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엘 시드(El Cid)'도 막지 못한 이슬람 경제의 승전보
[영화로 보는 경제] '엘 시드(El Cid)'도 막지 못한 이슬람 경제의 승전보
  • 김성화
  • 승인 2020.08.07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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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실존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 무어인의 침입 막은 스페인 영웅
동·서 문명의 충돌? 은행, 복식부기, 어음 등 이슬람 경제문화의 확산
세금을 위한 포교 전쟁…"알라의 장부에는 모든 게 기록돼 있다"
엘 시드(1961)
감독: 안소니 만
출연: 찰턴 헤스턴(엘 시드, 로드리도 디아즈 데 비바르), 소피아 로렌(지메나), 라프 발로네(오르도네즈 백작), 존 프레이저(알폰소 6세), 제네비에브 페이지(유라카 공주), 게리 레이몬드(산쵸)
별점: ★★★ - 벤허도 그렇고 CG 없는 生라이브 고전 영화 액션은 지금보니 특미다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동양과 서양의 충돌. 누군가는 문명의 충돌이라 말했던. 여기서 ‘충돌’이란 말은 사전적으로 ‘서로 맞부딪치거나 맞섬’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 ‘엘 시드(El Cid)'는 이슬람 문명의 진격 앞에 맞선 서양을 그리고 있습니다. 맞선다는 건 서로 분리돼 있고 부딪쳤을 때 합쳐지기 힘든 성질을 내포하고 있겠죠.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보여주듯 눈으로 보이는 물리적 충돌과 달리 문화는 생각보다 빠르고 깊게, 그리고 서로의 차이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로 융화시키고 있습니다.

엘 시드는 11세기 실존했던 스페인의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엘 시드란 말은 스페인어 관사(El)에 ‘경(Lord)'란 뜻의 'sayyid'를 붙인 단어로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를 부르는 단어입니다. 편의 상 엘 시드라 부르죠. 엘 시드는 스페인의 국민적 영웅으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무어족의 침입으로부터 스페인을 지켜낸 공적이 기려지고 있습니다.

당시 스페인의 왕이었던 페르난도 1세도, 뒤를 이은 알폰소 6세도 무어인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문명에 대한 극적인 반감을 드러냅니다. 페르난도 1세와 알폰소 6세가 지금의 우리를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마 “더러운 무어인의 문명을 받아들였다”며 화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기반에는 알게 모르게 이슬람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들은 그토록 이슬람 문명을 미워했지만 이슬람 문명, 특히 경제는 방탄소년단만큼이나 빠르고,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곱씹어 볼수록 사실 엘 시드는 양아치다. 사진=다음영화
곱씹어 볼수록 엘 시드가 벌인 짓은 양아치스럽다. 사진=다음영화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은행은 영어로 ‘Bank'입니다. 이 말의 어원은 이탈리아어인 ’Banco'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인들도 이 단어를 이슬람 문명권에서 차용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Banco는 영어의 ‘Bench'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이슬람 문명권에서 금전 거래를 행하던 테이블을 지칭한 단어가 이탈리아로 넘어 갔고 현재에 이르게 됐다고 합니다.

어원을 얘기하니 한 가지 더 덧붙여 보겠습니다. 경제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로 ‘리스크(Risk)'가 있죠. 이 단어는 해도(海圖)가 없는 항해를 뜻하는 아라비아어에 기원한다고 합니다. 흔히 리스크와 크라이시스(Crisis)를 혼동하는데, 리스크는 불확실한 미래의 위기라면 크라이시스는 이미 발생한 위기를 뜻합니다. 망망대해에서 지도 없이 항해를 한다는 건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위기와 늘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라비아 숫자의 중요성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은행과 함께 경제와 금융이 커지는데 큰 역할을 한 복식부기도 이슬람권에서 시작됐습니다. 복식부기는 일반적으로 소득과 지출을 쭉 나열한 가계부와 달리 왼쪽의 ‘차변’과 오른쪽의 ‘대변’에 두 번 기입합니다. ‘차’는 차입, 차관 등의 경우에서와 같이 돈을 빌린다는 의미며 ‘대’는 대부, 대출 등 빌려준다는 의미입니다. 차변에는 자산의 증가와 부채·자본의 감소, 비용의 발생을 씁니다. 대변은 반대로 자산의 감소와 부채·자본의 증가, 수익의 발생을 씁니다. 왜 그렇게 쓰냐고요? 이해하려 하지 말고 외웁시다.

