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튤립 광풍' "누구나 그럴듯한 기대감은 있다, 거품이 꺼지기 전에는"
[영화로 보는 경제] '튤립 광풍' "누구나 그럴듯한 기대감은 있다, 거품이 꺼지기 전에는"
  • 이진휘 기자
  • 승인 2021.01.08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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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국 네덜란드 넘쳐나는 부, 주식회사의 등장으로
투자처 찾아 흘러다닌 유동성, 눈 돌린 곳은 '튤립'
'일확천금' 기대감 '일년천하'…"광기와 붕괴 역사의 시작"
튤립 피버(Tulip Fever, 2017)감독: 저스틴 채드윅출연: 알리시아 비칸데르(소피아), 데인 드한(얀), 크리스토프 왈츠(코르넬리스)별점: ★★★ - 튤립보다 미모가 빛났던 알리시아 비칸데르 -
튤립 피버(Tulip Fever, 2017)
감독: 저스틴 채드윅
출연: 알리시아 비칸데르(소피아), 데인 드한(얀), 크리스토프 왈츠(코르넬리스)
별점: ★★★ - 튤립보다 미모가 빛났던 알리시아 비칸데르 -

이 세상을 다 삼키고

이 세상 끝에

새로 핀

 꽃 한송이

-김용택 시인의 ‘꽃 한송이‘ 일부 발췌

톱데일리 이진휘 기자 = 비트코인 이전에도 투기의 역사는 되풀이해 왔습니다. 일본 부동산, 미국 닷컴 등 세계 경제를 뒤흔든 버블은 17세기 꽃 한송이에도 끼어 들었습니다. 인간의 탐욕을 품은 꽃 한송이가 세상을 집어삼킨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요.

영화 ‘튤립 피버‘ 속 가난한 화가 얀(데인 드한)은 암스테르담의 거상 코르넬리스(크리스토프 왈츠) 아내인 소피아(알리시아 비칸데르)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녀와의 은밀한 도피를 계획하던 그가 미래를 위해 손을 댄건 튤립이었습니다.

얀은 코르넬리스의 부탁으로 그림을 그리려 왔다가 소피아와 사랑에 빠진다. 사진=다음영화

영화의 배경인 17세기 중반 네덜란드는 튤립 투기가 한창이었습니다. 1634년 네덜란드 튤립 애호가들의 구근 매매로부터 성행한 튤립 매매가 전대미문의 버블로 발전한 것입니다.

튤립 거래에 자본이 집중되자 과잉유동성으로 가격이 치솟았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후 조선업과 해운업을 바탕으로 해상 경제를 지배합니다. 인접 국가에 판매하기 시작한 절인 청어 장사가 잘 되자 청어잡이 어선 제조를 위해 자연스럽게 조선업이 발전했습니다. 네덜란드는 당시 영국보다 4~5배 많은 배를 보유했고 상선도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을 합친 규모 이상을 자랑했습니다.

이에 맞춰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도 네덜란드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포르투갈이 독점하던 아시아 무역에 끼어들기 위해 생겨납니다. 하지만 규모 면에서 다른 국가들과 경쟁하기 힘들자 사람들로부터 자본을 모은 게 주식회사의 시작입니다. 투자금을 한군데로 모아두고, 대신 투자자들에게 그에 대한 권리를 종이증서로 나눠준 건 지금의 주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대항해시대 속에서 수익을 만들 곳이 많지만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동성이 찾은 출구였습니다. 네덜란드는 200여선의 무역선을 운영했고 이런 성장세에 전 유럽의 부가 네덜란드로 모이기 시작하며 최초의 다국적 기업이 됩니다. 17세기 중반 암스테르담에 유럽 자본의 절반이 집중될 정도였습니다.

넘쳐나는 부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들었던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꽃 한송이가 그렇게 많은 가치를 지녔을 겁니다. 영국 경제 분석가 에드워드 챈슬러는 그의 저서 ‘금융투기의 역사‘에서 “늘어난 부에 취한 네덜란드 사람들의 머리에선 검약 정신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들은 소비지향적인 국민이 되었다. 풍요와 오만에 젖은 네덜란드인들은 과시욕을 드러냈고, 더 큰 부를 안겨줄 대상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 대상이 바로 튤립이었다“고 말합니다.

튤립 구입 경매에서 계약을 따내고 기뻐하는 얀(데인 드한). 사진=다음영화
튤립 구입 경매에서 계약을 따내고 기뻐하는 얀. 사진=다음영화

튤립 버블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꽃 한송이 가치는 이윽고 사람 목숨보다도 귀해졌습니다. 한 네덜란드 선원은 튤립 알뿌리를 양파로 착각해 먹어치운 죄로 몇 달간 감옥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이 당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 ‘검은 튤립‘에서 “진정한 튤립 재배자에게 한 뿌리의 튤립을 죽이는 것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범죄였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오히려 괜찮을 듯 싶었다“라고 말합니다. 영화 속 소피아의 하녀와 연인 관계였던 빌렘(잭 오코넬)도 튤립 투기에 빠져들었다가 난투극에 휘말려 아무도 모르게 선원살이를 합니다. ‘영원한 사랑‘이란 튤립의 꽃말이 무색한 시대였습니다.

