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프랑스 혁명은 시민 혁명이 아니었다
[영화로 보는 경제] 프랑스 혁명은 시민 혁명이 아니었다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1.02.25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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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네이션' 속 '빵을 달라'는 시민, 혁명의 주체이지만 수혜자는 아니었다
프랑스 재정난이 불러온 프랑스 대혁명, 토마 피게티 "혁명은 실패했다"
삼부회 시민계급, 산업혁명 흐름 속 은행가와 자본가 '기득권의 대체'
원 네이션(One Nation, One King, Un peuple et son roi, 2018)감독: 피에르 쉘러출연: 가스파르 울리엘(바질), 아델 아에넬(프랑수아즈), 올리비에 구르메(롱클르), 루이 가렐(로베스피에르), 로랑 라피트(루이 16세) 드니 라방(마라)별점: ★★★☆ - 강렬한 메시지가 영상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
원 네이션(One Nation, One King, Un peuple et son roi, 2018)
감독: 피에르 쉘러
출연: 가스파르 울리엘(바질), 아델 아에넬(프랑수아즈), 올리비에 구르메(롱클르), 루이 가렐(로베스피에르), 로랑 라피트(루이 16세) 드니 라방(마라)
별점: ★★★ - 강렬한 메시지만 기억에 남는다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바스티유의 성벽이 무너져 내린다. 비어져 가는 공간마다 빛이 들어오고 우리를 한계 짓던 세계가 확장된다. 단지 눈으로 보이는 세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바스티유는 우리를 가두고 있던 세계의 상징과도 같았고, 더 이상 우리는 억눌러져 있지만은 않을 것이란 상징이 지금 행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3분의 1이라는 숫자에 가둬져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도 한 명의 사람이며, 저 귀족도 한 명의 사람일 뿐이며, 심지어 왕 또한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이다.

영화 ‘원 네이션’은 바스티유 감옥 벽을 무너뜨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은 프랑스 혁명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지만, 사실 실제로 그럴만한 장소였냐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습격 사건 당시 죄수는 7명으로 사기범과 정신질환자, 근친상간범이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파리에 성처럼 솟아 있는 바스티유 감옥이 시민들 눈에는 썩 좋아보이진 않았을 겁니다.

원 네이션에서 많은 장면은 루이 16세가 소집한 프랑스 삼부회 장면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민들이 목소리를 높여 자신들의 요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장 큰 요구는 ‘빵’을 달라는 것이지요. 프랑스 혁명의 시작은 먹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빵 대신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냐”는 실제로 한 말이 아닙니다.

프랑스 시민들은 왜 빵 조차도 구하지 못했을까요? 당시 프랑스 재정이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왕실 수입의 50%가 빚을 갚기 위해 나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바다 건너 미국 독립전쟁에 개입하는 선택을 합니다.

의회를 점거한 이들은 엄연히 불청객입니다. 사진=다음영화

프랑스 재정악화는 당시 세금 체계와 불평등한 부의 분배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화에도 나오듯 루이 16세는 세금 징수에 동의를 얻기 위해 귀족과 사제, 평민 대표들이 모인 신분제 의회인 삼부회를 무려 175년 만에 소집합니다.

이중 귀족과 사제는 많은 세금 항목에 대해 면세 대상이었습니다. 또 토마 피게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1780년 무렵 귀족과 사제는 총인구의 1.5% 정도였지만 왕국 토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피게티에 따르면 1660년대 이후 프랑스 귀족과 사제의 수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프랑스 군주정은 귀족 인원을 제한하고자 다각도로 시도”했고 “귀족 숫자를 줄이면 그만큼 면세도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제들 또한 장자 상속 원칙이 굳어지면서 “귀족이 자신들 후손의 규모를 한정하고 유산을 집중시킨다는 사실”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식으로 여겨짐”에 따라 수가 줄어들고, 사제 내에서도 귀족 출신 비율이 감소합니다.

