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삼성맨' 이건희 회장 별세, 그가 없었다면 삼성도 없었다
THE '삼성맨' 이건희 회장 별세, 그가 없었다면 삼성도 없었다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0.10.25 11: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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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25일 삼성전자는 이날 이건희 회장의 별세 소식을 알렸다.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입원한 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지 6년하고도 반년이 지났다.

1942년 1월 대구에서 태어난 이건희 회장은 연세대학교와 와세다대학교에서 상학부를 전공한 후 1966년 10월 동양방송 입사, 1968년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를 거쳐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에 오른다. 이어 소위 삼성가의 ‘왕자의 난’을 거쳐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에 까지 추임한다.

장남이 아닌 이건희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이미 보여줬던 경영 능력 덕분이었고, 이는 현재의 삼성전자 반도체 하나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삼성은 1974년 오일쇼크 속에서 한국반도체 인수를 결정한다. 이때 이병철 선대회장과 삼성 고위직 임원들이 모두 반대했지만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가 미래 먹거리가 될 것임을 확신해 사재를 털어서까지 인수를 진행했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삼성전자다.

반도체뿐만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의 경영은 국내 경제계에 화두를 던져주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1988년 제2의 창업 선언과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1987년 12월 삼성의 2대 회장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1988년 3월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제2창업을 선언한다. 새로운 50년을 준비하자는 내용이었으며 이를 위한 핵심으로 ‘자율경영, 기술중시, 인간존중’의 3가지를 내세웠다.

단순히 내세우는데 그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은 제2의 창업을 선언한 이후에도 줄곧 위기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나온 게 후쿠다 보고서다. 이건희 회장은 국내에서는 대기업으로 인식되지만 미국 시장에서 삼성전자 제품이 3류로 취급받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일본의 NEC 디자인센터와 교세라 디자인실 경영전략팀을 거쳐 1989년 삼성전자 정보통신 부문 디자인 고문으로 영입된 후쿠다 다미오 교수의 보고서에서 확인하게 된다. 이 보고서는 기술을 중시하지만 디자인에 대한 인식은 전무했던 삼성전자 내부 시선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특히 후쿠다 보고서는 이런 내용들은 1991년부터 세 차례 상부에 보고했지만 묵살됐다는 내용도 담고 있었다. 후쿠다 다미오 교수는 이 보고서를 통해 경쟁국인 한국에 도움을 줬다는 일본 내부의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후쿠다 보고서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 안에서 읽은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200여명의 삼성전자 고위층을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한다. 이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은 “나는 지금까지 속아 왔다”며 그간 삼성전자 사업방식에 대해 큰 불만을 표했다. 그런 불만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꿔라”는 말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후 1995년 경북 구미공장 무선 전화기 수 만 대를 불태운 화형식은 1996년 삼성전자가 ‘애니콜’ 국내 휴대폰 시장 점유율 51.5%로 1위를 차지한 결과로 이어졌고 지금의 갤럭시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때 이건희 회장은 “반드시 한 명당 한 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며 시장을 예견하기도 했다.

경영인으로서는 확실히 선견지명이 있었다. 2002년 6월 인재 전략 삼성 사장단 워크숍에서 "200~300년 전에는 10만~20만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 살렸지만, 21세기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건희 회장의 발언은 십 수년이 지난 오늘날 더 들어 맞는 내용이다.

때로는 국내 경영인들을 대변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1995년 베이징에서 내뱉은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인데 정치는 4류”라는 말은 군사정권은 종식됐지만 그렇다고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발언은 아니었다.

이건희 회장은 2008년 비자금과 세금포탈 사건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2010년 다시 복귀했다. 2015년 삼성에서는 상징과도 같은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직을 이재용 부회장에게 건네주며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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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 2020-10-28 12:02:28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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