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경제학 박사 허준석은 어쩌다 엔씨 데이터센터장이 됐을까
[인터뷰] 경제학 박사 허준석은 어쩌다 엔씨 데이터센터장이 됐을까
  • 신진섭 기자
  • 승인 2020.10.30 19: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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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 국책연구원으로, 데이터센터장까지
"포레스트 검프 같은 우연의 연속"
"맥도날드에서 게임문화연구회 세미나 했죠"
게임 상황 1분 만에 계산하는 '나우' 시스템 구축
"게임 데이터, 가지 않은 길 예측하고 현실과 결합할 것"
허준석 엔씨(NC)소프트 데이터센터장.
허준석 엔씨(NC)소프트 데이터센터장.

톱데일리 신진섭 기자 = 한 조직의 장(長)을 만나러 갈 때 의례 갖는 부담감이 있다. 업력이 내뿜는 아우라에 눌릴까, 혹여나 점잔을 빼서 분위기가 어색해지진 않을까 전날부터 잔뜩 긴장을 한다. 허준석 엔씨소프트 데이터센터장을 만나러 가는 길도 다르지 않았다. 엔씨소프트의 데이터를 총괄하는 사람이니 얼마나 날카롭고 분석적일까. 

방문을 열고 마주한 허준석 센터장에게선 기분 좋은 배신감이 느껴졌다. 와이셔츠 대신 엔씨 다이노스 야구점퍼를 걸친 사람이었다. 예전에 단체 응원 갔을 때 받은 점퍼라며, 부러워하는 직원들도 있다고 담백하게 재잘거리는 허 센터장은 두목 보다는 소년에 더 가까운 사람 같았다. 요즘 다이노스가 잘나가니 뽐내는게 아니냐는 농이 기자의 입에서 절로 나왔다.

허준석 센터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서울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강의를 하던 학자 출신이다. 어느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를 해도 모자람이 없는 사람일진데, 자꾸 게임에 발을 담갔다. 2000년대에 게임 인문사회 연구단체 ‘게임문화 연구회’를 출범시키고, 게임 관련 논문과 책도 여럿 냈다. 국책연구기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합류해 나랏밥을 먹는 듯 하더니 어느 샌가 엔씨소프트에 합류해 페타바이트(PB)를 주무르는 게임데이터 전문가가 됐다. 

무엇이 그를 이 자리로 이끌었을까. 호기심은 쉽게 풀렸다. ‘에버퀘스트’를 즐겼으며 ‘벽돌깨기’는 조크셔틀로 해야 제 맛이고 ‘울티마4’가 최고 애정 하는 게임이라고 한다. 그의 정체는 ‘겜돌이’였다. 수다를 떨다보니 두 시간 반이 후딱 지나갔다.

-행동경제학을 전공한 학자 출신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대, 홍대 출강하다가 정보통신정책 연구위원으로 가더니 엔씨에 합류했습니다. 그간의 궤적이 궁금합니다.

특별히 공부를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가방끈이 좀 길었어요. 경제학 전공하기 전부터 게임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라는 게임을 해 보니까 이전의 게임과는 달랐어요. 기존의 경제학에서도 게임을 분석하지만 산업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가상세계에서 현실 사회가 반복되고 재현되는 것에 관심이 생겨서 그 부분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결론부터 미리 얘기하면 잘 안됐죠(웃음). 논문을 만드려면 어느 정도 사람들의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땐 충분치 않았습니다. 게임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웠어요. 한 번은 게임 아이템 시장 관련해서 연구를 했는데 데이터 확보가 대단히 어렵더라고요. 아이템 중개 사이트에 요청해서 어찌어찌 얻어서 하긴 했는데 높은 품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게임으로 연구하는 걸 접었습니다.

그 다음엔 정보통신연구원 취직을 해서 통신 부분에서 1년 정도 일을 했는데 영 재미가 없었습니다. 인생이라는 게 ‘포레스트 검프’ 같은 우연의 연속이에요. 우연치 않게 여기 있는 분을 만나 엔씨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게임회사에 데이터센터라고 하면 낯선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데이터센터와 본인이 하는 일을 설명하자면?

