 북한의 ‘철천지 원수’인 미국조차 코로나19는 정치문제에서 벗어나 인류 보편의 가치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시각)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을 통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제안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의료지원의 필요성을 언급한 지 나흘 만에 나온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한과 이란 등을 돕는 일에 열려있다”며 “국가가 도움을 필요하다면 도울 것”이라고 했다. 친서 전달 소식도 전해져 북미관계 개선을 점치는 보도도 나왔다. 

국제기구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국제적십자사연맹(IFRC)과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이미 지난달 유엔(UN) 안보리로부터 제재 면제 승인을 받았다. 북한의 열악한 의료 시설을 반영해 방역에 필요한 의료 장비와 진단키트, 마스크 등의 지원 대책을 세웠다. 

UN은 그간 북한에 강도 높은 대북제재를 취하면서도, 인도적 사안만큼은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 25항에는 “국제기구 및 NGO 활동을 촉진하거나 제재 면제가 필요할 경우 활동 사안별로 제재를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재가 비핵화 등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인하기 위해 취해졌지만, 결과에 부합하다면 대북지원도 용인하겠다는 의미다.

 

북한에서 코로나19 방역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조선중앙통신 제공)
북한에서 코로나19 방역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조선중앙통신 제공)

그런데 우리 정부는 조용하다. 통일부는 남북 간 방역 협력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20일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두 달째 “북한이나 국제기구의 공식 요청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국내 대북지원 단체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개성공단이라도 열어 마스크 대란을 해소하자고 주장했다. 기업인들은 빠르면 1주일 안에 KF80(0.6㎛ 미세먼지 80% 이상 차단) 수준의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통일부가 “현시점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은 어렵다”고 선을 그으면서 논쟁은 며칠 만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물론 정부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 방역 협력을 제안했다가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 여론의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등 정치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총선이 코앞이라 지원을 강행할 경우 ‘색깔론’ ‘퍼주기’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앞 다투어 추진한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우리만 불구경하듯 쳐다보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남북 정상은 이미 9·19평양공동선언(제1조 4항)을 통해 “전염성 질병의 유입 및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조치”를 강화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질병관리는 인류 보편적 가치로, 남북이 함께 대응하기로 합의를 이뤘다. 서로 의지만 있다면 방역 협력은 못 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난달 UN 대북제재 면제 승인을 받은 샘복지재단의 관계자가 기자에게 한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한국은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사안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북한이 어려우면 남한보다 주변 국가들이 먼저 나서는 게 옳은 일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대북 인도적 사업을 펼치고 있는 샘복지재단은 코로나19 사태와 무관하게 일찍이 의료장비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치적 상황을 따지지 않고, 북한 주민생활 개선이 재단의 주된 목표이기 때문이다. 

전염병 확산에는 국경이 없다. 정치제도가 어떻든 바이러스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에서는 누구나 병을 앓을 수 있다. 현재로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통해 각자도생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출범 초 한반도 평화정착을 내 건 현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방역 협력은 필요하다. 그에 앞서 대북지원이 비핵화 협상이나 북한의 태도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주민들의 생존권을 높여주는 일로 여겨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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