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스파르타-페르시아 전쟁, 원인은 '아테네'
[영화로 보는 경제] 스파르타-페르시아 전쟁, 원인은 '아테네'
  • 김성화
  • 승인 2020.06.1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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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교차로 이오니아의 반란, 후방에서 지원한 아테네
다리우스 1세 1차 원정 '마라톤', 크세르크세스 2차 원정,'살라미스 해전' 패배
아테네-스파르타 간 '펠로폰네소스 전쟁', 새로운 시대로 진입
영화 '300'은 자유의 그리스와 정복자 페르시아의 대결 구도를 그리고 있지만 그 계기는 이오니아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과 아테네의 지원인 점은 쏙 빼먹고 있습니다. 사진=워너브라더스 홈페이지
영화 '300'은 자유의 그리스와 정복자 페르시아의 대결 구도를 그리고 있지만 이오니아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과 아테네의 지원인 점은 쏙 빼먹고 있습니다. 사진=워너브라더스 홈페이지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스파르타의 왕 레오디나스는 페르시아와의 최후의 전투를 앞두고 스파르타의 법에 따라 “자유의 시대가 시작됐다”며 “300명의 스파르타 병사들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음을 강조하며 용기를 북돋습니다.

영화 ‘300’에서 두 국가의 싸움은 마치 자유의 수호자와 정복자의 싸움으로 비춰집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엔 페르시아가 억울한 면이 있을 거 같습니다.

레오니다스를 처음 만난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는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스파르타가 항복을 한다면 “그리스의 통치권을”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유럽의 심장부에 나의 깃발을 꽂고 아테네인들은 네게 머릴 조아릴 것이다”고 말합니다. 두 국가의 전쟁에 왜 뜬금없이 아테네가 나올까요?

사실 이 전쟁의 원인은 아테네에게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페르시아의 그리스, 특히 아테네였지만 반페르시아 동맹의 또 다른 주축인 스파르타에게 막혔던 겁니다. 그럼 왜 아테네를 목적으로 할까요?

이오니아 지역은 페르시아에게 동서 교역에 있어 가장 전방에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사진=위키백과
이오니아 지역은 페르시아에게 동서 교역에 있어 가장 전방에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사진=위키백과

페르시아의 그리스 원정은 바다 건너 이오니아 지역이 계기가 됩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서 이오니아 반도가 있는 소아시아 전체와 팔레스타인 전역과 아라비아 반도, 이집트와 리비아 등 광활한 대지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 시대에는 아케메네스 왕조는 육로와 해상로 개척에도 힘썼고 크세르크세스에 앞선 다리우스 1세는 홍해와 나일 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만들며 동서교역을 키웠습니다. 이오니아 지역은 그런 페르시아가 서쪽 국가들과 교역을 하는데 가장 전방에 위치한 지역이었습니다.

또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보면 이 지역은 당시 부유했던 이집트나 바빌로니아 못지않게 많은 세금을 내는 곳이었습니다.

기원전 499년, 그런 이오니아 지역에서 페르시아에 대한 반란이 일어납니다. 이오니아는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특히 밀레토스의 참주인 아리스타고라스가 페르시아의 총독 중 한명인 아르타페르네스와 함께 낙소스 원정을 떠납니다. 이 원정은 성공하지 못했고 아리스타고라스는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이오니아 도시국가들을 선동해 페르시아에 반란을 일으킵니다.

페르시아로서는 교역에 중요한 지역이면서도 꽤나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고 있던 이오니아 지역을 가만히 둘 수 없었습니다. 또 워낙 넓은 땅을 지배하다 보니 시끌시끌한 지역도 많아 빠르게 정리하고도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오니아 반란을 아테네가 지원을 합니다. 페르시아 전쟁은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서양과 페르시아가 대표하는 동양의 문명 대결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시작은 그렇게 고차원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페르시아로서는 아테네는 언제든 이오니아 지역에서 다시금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요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리우스 1세는 기원전 492년 아테네를 향한 1차 페르시아 전쟁을 일으키지만 그 유명한 마라톤 전투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300에 나오는 페르시아 해군이 폭풍을 만나 침몰하는 장면은 1차 페르시아 전쟁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다리우스 1세 얘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다리우스 1세는 이오니아 지역의 리디아와 이집트에서 많은 금을 챙겨갔고 제국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만들고 '다레이코스'라 불렀습니다. 이때 다리우스 1세는 다레이코스 1개 당 금 8.3그램으로 주조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금화 한 개가 넓은 지역에서 고정적이고 안정적으로 통용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루안총샤오는 '금의 역사'에서 다리우스 1세를 '금본위제 화폐 제도를 수립한 인물'이라 말합니다. 다리우스 1세는 다레이코스에 자신의 초상을 새겼고 화폐에 인물의 초상을 넣은 유행이 생겨나게 됩니다. 

나는 관대하지만 돈이 걸려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사진=워너브라더스 홈페이지
"나는 관대하지만 돈이 걸려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사진=워너브라더스 홈페이지

크세르크세스가 일으킨 전쟁은 기원전 480년 2차 페르시아 전쟁입니다. 영화 300의 배경은 2차 페르시아 전쟁의 ‘테르모필레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큰 희생을 치르지만 어찌됐든 승리한 크세르크세스는 아테네까지 진격하지만, 아테네는 이미 살라미스로 이주하고 도시를 비워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살라미스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페르시아가 크게 패하며 2차 원정도 실패로 끝이 납니다.

2차 페르시아 전쟁 이후 여러 차례 전투가 벌어졌지만 기원전 465년 크세르크세스가 측근에게 암살되고, 기원전 448년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동맹과 페르시아 사이 ‘칼리아스 평화조약’을 맺으며 이야기가 일단락됩니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습니다. 페르시아가 물러나자 그리스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으로 양분화가 이뤄집니다.

여기서도 먹고 사는 문제가 작용합니다. 아테네의 땅은 농사를 짓기에 그리 좋지 못한 곳입니다. 기껏해야 올리브와 포도가 자랄 정도였고, 이것만 먹고 살수는 없었죠. 아테네는 이를 해군력을 살린 식민지 확장으로 만회하면서 그 영향력을 이탈리아 남부까지 확장했습니다.

그런 아테네의 확장은 스파르타에게 두고 보기 힘든 상황이었고 기원전 431년 델로스 동맹과 펠로폰네소스 동맹 간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스파르타는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승리의 결과물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습니다. 지금보면 이오니아 반란에서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진 흐름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중 어느 한쪽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시대를 앞당긴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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