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절대왕정을 말하다③ 돈이 매너를 만든다(Money maketh Manners)
[영화로 보는 경제] 절대왕정을 말하다③ 돈이 매너를 만든다(Money maketh Manners)
  • 김성화
  • 승인 2020.12.3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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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 건축기 '블루밍 러브'
17~18세기 동경의 대상, 궁전부터 테이블 매너까지 모방
누구나 지켜야 할 '매너', 시작은 경제력을 통한 계급 구분 짓기
블루밍 러브(A Little Chaos, 2014)
감독: 알란 릭맨
출연: 케이트 윈슬렛(사빈 드 바라), 마티아스 쇼에나에즈(앙드레 르 노트르), 알란 릭맨(루이 14세)
별점: ★★★ - 재료에 비해 소소하지만 보는 맛이 있다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나무를 베고, 땅을 파고, 물이 없는 곳에 물길을 내고, 진귀한 꽃과 나무를 심는다. 당연히 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이 큰 일을 해내고 있다. 바로크 건축의 걸작, 베르사유 궁전은 그렇게 오직 한 사람, 태양왕 루이 14세를 위해서 지어졌다. 베르사유 궁전을 통해 ‘천국을 만들라’고 했던 루이 14세는 유럽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였다.

루이 14세를 생각하면 함께 떠오르는 것이 베르사유 궁전입니다. 지금 봐도 그 규모도 규모이지만 아름답게 지어진 건축과 정원, 내부는 루이 14세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합니다. 영화 ‘블루밍 러브’는 루이 14세가 그 베르사유 궁전을 만들던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베르사유 궁전 전경. 사진=베르사유 궁전 홈페이지
베르사유 궁전 전경. 사진=베르사유 궁전 홈페이지

베르사유 궁전은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일종의 유행을 불러옵니다. 영국의 윈저, 독일의 헤렌킴제, 스페인의 라그란하 데 산일데폰소 등 수많은 궁전들이 베르사유를 모방했습니다.

루이 14세를 따라 하고픈 열망은 궁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된 ‘매너’에서도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방에 대한 열망은 상류층을 따라 하고 싶은, 상류층에게는 하류층과 자신들을 구분 지으려는 ‘문명화 과정’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안에는 당시에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할 수 없는 경제력이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볼까요? 테이블 매너의 대표적인 사례가 테이블 바깥쪽에 위치한 포크와 나이프부터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서양 테이블 매너에는 코스 메뉴를 먹을 땐 여러 개의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합니다. 정말 음식에 따라 적절한 포크와 나이프가 따로 있었길래 그런 걸까요?

서양에서도 처음부터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을 보면 15세기까지는 식기 수가 적었습니다. 부유한 집에서도 특정한 순서 없이 음식을 날라왔고 각자 먹고 싶은 것을 가져다 먹으며 공동의 그릇을 사용했습니다. 고기와 같은 단단한 음식은 손을 사용해 집었고 스프와 같은 음식은 국자나 숟가락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보통 접시나 대접에 입을 대고 마셨습니다. 또 여러 명이 공동의 나이프와 스푼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포크는 16세기만 해도 쉽게 구하기 힘든 도구였습니다. 포크가 있기만 해도 어느 정도 재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금이나 은, 상아로 만들었다면 꽤나 부자였을 겁니다. 샤를 5세 귀중품에는 12벌의 포크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을 하고 생산력이 오르면서 누구나 집에 포크 하나쯤은 보유하게 됐을 겁니다. 그렇다면 귀족들은? 공동이 아닌 각자 하나씩 사용할 수 있겠죠. 만약 하류층도 각자 하나씩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귀족들은 은으로 만든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합니다. 이마저도 하나씩 가질 수 있다면요? 귀족들은 한 번의 식사를 할 때 하나의 은 포크와 나이프가 아닌 스프용 스푼, 생선용 나이프, 고기용 나이프를 각각 사용하게 됩니다.

중세 가발도 궁정 문화 유행으로 번져 나갑니다. 사진=다음영화

포크와 나이프뿐만이 아닙니다. “디저트와 과일을 위한 식기들”이 따로 있기도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말 새로운 것이 아닌, 동일한 주제의 변형일 뿐이며 동일한 수준 내에서의 세분화”였습니다.

테이블 매너는 무슨 동기로 발전을 해왔을까요?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16세기의 예법서들은 다양한 사회계층으로부터 새로이 구성된 궁정귀족들의 구체적 표현”이라며 “신흥귀족들의 형성과 함께 스스로를 다른 계층과 구분하려는 이들 귀족들의 행동규율”이 생겨났다고 말합니다. 즉 지금은 누구나 지켜야 하는 매너이지만 당시에는 서로를 구분하기 위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시 예법서는 모든 사람들 대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17세기 후반 한 예법서는 “확고하게 자리 잡은 루이 14세의 궁정사회 관점에서, 궁정에 거주하지 않지만 궁정풍속과 관습을 익히려는 높은 신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런 사례는 또 있습니다.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손수건을 떨어 뜨리거나 마음에 드는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16세기만 해도 손이나 옷 소매가 아닌 손수건에 코를 푸는 건 매너가 아닌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루이 14세에 앞선 앙리 4세도 5장 정도의 손수건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루이 14세는 “아주 다양하게 많은 손수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 권력과 재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손수건, 포크, 접시나 그와 유사한 물건들은 처음에는 사치품이었고 특정한 사회적 위신의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며 그런 매너의 확산은 상류층인 귀족이 절대주의 궁정 안에서 봉사하는 계층, 사회적으로 종속된 계층이 되어 갔다는 점과 맞물려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식사 매너뿐만이 아닙니다. 상스러운 말의 사용, 대소변을 보는 생리적 욕구, 침을 뱉는 행동, 침실에서의 매너, 이성관계의 변화 등. 우리가 여전히 일상의 매너로서 생각하는 행위들에는 루이 14세로 대표되는 당대 궁정 생활을 닮고 싶어 하는, 그 사회 속에 포함되고 싶어 하는, 그런 그들 위에 군림하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돈이 많아 보인다. 사진=베르사유 궁전 홈페이지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세 기사와 궁정 귀족 부인의 사랑을 그린 로맨스가 유행이 된 이유도 궁정생활에 대한 동경, 궁정생활로 편입되고 종속된 기사들의 현실이 반영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그림이 그려지고 시와 소설이 쓰여집니다. 

궁정생활을 동경하며 모방하려는 욕구는 현대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명품’입니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의 ‘명품에 대한 사회학적 해석’을 보면 “명품은 상류층이 비상류층과의 구분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비상류층 역시 상류층을 모방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특히 요즘과 같은 대규모 사회에서는 ‘사회성원들이 대부분 서로 간에 익명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의 지위와 부를 나타내주는 것은 재화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현대에는 부를 소유하고 있고 사회적 명예도 바란다면 반드시 그 부를 밖으로 내보여야‘하는 상황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그들보다 나은, 상류층으로 보이고 싶다면 그들이 따라할 수 없는, 돈을 이용한 방법이 가장 확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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