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가 한몫 챙긴 방법
[영화로 보는 경제]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가 한몫 챙긴 방법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1.01.2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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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여왕의 최측근 사라 처칠, 남해회사 거품으로 2000억원 수익
국가 부채 떠넘기기 위한 회사, 실체 없는 사업성 주가 조작
모든 걸 알고 있었던 정부 관료들부터 수익 챙겨…명실공히 '작전주'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The Favourite, 2018)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올리비아 콜맨(앤 여왕), 엠마 스톤(애비게일 매셤), 레이첼 와이즈(사라 처칠), 니콜라스 홀트(로버트 할리), 조 알윈(매셤)
별점: ★★★☆ - 조명, 구도, 연기력의 삼위일체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여성의 몸으로 권력을 쥐고 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왕이 여자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특히나 그 여왕이 여자로서 나를 신뢰, 아닌 사랑하고 있다면 더더욱, 차라리 여성인 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장점이다. 여왕의 곁에서, 여왕의 여자로서, 나는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다.

옆 나라의, 한 세대 앞선 프랑스의 루이 14세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페리버릿 - 여왕의 여자’에 등장하는 영국의 앤 여왕은 꽤나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의회 정치가 발달한 영국에서 토리당과 위그당을 번갈아 가며 중용해 자신에게 충성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앤 여왕의 최측근인 말버러 공작부인 사라 처칠은 다른 신하들과 달랐습니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사라 처칠은 그런 지위를 이용해 한몫 크게 버는데 성공하고, 우리는 그 사건을 영국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 버블’이라 부릅니다.

영화를 보면 당시 영국 재정이 상당한 긴축 재정을 벌여야 했던 상황으로 보입니다. 영화에서도 세금을 더 걷어들이기 위한 토지세 인상을 두고 첨예한 대립 관계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에 유럽 열강들이 전쟁에 휘말렸던 시기입니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은 펠리페 5세가 스페인의 왕으로 즉위하면서 이를 지지하는 프랑스와 반대하는 신성로마제국·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이 벌인 전쟁입니다.

남해회사 버블 사건을 세계 최초의 작전주 사건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설립부터 거품이 꺼지기까지, 당시 영국 정부의 의도가 개입돼 보이기 때문입니다.

작전주라 여겨지는 첫 번째 이유는 영국 정부와 남해회사가 거래 조건이 수상하기 때문입니다. 남해회사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막바지로 향하던 1711년에 설립됩니다. 당시 보수당인 토리당의 대표이자 전직 재무장관이었던 로버트 할리는 영국과 남미 사이에 이루어지던 무역을 담당하기 위해서라며 남해회사를 설립했지만, 실상은 전쟁으로 인해 급증한 정부 부채를 떠넘기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영국 정부는 국채와 1000만 파운드, 노예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남해회사에 넘기고 대신 주식을 받습니다. 일개 회사에 나라의 부채를 떠 넘기다니요.

더군다나 국채와 주식을 교환한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영국 정부는 남해회사가 매입한 국채를 자사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했고, 남해회사는 국채를 매입하면서 수상과 장관에서 스톡옵션이 걸린 주식 구입권을 지불합니다. 또 남해회사는 신주를 발행할 때 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권리까지 가져갑니다. 이때 남해회사는 3100만파운드의 국채를 추가로 매입하고 750만파운드를 상납하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남해회사가 설립되기 직전 1690년대 영국 정부가 거두어 들인 재산세와 소득세가 200만파운드가 되지 않으니, 한 회사가 감당할 수 없던 규모임은 분명합니다.

