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콜럼버스의 교환', 금과 은, 그리고 감자와 담배
[영화로 보는 경제] '콜럼버스의 교환', 금과 은, 그리고 감자와 담배
  • 김성화
  • 승인 2020.10.0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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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 콜럼버스? 동방무역 적자 해소 위한 금이 목표
신대륙에서 쏟아진 은, 인플레이션 발생 '가격혁명'
만성 재정난 스페인, 레판토 해전 '무적함대'도 무쓸모
1492 콜럼버스(1492 : The Conquest of Paradise, 1992)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제라르 드파르디외(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아만드 아산테(산체스), 시고니 위버(이사벨라 여왕), 로렌 딘(페르난도 콜럼버스), 알젤라 몰리나(베아트릭스 엔리케스), 페르난도 레이(안토니오 데 마르체나).
별점: ★★ - 애써 감추려 한 흑심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그야 말로 망망대해다. 수평선만을 바라보고 나아간 지 60일. 땅 끝 저편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싶은 두려움을 느낄 여력도 남아 있지 않았을 때, 온몸에 달라 붙는 날벌레들이 희망을 준다. 그리고 곧 수평선 위로 보이던 점은 선이 되고, 땅이 되고, 숲이 된다. 그토록 고대하던, 전설처럼만 전해지던 그 땅을 두 발로 딛는다. 모래알에 반사된 햇빛이 마치 황금빛과도 같다. 두 손에서 흘러내리는 모래알은 사금처럼 보인다. 이 땅을 디딘 항해자는 자신의 마음을 담아 ‘산살바도르’라는 이름을 붙였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경제뿐만이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현대에는 한 마디로 ‘콜럼버스의 교환’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콜럼버스의 교환은 신대륙 발견으로 아메리카와 유럽 대륙의 자원과 인구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이동한 걸 말하기도 하지만 간간히 불평등, 불공정 거래를 뜻하기도 합니다.

제가 어릴 적 읽은 위인전에서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명제를 입증하기 위해 모험에 나선 위대한 탐험가로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건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은 무엇보다도 ‘금’이라는 경제적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콜럼버스는 첫 번째 항해 후 손에 금을 들고 귀환합니다. 땅보다는 그 땅에서 채굴되는 금이 그들의 목적이었습니다.

유럽인들에게 금이 그렇게나 절실했던 이유는 아시아, 특히 중국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는 ‘은’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를 설명하며, 그 중심에 중국이 있습니다. 당시 세계 경제의 기축통화로 쓰이던 은(銀) 전체 유통량 중 2/3는 유럽에서 아시아로, 다시 그 절반은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중국으로 흡수된 은은 외부로 나오지 않고 중국 내에서 사용됐습니다. 중세시대 글로벌 무역은 서→동으로 일방적인 양상이었습니다.

지금은 웃고 있지만… 사진=imdb

신대륙 탐험은 아시아와 중국에서 발생한 만성적 무역적자를 만회하기 위한 금광과 은광을 찾기 위해서였으며, 또 동방무역로 차단에 따른 직접 교역 의지도 함께 자리 잡고 있습니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은 콘스탄티노플 점령 후 비이슬람 상인들에겐 수입과 수출 모두에 최고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이로 인해 후추 1g이 은 1g 가격과 같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콜럼버스가 도착한 카리브해 일대를 ‘서인도 제도’로, 이 지역 사람들을 ‘인디언’이라 부르는 이유도 콜럼버스의 목적이 후추 수출국인 인도가 최종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콜럼버스로 인해 바야흐로 ‘대항해시대’가 열리게 됐습니다. 콜럼버스에 이어 포르투갈의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태평양을 횡단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30년의 시간만이 필요했고, 이로써 유럽과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대서양, 유럽과 북 아프리카의 지중해, 아프리카와 인도-동남아시아의 인도양을 통해 전 세계가 하나로 이어졌습니다.

