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중세 시대 코로나19, 흑사병이 보여준 질병의 경제학
[영화로 보는 경제] 중세 시대 코로나19, 흑사병이 보여준 질병의 경제학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0.09.04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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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오브 더 위치'에 나타난 대규모 흑사병 감염, 유럽 인구 1/4이 감소
농민 임금의 증가, 약해진 토지 귀속력, 도시국가의 성장, 상업의 발달
중세 교회 권력의 약화…종교의 이름 뒤에 존재한 경제적 야심 드러내
시즌 오브 더 위치(2010)
감독: 도미닉 세나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베이맨), 론 펄만(펠슨), 스티븐 캠벨 무어(데벨쟈크), 클레어 포이(마녀?), 올리히 톰센(에크하르트), 스티븐 그레햄(하가마), 로버트 시한(카이)
별점: ★★☆ - 진부한 대사와 연출, 메시지는 있지만 전달 방식의 문제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활기차야할 마을이 어두컴컴해 보이는 건 해가 뜨지 않아서가 아니다. 마을을 장악한 어둠의 기운이 사람들 몸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다. 그 기운은 사람의 몸을 파고들어 온몸에 검은 반점을 새겨놓고 보기도 끔찍하게 꿈틀대고 있다. 사람들은 붉은 피를 울컥 토하며 벗어나려 하지만 부질없는 노력이다. 세상은 그걸 지옥의 저주라 불렀고 그래서일까, 죽음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흑사병 혹은 페스트는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을 휩쓴 병입니다. 프레더릭 F. 카트라이트의 ‘질병의 역사’를 보면 당시 유럽 사람들은 “후세 사람들이 과연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직접 목격한 우리 자신도 믿을 수가 없는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흑사병보다도 더 광범위하고 더 치명적인 코로나19와 싸우고 있습니다.

‘시즌 오브 더 위치’는 흑사병이 퍼지던 시기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흑사병의 원인으로 여겨진 마녀를 세버락 수도원으로 데려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가히 마녀가 아니고서는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공포감을 줬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원인도, 치료법도, 정체도 몰랐으니까요. 흑사병은 이탈리아부터 프랑스, 독일, 스칸디나비아에서 모스크바까지 유럽 전역을 덮쳤고 대략 24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을 거라 추정합니다. 당시 유럽과 서아시아 인구의 1/4에 이르는 숫자입니다. 영국의 인구는 1340년대 450만에서 600만 명에 이르렀지만 흑사병으로 30년 만에 250만 명에서 300만 명으로 감소했습니다.

특히 아직 농업 비중이 높았던 중세 유럽에서 많은 인구 감소는 즉각적인 변화를 이끌어 냅니다. 14세기 이전 중세온난기때 유럽 인구가 증가하고 노동력이 풍부했습니다. 봉건사회 하에서 영주들은 풍부한 노동력 덕분에 농민들을 쉬이 부릴 수 있었죠.

흑사병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착용한 가면이지만 오히려 보고 놀랄 듯. 사진=다음영화

흑사병은 14세기 들면서 평균 기온이 떨어지고 이로 인한 기근이 한몫하고 농민들의 숫자가 크게 줄어듭니다. 이는 반대로 흑사병에서 살아남은 농민의 노동력 가치가 급상승하게 만들었습니다. ‘세계사속 경제사 - 돈, 성, 권력, 전쟁, 문화로 읽는 3000년 경제이야기’에 따르면 컥스함에서 쟁기질하던 사람의 임금은 페스트 이전 1년에 2실링에서 1349년 7실링, 1350년 10실링6펜스로 올랐습니다.

흑사병으로 임금이 오르고 농민들의 생활이 나아졌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봉건사회는 토지를 중심으로 구속된 사회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사도 마음대로 갈 수 없게 한 것은 인력을 통제하고 경제적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하지만 흑사병 이후 이런 구속력을 상실하게 되고 이는 봉건제가 무너진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농민들과 영주들이 지대를 놓고 대립하며, 농민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영지를 떠나버리는 일이 잦아집니다.

또 현물로 지급되던 노동의 대가가 금납으로 바뀌었고, 흑사병 이전 온난한 기후를 바탕으로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동반됐던 상업의 발달을 더욱 촉진시킵니다. 화폐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중산층이 등장하고, 더 이상 노동력에만 의존하는 게 아닌 기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집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비대면 경제에 마주하게 됐습니다. 극단적으로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경제 행태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변화의 끝일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재택근무나 온라인 교육, 쇼핑 등이 비대면 경제에 맞춰 더욱 가속화되고 다른 형태를 띌 것이며, 대면 경제가 다시 활성화 되도 우리는 예전 생활로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마녀 사냥은 실제했습니다. 사진=다음영화

이렇듯 치명적인 질병은 급격한 사회 변화를 초래하고 흑사병 또한 인류 역사에 두 가지 큰 사건에 영향을 줍니다. 첫 번째가 르네상스의 도래입니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일어납니다.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르네상스가 발생한 건 앞서 말한 농민과 새로운 중산층의 등장, 그리고 약화된 토지 귀속성과 봉건제에서 벗어난 도시주민의 지위 향상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두 번째는 흑사병은 중세를 지배하던 종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인간을 좀 더 중심에 두도록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종교가 약해진 건 흑사병으로 줄어든 성직자 수를 채우기 위해 부랑배나 범죄자까지 받아준 점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신의 아들들마저 흑사병을 피하지 못하는 모습은 그들의 말과 맞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종교는 인간의 공포감을 먹고 키워졌습니다. 사진=다음영화

이런 인식은 봉건사회 권위에 기댄 교회 권력을 약화시켰습니다. 신으로부터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게 최선이라 여겼던 소명의식은, 모든 직업은 신이 허락한 일이기에 노동을 행하고 근검절약하면 재산을 축적해도 된다는 초기 자본주의적 정신으로 대체돼 갔습니다. 이에 따라 하찮은 일로 여겼던 상업도 점점 더 활성화되며, 상인들과 밀접했던 왕권과 귀족 세력은 강해지고 반대로 교회는 점점 쇠퇴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종교는 인간의 공포심을 이용하고, 돈을 향한 욕심을 접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신의 이름으로, 신을 대신해 죄를 면하게 해주겠다는 말이 오히려 그동안 사람들이 참고 있던 화까지 돋우게 해버렸습니다. 우리는 흑사병이 마지막을 향하던 시기, 교회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했던 사면 증명서를 ‘면죄부’로, 이에 반발했던 사건을 ‘종교개혁’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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