튤립 거품이 낀 건 넘쳐나는 유동성과 그 속에 도박적인 요소도 가미된 측면이 있습니다. 지금으로 본다면 일종의 선물거래 입니다.

튤립 중에서도 줄무늬가 있는 돌연변이 종이 인기를 끌었고 그중 영원한 황제라는 뜻의 ‘셈페르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 품종이 가장 비싸게 팔렸습니다.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한 구근 값은 1633년에 500길더였는데 1637년에는 1만길더에 거래됐습니다. 1만길더는 당시 목수나 재단사의 20년치 연봉과 맞먹는 금액입니다. 꽃 한 송이가 대저택 한 채 값보다 비쌌던 것입니다. 이런 돌연변이는 후에 바이러스에 감연된 결과라는 게 알려집니다. 알 수 없는 확률에 돈을 걸었던 셈입니다.

튤립 가격이 치솟고 가격 변동 폭이 커지자 시장에 옵션 거래가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튤립이 피기도 전에 겨울에 미리 인도 계약을 하고 어음결제로 거래가 이루어 졌습니다. 중개인들은 특정 가격에 튤립을 살 수 있는 계약인 콜옵션으로 매입하고, 반대로 튤립 재배자들은 특정 가격에 팔 수 있는 풋옵션으로 거래를 행함으로써 가격 변동성에 대비했습니다.

1636~1637년 네덜란드의 튤립가격 변동. 단위: 길더. 그래프=위키피디아
1636~1637년 네덜란드의 튤립가격 변동. 단위: 길더. 그래프=위키피디아

선물계약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거래하는 계약입니다. 그건 기대감이 사라지면 거품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1636년에 정점을 찍으며 천정부지로 치솟던 튤립 가격은 이듬해인 1637년 2월 느닷없이 급락하고 맙니다.

밴드왜건 효과란 말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군중심리라는 말과도 통합니다. 자신의 주관이 아닌 유행이나 대중의 성향을 따라간다는 말입니다. 튤립 거품이 꺼진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튤립을 파는 사람만 있고 사는 사람이 없자,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심이 번지며 튤립이 시장에 마구잡이로 등장하고 구근 가격이 폭락합니다.

튤립은 한 송이 단위로만 거래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구근을 그램으로 나눠 한 뿌리에 여러 사람이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태로 인해 거품이 꺼지면서 수많은 서민들까지 파산하고 폭락한 구근을 양도하는 문제로 곳곳에서 분쟁이 발생합니다. 때마침 정부가 튤립 거래를 법률로 규제하며 나서자 버블 붕괴는 더욱 촉진됐습니다. 얀과 소피아의 사랑도 버블 붕괴로 생긴 빚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끝이 나고 맙니다.

헨드릭 게리츠 포트가 1640년경에 그린 튤립 열풍에 대한 우화. 꽃의 신인 플로라는 두 얼굴의 여성과 환전상, 술꾼과 함께 차를 타고 있다. 그들의 뒤를 타락한 직조공들이 따른다.
헨드릭 게리츠 포트가 1640년경에 그린 튤립 열풍에 대한 우화. 꽃의 신인 플로라는 두 얼굴의 여성과 환전상, 술꾼과 함께 차를 타고 있다. 그들의 뒤를 타락한 직조공들이 따른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미국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이같은 ‘한탕주의‘ 현상을 가리켜 광기라고 정의합니다. 그는 저서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에서 “광기, 특히 거시적 차원의 광기는 경제적 풍요감과 함께 나타난다. 더 많은 기업들이 희망이 휩싸여 기대에 부풀고, 신용이 넘쳐나므로 투자 지출은 급증한다“며 “돈은 광기 국면에서는 언제나 공짜처럼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광기는 항상 패닉으로 발전하고 패닉은 스스로를 먹고 자라나다 이유없이 엄습하는 공포처럼 붕괴하고 맙니다.

튤립은 그후 어떻게 됐을까요? 한때 세계 최고가를 호령했던 튤립은 현재 제값을 받기도 어려운 처지입니다. 코로나19 이후 꽃 소비가 급감하며 네덜란드 화훼농가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결국 튤립 가격이 0원으로 추락하고 지난해 3월엔 4억송이의 튤립이 폐기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튤립 버블은 2018년 초 전 세계를 휩쓴 비트코인 열풍과도 유사합니다. 2009년에 등장해 몇 달러에 불과하던 비트코인 가격은 2017년에 1000달러를 넘기고 2018년에 접어들자 무려 2만달러로 치솟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비트코인 투자에 뛰어들었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은 끝없이 오르는 듯 했지만 그것도 잠시, 불과 몇 달 만에 가격은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지더니 거품이 꺼지고 주저앉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누구나 그럴듯한 기대감은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거품이 꺼지고 나면 그 기대감을 자기 탓으로 하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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