새로운 항로는 새로운 재원을 만들어 냈고 기존 유럽 내 경제권력을 무너뜨리기도 했습니다. 현재 볼리비아의 포토시, 멕시코의 사카테카스 등에서 은이 채굴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에서 생산된 은의 양은 1년에 약 3만㎏ 정도였지만 신대륙 발견 후 아메리카에서만 1년에 약 20만㎏이 유입됐습니다. 이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은이 유통되면서 당연히 인플레이션이 따라왔습니다. 신대륙 은이 유입된 후 100년 사이 은 가격은 1/3로 떨어졌고 이를 가격혁명이라 부릅니다.

야코프 푸거의 몰락은 신대륙 은 유입과 이로 인한 가격혁명 영향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유럽 대륙의 은 생산량을 책임지던 독일 남부 광산도 가격혁명 앞에서는 힘을 쓸 수 없었습니다. 당시 왕실과 교회에 돈을 빌려주며 권력을 얻고 광산 수입을 담보로 잡았던 야코프 푸거도 신대륙 은이 유입되면서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가격혁명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인의 몰락과도 이어집니다. 콜럼버스는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에도 자신의 탐험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왜 결국 스페인이었을까요? 우선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대서양 탐험에 나서기 좋은 지리적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스페인은 꼭 동방무역이 아니더라도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 재정난에는 북아프리카와 맞닿은 위치로, 가톨릭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짙은 종교색도 영향을 줬습니다. 새로운 땅에서 얻는 수입의 1/10과 무역거래 수입의 1/8을 달라는 콜럼버스의 요구를 받아들인 건 신대륙에서 나오는 금과 은으로 충분히 만회할 것이란 판단이었습니다.

스페인은 쉽게 들어온 돈을 쉽게 사용했습니다. 무적함대로 불리는 해군력을 키우고 이슬람권과의 전쟁을 지속하면서 교회를 비롯한 화려한 건축물에까지 돈을 들였습니다. 그렇게 부풀려진 부채는 신대륙의 금과 은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정도였고 스페인은 소비세를 인상해 보충하고자 했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지 100년이 지났을 무렵 스페인의 소비세는 그 사이 3배가 올랐습니다.

스페인은 신대륙의 금과 은을 산업에 투자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포토시 은광이 고갈되자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무적함대가 영국과의 전투에서 패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전함이 부서진 게 아니라 계속해서 운영할 돈이 없었다고 봐야 합니다. 결국 높은 소비세는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의 반발과 독립전쟁을 불러왔고, 네덜란드와 영국이 신흥 해상국가로 떠오르는 계기가 됩니다.

유럽에게 있어 신대륙 발견은 정말 신에게 감사해야 할 정도로 많은 이득을 가져다 줍니다. 사진=imdb

다시 콜럼버스의 신대륙에 초점을 맞추면, 어쩌면 금과 은보다 유럽에 더 큰 영향을 준 건 바로 ‘감자’입니다. 감자는 1570년께 스페인을 통해 유럽에 소개됐고 스페인의 병원 환자들에게 지급됨으로써 식량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유입 당시 유럽인들은 감자가 악마의 작물로 나병을 일으킨다며 꺼려했습니다. 하지만 감자가 유럽으로 들어 온지 200여년이 된 무렵 유럽에서, 특히 아일랜드에서 기근이 발생하면서 감자를 대규모로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자가 있었기에 1700년대 기근에 이어 산업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인구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옥수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옥수수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금방 스페인을 넘어 아시아까지 퍼져 나갑니다. 감자와 옥수수가 없었다면 유럽은 꽤 긴 기간동안 식량난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콜럼버스의 교환으로 유럽은 실제로 매우 큰 이득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럽은 무엇을 주었을까요? 제럴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로 이를 대신 말합니다. 총을 앞세운 정복, 그리고 총보다 무서웠던 전염병을 통한 학살과 이후 몇 백년 간 이어지는 점령 전쟁, 노예무역 등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인디언들의 복수가 ‘담배’라는 우습지 않은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대표되는 아메리카 대륙 학살이 고작 담배로 복수가 될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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