바깥에서 데이터센터라고 하면 서버 같은 하드웨어가 잔뜩 놓인 곳을 떠올리는데 NC 데이터센터는 조금 달라요. 저희는 하드웨어 보다는 데이터를 다루는 데 집중하는 사내 조직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80명 정도의 데이터 엔지니어들과 분석관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조직은 크게 세 개에요. 데이터 플랫폼실은 저희 센터의 데이터를 관리하고 이걸 실제로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데이터로 만드는 엔지니어링 업무를 주로 맡습니다. 게임데이터 분석실은 말 그대로 게임데이터를 분석하는데, 데이터 플랫폼 실에서 가공한 데이터를 실제 게임 사업이나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다듬거나 문제 분석 리포트를 써요. 가장 중요한 건 분석한 내용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역할입니다.

데이터 플랫폼실이 무기를 만들고, 게임데이터 분석실이 프론트에서 싸우는 부서라면 I&I실은 병참기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데이터 분석 방법론이라든가 알고리듬을 가다듬죠. 제가 센터에 오면서 I&I이 사내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미션도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서 어떤 메뉴가 인기 있는지 등 기존에 관리되지 않았던 데이터도 분석합니다.

지난해 엔씨소프트 판교R&D센터에서 열린 데이터 컨퍼런스 'D-DAY'에 참가한 허준석 센터장.
지난해 엔씨소프트 판교R&D센터에서 열린 데이터 컨퍼런스 'D-DAY'에 참가한 허준석 센터장.

-어릴 적 직접 게임을 제작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게임제작자의 길로 들어서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만들었던 건 굉장히 허접한 게임이었어요. 어릴 적 금성(現LG)이나 삼성이 일본에서 ‘퍼스콘(퍼스날 컴퓨터의 일본식 발음)’이란 걸 들여왔는데요, 그때 부모님께 때를 써가지고 컴퓨터를 장만했습니다. 당시 또래들의 로망이 게임을 만드는 거였어요. 퍼스콘을 가지고 요즘 말로 코딩, 그때말로 프로그래밍을 했습니다.

그때 게임잡지 부록을 보면 게임코드가 그대로 프린트가 돼 있었는데, 그걸 밤새 쳐봤어요. 치다 보면은 당연히 오타가 나서 실행이 안되고, 그걸 또 바로 잡다보니까 자연스레 프로그래밍을 배우게 됐습니다. 친구들이랑 만들었던 게임은 평범한 횡스크롤, 그런 종류의 게임이었어요.

-그라디우스 같은 게임을 떠올리면 되나요.

그라디우스면 양반이죠. 그것보다 훨씬 떨어졌습니다. 제가 이과를 갔으면 게임개발자로서의 삶이 펼쳐졌을지 모르겠는데, 중학교 때 수학을 못해서 이과를 못갔습니다.

-수학을 못하는데 서울대에 갈 수 있나요.

하하. 외우는 걸로 어떻게 때웠습니다. 

-게임문화연구회 설립배경과 중단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박상우 선생님(現 네오위즈 사우스포게임즈 대표)한테 뵙자고 해서 만났습니다. 그 분이 쓴 ‘게임, 세계를 혁명하는 힘’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그때는 게임평론하는 분들이 거의 없던 시대인데 수준 높은 담론을 담고 있어서 놀라웠습니다. 개인적으로 몇 단계 걸쳐서 연락을 했습니다. 그러다 게임담론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서 ‘게임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부족하니까 해보자’ 한 번 모아보자고 해서 연구회가 시작됐어요. 초창기 멤버들이 지금 거의 게임업계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루리웹 통해서 알게 된 분들, 박상우 선생님이 연세대에서 강의할 때 수업들은 분들 등등이 모였습니다. 한참 많이 모였을 때가 15명 정도. 그때 박상우 선생님이 당산동에 살았고, 저도 근처였거든요. 당산역 맥도날드에서 일요일 아침8시에 모여서 세미나를 했어요. 지금이라면 네이버 카페를 만들었겠지만 그때는 홈페이지 시대였어요. 