절대왕정 '태양왕' 루이 14세로부터 혁명으로 왕의 목이 잘리기까지는 불과 100년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사진=다음영화
절대왕정 '태양왕' 루이 14세로부터 혁명으로 왕의 목이 잘리기까지는 불과 100년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사진=다음영화

국가에 존재하는 많은 자산 중 대부분을 가지고 있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 귀족은 문제였을 겁니다. 하지만 귀족에게 세금을 지운다는 건 왕실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군주는…(중략)…위험부담을 감수 할 수 없었나 혹은 감수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 문제는 대혁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대로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평등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피게티는 “프랑스혁명의 실패는 명백하다”며 “사실상 자산 보유의 집중이 1789년과 1914년 사이 극도로 높은 수준으로 유지됐고 이러한 집중은 궁극적으로 혁명기 사건들에 거의 영향 받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피게티에 따르면 프랑스 상위 1%의 사적소유 집중도는 1780년 50%를 넘었으며 1800~1810년 45%까지 내려갔지만 이후 1900~1910년 55%까지 근접합니다. 1914년 직전에는 65%를 넘어섰고, 이 사이 하위 50% 점유율은 5%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을 한결 같이 유지합니다.

소유 집중도가 높았던 사회이기에 시민들은 먹을 것이 부족했던 게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숨겨진 사실이 있습니다. 엘리아스 노르베르트는 ‘문명화 과정’에서 “1789년 혁명은 단순히 귀족에 대한 시민계급의 투쟁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제3계급의 특권관료인 법복귀족과 길드의 수공업자들도 귀족계급과 마찬가지로 몰락의 운명을 맞는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길드 수공업자들은 프랑스에서 화폐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부를 쌓고 루이 14세 시대부터 귀족의 반대급부로 떠오른 계층입니다.

또 엘리아스 노르베르트는 “제도로서 귀족에 대한 결정적 타격은…(중략)…부메랑처럼 기득권을 가진 시민계급 자신을 되맞출 것이다. 모든 특권계층들은 과도한 투쟁을 삼가는 데 일치된 관심을 보인다. 그들 모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전체사회의 극심한 동요와 무게중심의 이동인 것이다”고 덧붙입니다. 삼부회가 각 계층을 대표한다고 하지만, 절대 다수인 시민을 대표하는 인물들도 그 중 일부이자 기득권입니다. 원 네이션을 보면, 우리가 진짜 시민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장외에서 내려다보며 소리를 지를 뿐, 직접적인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아닌 1830년 7월 혁명을 기념하는 그림입니다. 사진=위키피디아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아닌 1830년 7월 혁명을 기념하는 그림입니다. 사진=위키피디아

이는 40년 뒤 영화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되는 1830년 7월 혁명에서도 나타나며, 삼부회에서 시민계급을 대표하던 법복귀족과 길드 수공업자들은 산업혁명 과정 속에서 은행가와 산업자본가로 대체됩니다. 장발장도 산업자본가의 한 명입니다. 새로운 시민계급은 7월 혁명 당시 왕정을 다시 내세우려는 샤를 1세에 반대하는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었지만, 오히려 이것이 노동계급에 의한 폭동으로 이어져 체제가 급변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렇기에 루이 필리프 1세가 황제에 오르는 것을 용인합니다. 루이 필리프 1세 또한 큰 반발로 인해 퇴위하며 ‘앙시앙 레짐’이 막을 내리지만, 새로운 경제 권력은 확고히 자리 잡습니다. 그들 또한 기득권임을 보여주는 건, 혁명에서 약속한 1인 1표 선거권이 1944년에야 도입된 데에서도 보여 집니다.

프랑스 혁명은 기존 귀족과 사제, 그리고 특정 계급이 주도하던 앙시앙 레짐을 한 번에 뒤엎은 정치적 의미가 큽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던 진짜 시민, 대중들에게는 새로운 기득권으로 대체된데 지나지 않습니다. 프랑스는 시위의 나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들의 역사는 그렇게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다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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