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세계대전과 경제①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만든 ‘폭풍 전야’
[영화로 보는 경제] 세계대전과 경제①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만든 ‘폭풍 전야’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1.04.09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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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압둘' 영국 여왕이자 인도의 황제였던 빅토리아의 우정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식민지 쟁탈전…상품 판매 시장 확보를 위한 노력
1870년 대불황으로 침체된 경제까지…영국은 아편을 팔기로 결심했다
빅토리아&압둘(Victoria and Abdul, 2017)
감독: 스티븐 프리어즈
출연: 주디 덴치(빅토리아 여왕), 알리 파잘(압둘 카림), 마이클 갬본(샐즈버리 경), 에디 이자드(베르티)
별점: ★★★☆ - 이 소재를 지루하지 않게 풀어낸 것만으로도 잘 만들었다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세월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는 하얀 피부와 그에 어울리지 않게 힘이 가득 찬 파란 눈. 자그마한 체구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꼿꼿한 목.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쉽지 않은 사람임을 느끼게 하는 입. 간단한 서명에서 조차도 기품을 느끼게 하는 손. 무엇 하나 나와 닮지 않은 그 사람을 나는 이렇게 부른다. “폐하.”

실제로 얼마나 닮았는지 알 수 없지만 영화 ‘빅토리아&압둘’에서 빅토리아 여왕 역을 맡은 주디 덴치는 경험이라도 있었던 듯 여왕의 모습을 잘 표현해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과 인도 청년이 우정을 나눈다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현실을 참 아름답게 꾸며낸 듯 합니다. 압둘 카림은 과연 영국으로 인해 조국에서 벌어진 일을 알고 있었을까요?

빅토리아 여왕 시기 영국은 전 세계 영토의 1/4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건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에서 해가 지면 지구 반대편 또 다른 영국 영토에서 해가 뜨기 시작하니까요. 영국 역사상 빅토리아 여왕 시기는 최대 전성기였지만 저는 탐욕의 시기라 부르고 싶습니다. 이 시기는 제국주의 확산기였습니다. 유럽에서 군사력 좀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 나라들은 해외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 식민지는 이전 시기와는 양상이 조금 다릅니다. 앞서 시기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 했던 가장 큰 이유는 금과 은 그리고 노예였습니다. 달리 말하면 식민지에서 자원을 확보해 자국 경제를 지탱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녀는 전 세계 영토의 1/4과 4억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대제국의 여왕이었습니다. 사진=다음영화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양상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우선 기계와 기술의 발전은 많은 생산량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과 함께 분업의 효율성을 강조한 건 대량생산 체제를 염두에 둔 말이었습니다. 일례로 18세기 인도의 면 방적기는 면화 45kg을 면사로 가공하는 데 약 5만 시간이 필요했지만 1779년 영국에서 개발된 뮬방적기는 같은 양에 2000시간이면 충분했습니다. 뮬방적기에 증기기관을 결합하면 이 또한 300시간으로 줄어 들었다고 합니다.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해외 식민지를 찾도록 만든 건 1870년대부터 1890년대 중엽까지 이어진 대불황의 영향도 있습니다. 이 기간 영국에서만 물가가 32% 하락했으며 독일은 40%, 프랑스는 43%, 미국은 45%가 하락하는 등 경기침체를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생산량은 늘어나고 국민 소득, 실질 임금, 실업률은 높아갔지만 반대로 투자는 저조했습니다. 자본의 증가 속도가 실물경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영국은 18세기 산업혁명의 시작점이었지만 1800년대 들어 독일이나 미국 등 주변 국가에 비해 공업이 쇠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세계 공업 생산량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870년 32%에서 1차 세계대전 직전 14%까지 내려가며 경쟁력을 상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국 국민들은 불황 속 보호무역을 요구했고, 세계 1/4을 차지한 영국의 노력은 경기침체에 대한 돌파구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혁명은 아이들의 손을 빌려서라도 더 많은 생산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진=구글

그렇다면 왜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적극적으로 식민지를 찾게 만드는 동안, 지금도 가장 거대한 국가 중 하나인 중국과 아시아 국가들은 조용했을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인구 문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인구 증가 추세가 가파르지 않았고, 높은 임금 수준을 보였기 때문에 기계 발명의 필요성에 대한 동기가 확실했습니다.

반면 중국은 14게기 말 인구 수가 6500만명에서 1600년 1억5000만명, 이후 명청 교체기에 줄어들다가 1794년 3억1300만명까지 증가합니다. 이어 1850년에는 4억3000만명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기 중국 인구 1인당 경작면적은 1400년 5.1무에서 1850년 2.8무로 줄어듭니다. 1무는 약 200평에 해당합니다. 명·청 시기 농업 기술의 발달해 쌀 생산량이 늘어난 점이 인구 급증을 이끌었습니다. 인구가 급증하니 임금은 떨어지고, 기계 발명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잉여노동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큰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유럽 대륙에서 영국과 경쟁자 관계였던 프랑스도 나폴레옹 시기 이후 다시 식민지 확장에 나섭니다. 1830년 베트남을 시작으로 남태평양의 누벨칼레도니와 폴리네시아까지 손을 뻗칩니다. 1866년 병인양요도 프랑스의 이런 식민지 확장 노력에 따른 사건이었습니다.

영국와 프랑스의 식민지 확장은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가톨릭과 프랑스 문화 전파가 시장 확보만큼 중요한 동기였고, 마구잡이식 수탈에 국경선마저 제멋대로 그은 행태는 지금까지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제 멋대로 땅따먹기 게임. 사진=구글

이에 반해 영국은 마치 국가가 하나의 기업인 것 마냥 진출했고, 동인도회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스탠더드 차타드 은행은 1858년 동인도회사를 계승해 설립된 차타드 은행이 그 뿌리입니다. 하지만 동인도회사는 생각보다 수익을 보지 못했고, 1857년 세포이 항쟁을 계기로 회사 운영은 중단하고 인도는 영국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형태를 띄게 됩니다.

그리고 인도보다 더 극적인 사례는 중국에서 벌어집니다. 영국도 중국만큼은 쉽사리 진출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발생되는 적자는 식민지에도 불구하고 영국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영국의 선택은 ‘아편’을 중국에 판매하는 것이었고 이는 세계의 중심축을 옮겨가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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