없어진 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지속이 되려면 새로운 분들이 들어와야 하는데 충원이 잘 안되면서 ‘굳이 이걸 끌고 갈 필요가 없지 않겠나’ 해서 자연스럽게 해소가 됐어요. 저 다음에 이끌던 분이 부담이 크셨을 것 같습니다. 해산할 땐 저는 연구회활동 많이 안 하고 있을 때에요. 뒷방 영감들이 모여 있으면 좀 안 좋아서(웃음). 아쉬운 대목이긴 합니다.

게임문화연구회 발표 자료 중 일부.
게임문화연구회 발표 자료 중 일부.

-산업이나 유희로서의 게임 외에 다른 게임 담론이 좀처럼 확장되지 않는 듯합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게임에 관련된 연구가 침체된 건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인 듯합니다. 국내에서 서울대 융합기술원이 야심차게 추진한 게임전공 트랙이 있었습니다. 그 때 졸업한 친구들이 지금 게임업계에 많이 있습니다. 게임랩이 사라진지가 거의 10년 다 됐네요. 순천향대의 이정엽 교수님이 이 게임랩을 많이 돌봐주셨습니다. 게임으로 학위를 받으신 국내 몇 안 되는 분입니다.

국내에서 그래픽이나 아트, 공학 외에 인문사회계열에서 게임으로 학위하신 분이 몇 분 안 됩니다. 국내 다른 대학에도 게임 관련 연구 하는 곳이 있는데 아직 왕성하게 담론을 만드는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게임이 아직도 골방의 문화랄까. 시가총액만 봐도 문화 분야에서 게임은 제일 큰 산업인데 담론 형성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기자가 말하길 음악이나 영화는 평론하기 위해서 하루에 다섯 번을 보고 들을 수 있지만 게임은 콘솔급 한 번 플레이하는데 일주일이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안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담론들을 소비자가 정말로 원하나, 미스 매치가 발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모바일로 대중의 참여가 본격화되면서 그런 식의 담론들을 소비자들이 거부하는 인상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적 담론이 먼저 만들어졌던 게 영화인데 이쪽도 평론 소비가 많이 준 것 같아요.

담론을 구사하는 방식도 좀 바뀌는 것 같습니다. 최근 유튜브 게임채널을 많이 보는데 그 중 ‘펭귄몬스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게임 역사를 잘 정리하고 있더라구요. 담론이 없어 진다기 보다는 어쩌면 담론이 변형 확장되고 있는 과정은 아닌가. 최근 ‘중년게이머 김실장’도 그렇고. 이런 채널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찾지 않을까요.

 

-인간의 협력적 측면을 긍정하는 ‘초협력자’, ‘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 책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상반되는 내용으로 출간 당시 꽤 화제가 된 책들로 알고 있습니다. 직접 게임 데이터를 보고 계시니 궁금증이 듭니다. MMORPG 유저는 이타적 인간인가요, 아님 이기적 유전자를 갖고 있나요.

협력의 진화가 제 박사논문 주제였습니다. 각자 이기적으로 행동 하려고 하지만 그 결과물이 만나서 이타적인 결과를 만드는 과정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MMO라는 영역이 한쪽으로는 현실과 중첩되고 한쪽은 가상과 중첩되지 않습니까. 가상세계는 이타적인 모습이 현실보다 강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협력의 진화 메커니즘 중 그룹 셀렉선(집단 선택)이라는 게 있습니다. 어떤 그룹이 집단에서 모이게 되면 생존을 위해 집단 내의 이타성이 강해지는데, 동시에 집단 외부에 대한 적대감은 증가합니다. 게임 내 혈맹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혈맹 내에서 이타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죠. 하지만 혈맹 간에는 원수가 따로 없습니다. 협력의 진화 측면에서 보면 그룹 내에서 협력이 강화되기 위해선 그룹 간의 경쟁이 심화돼야 합니다. 내부에서 문제가 생기면 외부로 시선을 돌라. 밖에 적을 만들어라 이런 얘기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리니지는 PK(플레이어 간 전투)가 강력한 게임입니다. PK가 있어서 혈맹의 결속이 강해진 부분도 있습니다. 혈맹이 없으면 살아남기가 어렵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무법천지가 펼쳐지니 유저들이 똘똘 뭉치는 부족사회가 만들어진 거죠. 동네애들한테 맞고 오면 형한테 이르듯이 혈맹원들이 맞고 오면 혈맹이 나서잖아요.