앤 여왕은 늘어난 부채를 감당하기 위해 토지세를 올리려 하지만 의회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진=다음영화
앤 여왕은 늘어난 부채를 감당하기 위해 토지세를 올리려 하지만 의회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진=다음영화

두 번째는 남해회사의 사업성입니다. 남해회사는 1714년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끝났음에도 수익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남해회사는 이를 만회하고자 1718년 복권 형식의 채권을 발행했는데 이게 대박이 납니다. 이와 함께 남해회사는 추가로 국채를 매입하며 일반인들에게 주식을 공개할 권리까지 얻어냈고, 수요자가 늘어나면서 주가도 오르게 됩니다. 영국 사회에는 남해회사가 노예무역으로 꽤나 큰 배당금을 준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이 시점에 남해회사는 금융회사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되지만 애초 남해회사가 정부로부터 받은 노예무역 독점권은 1718년 당시 남미 지역을 장악하던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노예를 구할 수 없어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남해회사가 사업수익을 올릴 구석이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정부가 이를 모를리 없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남해회사 주가는 상승했습니다. 1720년 1월 100파운드였던 주가가 5월에는 700파운드, 6월에는 1000파운드가 넘어 갔습니다. 남해회사의 주가 상승에 감명 받은 듯 영국에서는 허가 받지 않은 회사들의 주식까지 거래가 성행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영국 정부는 신생 기업은 상장 전 의회의 비준을 받도록 한 ‘거품 방지법’을 제정하고 단속에 나서지만, 그 배경에는 많은 회사들의 주식이 거래되면서 남해회사 주가가 떨어진 점도 있습니다. 남해회사는 해당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의원들에게 로비를 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남해회사는 근거 없는 소문들이 퍼져 나가도록 했습니다. 특히 남해회사가 스페인으로부터 남미 항구 기착권을 얻어 냈다거나, 당시 스페인의 돈줄이었던 포토시 은광 운영권을 따냈다는 소문은 당시 정세를 감안하면 믿기 어려운 사실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광기에 휩싸인 분위기는 이를 냉정하게 바라볼 이성을 주지 않았습니다. 왕립 조폐국에서 금본위제 확립에 기여할 정도로 경제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아이작 뉴턴도 남해회사 주식에 뛰어들어 2만파운드를 손해 봤다고 전해집니다.

영화 속 애비게일은 과연 남해회사를 통해 한몫 벌었을까요? 사진=다음영화

세 번째는 이 와중에 돈을 번 사람들입니다. 특히 당시 정부 관료들이 선제적으로 남해회사 주식을 매도하면서 수익을 올렸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사라 처칠은 남해회사 주식으로 10만파운드, 현재 가치로 2000억원이 넘는 수익을 벌었다고 합니다. 분명 그녀는 남해회사의 실체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겁니다. 또 남해회사 사건으로 구속된 재무장관은 90만 파운드(!)라는 수익을 얻었습니다. 당초 이 회사는 정부의 빚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는 점도 다시 한번 상기합시다.

남해회사가 수행하는 사업이 사실은 전혀 실체가 없고 재무 상황도 엉망이라는 소식은 뒤늦게 일반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주가는 폭락했습니다. 1720년 6월 1000파운드가 넘던 주가는 9월 150파운드까지 떨어집니다. 주가가 폭락하자 남해회사 직원은 왕실 인사들이 여기에 관여됐다는 증거인 장부를 들고 도망을 가버립니다. 이 직원은 벨기에에서 붙잡혔지만 영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또는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중요한 증거는 사라졌지만 이 일을 그냥 덮고 지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위원회를 설치해 남해회사를 조사했고, 그 결과 나온 보고서가 세계 최초의 회계 감사보고서가 됩니다. 또 주식회사들이 제3자에게 회계 장부를 검토 받도록 한데서 공인회계사 제도가 생겨납니다. 하지만 그리 투명하게 조사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남해회사의 실체를 알고 있었을 겁니다. 사진=다음영화
이들 중 상당수는 남해회사의 실체를 알고 있었을 겁니다. 사진=다음영화

실체가 없는 소문을 믿고 투자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남해회사 거품 사건이 여실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광기라는 건 빠르고, 지역을 가리지 않고 퍼져나가고 이런 흐름에서 나만 홀로 냉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당시의 광기는 비슷한 일이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도 발생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네덜란드의 튤립 거품과 남해회사 거품, 그리고 미시시피 주식회사 거품 사건이 발생한 이 시기는 가히 18세기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대라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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