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만리장성과 '땅'을 지킨 '뮬란'의 용기
[영화로 보는 경제] 만리장성과 '땅'을 지킨 '뮬란'의 용기
  • 김성화
  • 승인 2020.07.1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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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농경의 경계선, 빠르게 한화(漢化)된 위진남북조의 북위
기본소득, 청년수당 닮은 균전제…서진의 점전제, 불평등 제한
'토지는 국가 소유' 토지공개념 바탕…토지사유화, 당나라의 멸망 초래
뮬란(1998)
감독: 리 쿡, 토니 밴크로포트
출연: 나 웬(뮬란), 아 살롱가(뮬란, 노래 목소리), 구엘 페레(산유), 비 피에르스테인(야오), 레다 포 쉔(파리), 준 포레이(할머니), 제임스 홍(치 푸)
별점: ★★★☆ - 짧게 느껴지는 런닝타임, 실사화 버전은 내용이 충실할까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광활한 대지를 가르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인류가 만든 가장 긴 건축물인 만리장성을 넘는다는 건 소위 중원(中原)에 진출 혹은 침범한다는 의미다. 한(漢)족의 세계와 맞닥뜨린다는 얘기다. 마치 대륙과도 맞닥뜨린다는 얘기다. 마치 대륙과도 같은 크기의 땅이지만, 만리장성은 떠돌아다니는 유목의 세계와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원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상징이다. 중원의 세계는 유목인들이 넘어 오지 말라며 긴 성벽을 세웠지만 유목의 세계는 늘 그 벽을 넘고자 했다.

디즈니가 최초로 동양을 배경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뮬란’은 바로 그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에 대해 말이 많지만 위진남북조 시대의 ‘화목란’ 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화목란은 북위의 인물로 애니메이션처럼 아버지를 대신해 전쟁에 참가해 공을 세운 후 귀향했다고 전해집니다.

영화의 처음에 등장하는 ‘산유’도 흉노족의 ‘선우(單于)’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여기서 선우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흉노족의 지도자를 뜻하는 칭호입니다. 다만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면 흉노가 아니라 유연(柔然)이 맞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유연은 몽골족의 국가였습니다. 디즈니가 뮬란을 제작하면서 크게 고증에 신경 쓰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에는 여러 시대 문화가 섞여 있습니다. 복식과 궁궐은 당나라 시대를 참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디즈니 이미지 메이킹의 피해자(?). 사진=다음영화
디즈니 이미지 메이킹의 피해자(?). 사진=다음영화

주변 설명은 이정도로 하고 북위로 넘어 가보겠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북위는 상당히 한족(漢族)화가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북위는 유목민족인 선비족의 탁발(拓拔) 씨족의 '규'가 세운 국가로, 탁발규는 북위 초대 황제인 도무제가 됩니다. 도무제 건국 후 북위는 중원의 국가 체제를 도입하고 부족민을 중국 호족에 편입하며 한족 출신 인재를 등용하는 등 빠르게 동화됐습니다.

그 점이 가장 돋보이는 건 토지제도입니다. 유목 민족 출신인 북위는 삼국지 시대의 조조가 시행했던 둔전제를 이어받은 균전제를 적용합니다. 조조는 토지를 농민들에게 고르게 나눠주고 농사를 짓도록 했습니다.

균전제(均田制) 또한 농민에게 일정 면적을 지급하는 형태로 마치 지금의 ‘기본소득’과 비슷해 보입니다. 균전제는 유목 민족인 선비족이 농경 민족화 되는 핵심 정책 중 하나였습니다. 일정 연령 이상의 남자들에게 토지를 주면서 유휴 토지를 줄이면서도 세수를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15세 이상 남자는 영업전과 구분전을 받았습니다. 영업전은 대를 이어 물려주는, 구분전은 토지를 받은 자가 죽으면 다시 반납해야 했습니다. 왜 영업전(永業田)이라 불렀을까요? 영업전은 개인 재산화해 거래가 가능했습니다. 기본소득은 일정소득을 보장해준다는 얘기입니다. 어찌보면 ‘청년소득’을 시작으로 한평생 기본소득을 국가가 보장한 형태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의 불평등은 문제였습니다. 영업전과 구분전이 농민들에게 일정 소득을 보장해 준다면, 위진남북조의 또 다른 국가 서진(西晉)은 점전제로 불평등을 해소하려 했습니다. 서진은 성년 남자에게 70무, 결혼한 가족은 100무를 지급했습니다. 1무는 약 17.3㎡입니다. 관리는 이에 더해 품계에 따라 5경의 땅을 추가로 가질 수 있었습니다. 9품은 10경, 1품은 50경 정도를 더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특혜라 볼 수 있지만 반대로 품계가 올라도 이 이상의 땅을 가지지 못하도록 제한을 걸어둔 것입니다.

북위의 균전제는 남자들에게 기본 40무를 지급하고 부인이 있다면 추가로 20무, 소를 가지고 있다면 1마리당 30무, 노비가 있다면 1명당 40무를 지급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소와 노비를 많이 거느릴 수 있는 부자들은 더 많은 땅을 지급받게 됩니다. 위진남북조에 이어 등장한 당나라도 균전제를 시행했지만 대토지 소유자가 등장하고 나눠줄 땅이 부족해지면서 농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져 균전제가 무너졌음을 생각하면 토지 소유의 불평등을 막지 못한 게 꽤나 큰 문제였습니다.

어쩌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이 아저씨다. 사진=다음영화
어쩌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이 아저씨다. 사진=다음영화

이런 제도의 시행의 기본은 토지공개념입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역사적으로 토지 제도를 시행함에 있어 국가 주도 성격이 강합니다. 모든 토지는 국가 소유라는 개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중국 헌법 제9조는 “광산, 하천, 삼림, 야산, 초원, 황무지, 갯벌 등 자연자원은 모두 국가 소유다”, 10조는 “도시의 토지는 국가 소유며 국가는 공공이익의 수요를 위해, 법률 규정에 근거해 해당 토지를 징수하거나 징용한 뒤 보상할 수 있으며 어떤 조직이나 개인이 침범하거나 매매, 어떤 방식으로든 전매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해 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부동산을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토지 사용권이 분리되고 사유화가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박인성 중국 저장대학 토지관리학과 교수가 발표한 ‘고대 중국의 토지 국유제 쇠락과 사유권 확장 과정 고찰’을 보면 춘추전국 시대 말부터 국유토지의 사유화가 시작됩니다. 북위 시절 토지국유화가 강화되지만 당나라에 이르러 균전제가 없어지고 토지사유제가 강화됩니다. 토지가 경제활동의 기반이 되면서 사용 기간도 점점 길어지고 사용권에 대한 보장 기간도 점점 장기화와 안정화되는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대신 당나라 대에 이르고 송나라가 등장하면서 사람보다는 재산과 토지에 맞춰 조세를 부과하게 됩니다. 이것이 당나라 양세법(兩稅法)의 시작입니다. 이를 통해 귀족과 호족들이 사유지를 늘리며 대토지 소유자가 등장하고 반대로 농노 또는 소작농도 증가합니다.

당나라는 ‘안사의 난’에 이어 '황소의 난'을 겪으며 사실상 망조의 길로 들어섭니다. 하나는 토지를 통해 부유해진 절도사, 하나는 착취에 저항하는 백성이 일으킨 사건이 나라를 무너뜨린 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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