캐쥬얼(가벼운) 한 이타성은 많이 발견됩니다. 미담도 많죠. ‘리니지’에서 특수한 형태의 혈액이 모자라다고 채팅을 쳤더니 사람들이 합심해서 도와줬던 것들. 아이템을 달라고 하면 흔쾌히 건네는 것도 이타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01년, 리니지 내에서 RH-O 혈액형을 구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5분만에 조우서버의 한 유저가 화답했다. 엔씨는 해당 유저에게 감사패와 '생명의 검'을 전달했다. 

-허 센터장님의 저서 ‘재미의 비즈니스’에서 뽑은 질문들입니다. 게임은 정말 해로운가요. 게임은 선에 복무할 수 있을까요. 게임은 현실과 융합하는지요.

-게임과 현실이 융합하는 걸 가장 선구적으로 보여준 게 한국 MMORPG라고 생각해요. 굳이 리니지 뿐 아니라 게임 내에 현실의 이슈들이 개입되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게임과 현실은 앞으로도 더 많이 섞일 것 같습니다. ‘포켓몬 고’도 한 예로 들 수 있고, 더 새로운 방식이 나올 수 있겠죠. 최근에는 모바일 게임 ‘로블록스’를 많이 해요. 진짜 잘 만들었더라고요. 이러다 게임을 소비하는 사람과 개발하는 사람의 경계가 없어지겠구나. 더 진화하면 나중에는 ‘세컨드 라이프’가 내걸었던 이상을 구현하는 게임이 나올 것 같습니다.

게임이 선에 복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고 말하야겠네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설명해볼까요. 첫 번째는, 게임이란 게 이제는 그다지 시리어스(진지)해지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옛날에는 게임이 아이들의 취미였기 때문에 어른들의 취미도 될 수 있다는 걸 부각해야 해서 진지함을 강조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게임을 남녀노소가 즐기는 상황이니 예전처럼 어필할 필요가 없죠. 게임도 엔터테인먼트 분야 중에 하나가 아닐까요. 영화나 음악, 책과는 다른 형태의. 게임에 진지함을 부여하지 않고 그냥 가볍게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선 여전히 선에 복무할 가능성이 큰 것 같기도 해요. 코딩 교육이 활성화되는데 로블록스 같은 게임이야말로 코딩 교육하기에 최적인 소프트웨어일 수 있습니다.

모바일 게임 '로블록스'.
모바일 게임 '로블록스'. 유저가 게임을 직접 제작하고 공유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일을 하면서 얻은 데이터 중 흥미로운 결론을 도출한 것이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저희 데이터센터에서 제일 중요한 일중 하나가 여러 가지 종류의 사기(Fraud)를 잡아내는 겁니다. 여기엔 봇(BOT)을 잡는 것도 포함됩니다. 재작년에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원래 저희 센터가 돈을 버는 센터가 아닌데 그때 돈을 좀 벌었습니다(웃음). 

게임을 홍보할 때 다운로드가 발생하면 비용을 지출하는 식으로 마케팅이 진행되는데요, 데이터센터에서 분석을 해보니까 동일 아이디에서 수차례 반복 다운로드가 발생하는 어뷰징을 발견해냈습니다. 액수로 따지면 상당했죠. 저희가 외부 업체에게 데이터를 보여주니 ‘오래 사업했지만 이렇게 수치를 가져오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감탄 하더라구요. 나중에 마케팅 비용에서 상계를 받았습니다.

TJ쿠폰도 데이터가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어떤 유저가 어떤 장비를 가지고 있었는지 기록하지 않으면 복구할 수도 없죠. 하루에 센터에 모이는 데이터양이 3~4 테라바이트,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를 합치면 7~8 페타바이트 정도 됩니다.

언제부턴가 리니지 최고 '잇템'이 된 'TJ쿠폰'.
언제부턴가 리니지 최고 '잇템'이 된 'TJ쿠폰'. TJ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별명이다. 

