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서재] 칼을 삼키는 방법
[기자의 서재] 칼을 삼키는 방법
  • 신진섭 기자
  • 승인 2020.06.26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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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FACTFULNESS)' =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공저/이창신 역, 김영사. 

톱데일리 신진섭 기자 = “그래서 팩트가 뭔데?”, “이게 팩트야 이 자식들아.” 신문사 편집국에서나 들을법한 얘기인줄 알았다. 요즘엔 온오프라인 어디서나 팩트를 찾는 통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누군가는 ‘팩트 유행’이 역설적으로 팩트가 사라진 사회를 말해준다고 했다. 믿을만한 정보를 찾기 어려운 이른바 탈진실의 시대다.

기자는 팩트와 가장 밀접하게 지내는 족속 중 하나다. 그래서 팩트유행에 가장 곤혹스러운 직업이기도 하다. 혹자는 그냥 팩트대로만 쓰는 그 쉬운 걸 못한다고 기레기라는 멸칭을 붙인다. 하지만 있는 것을 그대로 적는 것은 말하는 것처럼 쉽지는 않다. 몇 가지 한계와 현실적 제약들이 암약하고 있다.

흔히 간과되는 건 팩트(사실)와 진실은 별개의 개념이라는 거다. 팩트투쟁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는 코끼리가 길고 주름 지다고, 다른 한편에선 굵은 통나무 같다고 말한다. 각각의 팩트는 사실이지만 동시에 진실은 아니다. 제 아무리 기자라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순 없다. 인간의 식견이란 매우 제한적이고 누구나 맹점을 갖고 있다. 

그럼 몇 명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코끼리를 만지면 어떨까. 서로 만진 코끼리의 부위를 따져보고 전체 코끼리의 모습을 재현해내는 것, 이것이 편집국에서 매일 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일선의 취재기자가 코끼리를 발견하고, 이리 생겼다고 보고하고, 경험 많은 기자들이 그럴 리 없다고, 이쪽 다리도 만져보고 오라고 지시한다. 괜찮은 방법 같지만 역시 불충분하다.

길고, 두껍고, 크고 해서 코끼리라고 적었지만 알고 보니 코끼리와 대단히 닮은 거대 오랑우탄이거나 킹콩일 가능성도 있다. 판단은 과거의 경험에 근거하기 쉽다. 가능성이 낮다고 무시할 때 오해가 잉태된다. 오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은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당연하다고 믿던 ’팩트‘들의 맨얼굴을 독자에 들이민다.

첫 번째 질문,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을 얼마나 될까? A:20%, B:40%, C:60%. 두 번째 질문, 세계 인구의 다수는 어디에 살까? A:저소득 국가, B:중간 소득 국가, C:고소득 국가. 세 번째 질문, 오늘날 세계 기대 수명은 몇 세일까? A:50세, B:60세, C:70세. 답은 C, B, C 순이다. 

저자는 비전문가는 물론 언론인을 포함한 대다수 전문가들이 해당 질문에 침팬지보다 못한 정답률을 보였다고 말한다. 세상은 둘로 나뉜다는 ‘간극 본능’과 세계는 점점 나빠진다는 ‘부정 본능’, 세상을 단순화하려는 ‘일반 본능’ 등이 오해를 낳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오해를 넘어서는 ‘사실충실성(팩트풀니스)‘를 구현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통계를 바탕으로 사고하고, 전후 맥락을 고려하며, 극적인 사례를 경계한다. 사람(타인)들이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해라 등등. 이 같은 원칙을 몰라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침팬지보다 못한 점수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상을 나에게 편한 방식으로 보려는 관성과 욕망에서 벗어나려는 용기가 부족했으리라.

한스 로슬링은 칼을 삼키는 강연으로 유명하다. 칼을 삼키는 방법은 단순하다. 식도가 일직선이 되도록 고개를 젖히고, 직선으로 식도를 따라 칼을 넣었다 빼면 된다. 어떤 트릭이 있을 거라는 상식을 배반한다. 많은 연습과 고통을 회피하지 않을 용기만 있으면 누구나 해낼 수 있는 재주다. 그가 말하는 팩트풀니스도 마찬가지다. 편견에 안주하지 않을 용기가 팩트를 발굴할 수 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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