우리가 수학에서 사용하는 등호(=) 또한 아라비아 숫자와 함께 전파됐습니다. 저울 양쪽이 균형을 이룸을 의미합니다. 복식부기는 차변과 대변이 저울처럼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걸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거래를 행했어도 잘못된 기록을 장부만 보고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CG가 없어 오히려 신선하다. 사진=다음영화
CG가 없어 오히려 신선하다. 사진=다음영화

지금도 사용되는 어음 또한 아라비아 문화에서 시작된 경제적인 도구입니다. 어음은 경제가 유지되는데 필수적인 ‘신용’이라는 요소가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13세기까지 유지됐던 이슬람의 아바스왕조에서는 페르시아반도의 바그다드에서 발행된 어음이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에서도 교환 가능할 정도로 신용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바스왕조는 어음의 신용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이는 이슬람 문명에서 상업이 발달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슬람 문명에서의 상업의 발달은 그 종교의 성격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코란에 ‘알라는 장사를 허용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친상업적이었습니다. 이런 친상업적 성격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심판의 날을 ‘총결산의 날’로, 심판의 날에 거론될 개개인의 행동이 ‘알라의 장부’에 기록돼 있다는 표현 등에서도 나타납니다.

전쟁이라는 요소와 함께 서양에서 이슬람 문명을 싫어할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7세기 이슬람교가 창시된 후부터 사용된 포교 방식은 기본적으로 정복 전쟁이었습니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에는 이교도들이 ‘세금을 내고 머리를 조아릴 때까지 싸워라’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정복 전쟁이 영토의 확장에 따른 세금 확보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세금을 낸 이교도는 목숨을 보호해주기도 했지만, 과도한 세금에 차라리 개종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종교가 가미된 이슬람권에는 '무이자 은행'이란 독특한 제도가 존재합니다. 코란은 이자의 수취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자가 없다면 은행이 생길 수가 없죠. 1970년대 오일머니가 증가하면서 은행이 필요해졌고 코란과의 조화를 시도하면서 생겨난 게 무이자 은행입니다. 이 은행들은 이자가 아닌 수수료를 챙기는 형태로 수익을 냅니다. 100만원을 대출하면 수수료로 5만원을 제한 95만원을 주는 형태입니다. 예금주들은 은행에 돈을 맡기면 기업들이 수익 중 일부를 은행에 주고, 은행은 그 수익에서 경비를 제외한 금액을 예금주들에게 주는 일종의 투자 형태로 수익을 받습니다.

부동산 대출도 형태가 다릅니다. 우리는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집을 사는 방식입니다. 무이자 은행은 은행이 먼저 집을 구입한 후 비용을 붙여 다시 되파는 형식입니다. 이러나저러나 같아 보이지만 적어도 이자를 받는 건 아니게 됩니다.

크루아상은 맛있지. 사진=픽사베이
크루아상은 맛있지. 사진=픽사베이

크루아상이라는 빵을 좋아하시나요? 초승달 모양의 이 빵은 어느 제과점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크루아상의 기원은 16세기 지금의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례됐습니다. 당시 빈을 침입했던 오스만 튀르크 군의 깃발에 새겨진 초승달 모양을 제빵에 이용했다고 하니 그만큼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무함마드가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향한 '헤지라'의 밤에 초승달이 떠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동양과 서양은 고대 이후 줄곧 전쟁을 벌였지만 그로 인한 문명의 교류는 알게 모르게 지금까지 우리 일상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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