흔히 말하는 ‘썰’들을 데이터로 검증한 경우도 있어요. PK를 당했을 때 이 사람이 게임을 더 열심히 할까, 아니면 게임을 떠날까요. 게임 안에서 뿐 아니라 게임 밖에서도 적용하기 좋은 사례잖아요. 사람들이 불쾌한 경험을 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이게 분석이 쉬울 것 같지만 생각보다 어려워요. 변인통제 안돼서 PK 때문에 이탈했는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구별이 안되죠. 저희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이렇습니다. 게임 플레이어 중 PK시 선공하지 않은사람만 추려보자. 이 사람은 랜덤하게 PK를 당했을 확률이 높다. 일종의 무작위 추출(랜덤 샘플링)이죠. 결과를 보니 PK를 당한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오래 게임에서 생존했습니다. PK라는 게 오히려 게임을 하려고 하는 의지를 북돋아 줬다고 해석할 수 있죠.

기술적으론 약간 자랑할 것도 있어요. 보통 게임데이터가 지표가 돼서 사업‧개발 파트가 활용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걸려요. 로그데이터를 분류하고 테이블로 가공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실무진은 되도록 빨리 데이터를 받아보고 싶어합니다. 새로운 던전이나 업데이트가 얼마나 인기가 있나를 알고 싶으니까요. 저희가 ‘나우’라는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게임 내 데이터를 최대 1분 안에 확인할 수가 있어요. 던전의 혼잡도나 이용자 활성도 등을 상황판으로 바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흔히 데이터 분석을 할 때 파이썬, 주피터 같은 도구를 많이 쓰는데 엔씨는 데이터 처리용 자체 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걸 'DC(데이터 센터) 포털‘에 모아서 활용합니다. 빅데이터를 처리하려면 일반적으로 노트북 등 로컬 시스템에 다운로드 해야 하는데 저희는 클라우드에서 바로바로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평소 어떤 게임을 하시나요. ‘최애(최고로 좋아하는)’ 게임은 어떤걸까요.

모바일 게임은 엔씨게임과 아까 말한 로블록스를 많이 합니다. 콘솔에선 플레이스테이션4를 사놓고 ‘라스트오브어스’ 하나 하고 아무것도 못한거 같아요. 최근엔 스위치 ‘젤다:야생의 숨결’이랑 ‘위쳐’요. 업계에 종사하고 있으니까 잘나가는 게임들은 찾아서 해보는 편이에요. 스팀게임들도 좋아합니다. 근데 사놓고 많이 하지는 못해요. 원래 다들 스팀 그렇게 쓰잖아요.

인생 게임은 ‘울티마4’에요. 중학교 때 애플 컴퓨터로 했던 게임입니다. 저는 RPG를 울티마로 처음 알았고 울티마3를 재밌게 하던 와중에 4가 나왔어요. 3에서 4로 넘어가면서 볼륨이 엄청 커졌습니다. 아마 부제가 ‘퀘스트 포 더 아바타’였을 겁니다. 가치관이 능력치랑 연결되는 특이한 시스템이 있었어요. 자비로우면 약해지고 강해지면 악해지는 딜레마를 넣어놓은 게 흥미로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게임 메커니즘은 극악이었죠 세이브도 제대로 안되고. 그래도 태어나서 제일 재밌게 한 게임이에요. 그전에는 ‘인베이더’였죠. 태어나서 처음해 본 전자적인 형태의 게임이었습니다. 아, ‘벽돌깨기’가 있었구나. 혹시 조그셔틀로 벽돌깨기 해보셨어요? 그렇게 안 하면 제 맛이 안나요. 옛날 오락실은 흑백 화면이였는데 벽돌깨기 하려면 색깔을 구분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벽돌깨기 기계에 오락실에서 빨간색, 녹색, 파란색 셀로판지를 붙여놨었어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오락실 얘기라면 전기침으로 코인 꼼수 쓰는 것만 알았어요. 

저희 때는 테니스줄로 했습니다. 테니스줄이 원조일 거에요.

-게임데이터 전문가는 업계에서도 굉장히 희귀한 포지션인데요. 앞으로 어떻게 게임 데이터가 발전할까요. 

