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서재] 정치인들은 왜 싸울까
[기자의 서재] 정치인들은 왜 싸울까
  • 최종환 기자
  • 승인 2020.07.2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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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것의 개념' = 카를 슈미트/김효전 정태호 역, 살림.
▲'정치적인 것의 개념' = 카를 슈미트/김효전 정태호 역, 살림.

톱데일리 최종환 기자 = “적과 친분이 있는 분이 국정원을 맡아서 과연 되는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 19일 이승만 전 대통령 55주기 추모식에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를 두고 한 말이다. 박 후보자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에 4억 5000만 달러를 송금한 데 관여해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주 원내대표의 발언은 대한민국의 ‘주적’인 북한에 돈을 댄 인물이 어떻게 국가정보 기관의 수장이 될 수 있냐는 것이다.

국회가 지난 16일 4·15 총선 두 달이 지나서야 문을 열었다. 여야 정치인들의 고성과 반말은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됐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진 듯하다. 최근 인사청문회까지 겹쳐져 이들의 입은 더욱 험악해졌다.

여야는 서로 수비와 공격수가 된 듯 전략적이면서도, 한편으론 도를 넘는 막말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모습이다. 많은 국민이 생각하듯 사이좋게 좋으련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이들은 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카를 슈미트의 저작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정치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1988년 독일 플레텐베르크 출신인 슈미트는 대표적인 보수 법학자다. 주로 시민 민주주의의 정치·법적 개념을 연구했다.

이 책은 정치를 공적인 적대관계에서 찾아 ‘정치란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현실 정치에서 국가는 어떤 존재인지 이론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슈미트는 제1장 ‘국가와 정치’에서 “국가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전제로 한다”고 했다. 여기서 유명한 명제를 내놨는데, 정치의 본질적 기능은 ‘적과 동지의 구별’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떤 집단을 적으로 규정하는 결정에는 전쟁과 같은 투쟁이 현실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고 봤다.

편 가르기는 아주 강력한 인간의 결속 방식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편 가르기를 가져오는 바로 그 순간, 지금까지의 ‘순’종교적·‘순’경제적·‘순’문화적인 규준이나 동기는 후퇴”하기 때문에 상대를 격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된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치적을 높이기 위해 현존하는 적인 북한의 공포를 유발하고, 동조하지 않는 이들에게 따가운 회초리를 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적 구별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슈미트의 정치적 개념은 국제정치에서도 고스란히 확인된다. 북한은 지난달 9일 김여정 담화문을 통해 “대남 사업을 적대 사업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평양 각지에서는 대규모 대남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북한의 관영 매체는 시민들의 분노 섞인 목소리를 연일 보도했다.

북한 지도부는 적(남한)과 동지(북한 주민)의 구분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부각했고, 경제난에 허덕이는 체제의 모순을 가리는 효과를 얻으려 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바람대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슈미트는 다소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적과 동지의 구별이 사라지면 정치생활도 없어진다”고 했다. 우리가 기대하는 ‘싸우지 않는 정치인’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재차 강조하지만, 정치는 본질적으로 적과 동지를 구분 짓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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