두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더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질 거에요. 머신러닝도 마찬가지만 결국 분석은 ‘이 다음에 어떻게 행동할까’를 알아보는 예측을 위한 것입니다. 4차 혁명 시대에 유행하는 ‘디지털 트윈’이라는 말이 있어요. 디지털 트윈은 가지 않은 길을 상상하는 방식입니다. A라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B라는 방향으로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현재 우리는 주로 그라운드 제로(최초의 상태)와 결과값 A만을 비교합니다. 그런데 데이터 분석이 아주 잘되면 가지 않은 길 ‘B’라는 상태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게 사회과학이나 통계학에서 성배처럼 받드는 반사실(카운터팩츄얼)이라는 겁니다. 이런 데이터 처리 능력을 갖는 회사들이 의사결정면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않을까요. 이전과 이후 상태를 비교하는 걸 넘어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구체적인 형태로 상상해서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도울 수 있게 됩니다.

또 하나는 게임데이터와 현실데이터가 결합하는 방향입니다. 법(데이터3법)이 바뀌었으니까  빠르면 내년에서 내후년에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두 데이터가 결합하면 고객에게 더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실버 게임 같은 거죠. 지금 게임하는 세대가 20년이 지나면 인지능력이나 신체능력이 떨어질 게 아니겠어요. 실버 게임으로서 리니지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런 분석, 예측을 하려면 플레이어들이 현실에서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야겠죠. 지금까지는 회사 간의 데이터결합이 막혀있어서 어려웠던 영역입니다.

공평무사한 아이템 분배를 위한 도덕심, 공격대를 적재적소에 조직하는 두뇌, 대소사를 제치고 제시간에 접속하는 성실도까지 갖춰야 공대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사진=유튜브 '승우아재' 채널
공평무사한 아이템 분배를 위한 도덕심, 공격대를 적재적소에 조직하는 두뇌, 대소사를 제치고 제시간에 접속하는 성실도까지 갖춰야 공대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사진=유튜브 '승우아빠' 채널.

반대로 게임데이터가 현실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서류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성적은 사람의 모든 자질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학교 다닐 때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책임감이나 성실성이 좋았던 사람도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이 게임에서 공대장이라거나 혈맹 군주, 성혈 군주라면 보통 사람이 아니잖아요. 게임을 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보통의 리더십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이죠. 예를 들어 공대장이라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이자를 우대해주면 어떨까요. 은행 입장에서도 더 많은 기준을 가지고 상환비율을 따질 수 있으니까 도움이 될 겁니다. 게임의 데이터가 현실세계에서 적용되는 일종의 ‘멀티버스’가 구축되는 거죠. 이런 식으로 게임 데이터가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Q. 데이터 산업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데이터를 다루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요. 코딩을 잘해야 할까요.

일단 코딩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코딩만 잘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저희 실장님이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게임을 잘하는 사람에게 코딩을 가르칠 순 있지만, 코딩을 잘하는 사람에게 게임을 가르칠 수는 없다’. 아직까지는 특정 분야의 지식이 중요해요. 좋아하는 영역과 코딩을 접목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코딩 도구가 좋아졌기 때문에 옛날같이 허들이 높지 않습니다.

밖에서 코딩을 배울 때는 지저분한 데이터를 받지 않아요. 잘 정리된 데이터를 가지고 알고리듬을 돌리는 식이면 얼마나 좋겠어요. 회사에 들어오면 그런 데이터는 없습니다. 업무의 90%는 데이터를 만드는 거에요. 

미국에서 데이터 분석하는 분들이 ‘데이터 과학자가 뭐야’라고 질문을 받으면 ‘제니터 잡(허드렛일)’이라고 말해요. 탐정물 드라마에서 나오는, 데이터가 ‘뿅’ 나와서 문제가 단숨에 해결되는 일은 없어요. 90%는 허드렛일입니다. ‘노가다(반복 작업)’가 심하죠. 10개의 데이터를 분석하면 그 중 8개는 의미 없는 결론이 나오곤 합니다. 그러다 괜찮은 데이터 셋을 만들면 마치 레벨업을 했을 때처럼 기쁜 거죠. 지루한 일들을 견딜 수 있는 사람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요. 끈기 있고, 잘 안 되더라도 호기심을 갖고 유지하는 성품이 이 분야에선 유리합니다. 
 

허준석 엔씨소프트 데이터센터장.
허준석 엔씨소프트 데이터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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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llc 2020-11-16 09:19:42
정말 멋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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