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 세계대전과 경제③ 전후 미국 '모던 타임즈'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영화로 보는 경제] 세계대전과 경제③ 전후 미국 '모던 타임즈'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1.05.07 17: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찰리 채플린, 1차 세계대전 후 호황에 이어진 대공황+산업화 속 현실 풍자
국채, 회사채, 부동산, 외채 등 가릴 것 없이 중산층도 뛰어든 호황
1929~1932년 이유도 모른채 89% 급락…"시장 구조가 촉발한 사건"
모던 타임즈(Modern Times, 1936)감독: 찰리 채플린출연: 찰리 채플리(노동자), 폴레트 고다르(고아)별점: ★★★★ - 80년전 영화가 지금 봐도 재밌다면 수작이지 -
모던 타임즈(Modern Times, 1936)감독: 찰리 채플린출연: 찰리 채플리(노동자), 폴레트 고다르(고아)별점: ★★★★ - 80년전 영화가 지금 봐도 재밌다면 수작이지 -

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이 있죠. 찰리 채플린은 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큰 수혜를 본 미국에서 왜 그렇게 비극적인 일상을 희극적으로 표현했을까요.

찰리 채플린이 영화 제목을 ‘모던 타임즈’라고 지은 건 참 잘 만든 제목 같습니다. 직장과 살 집을 걱정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니까요.

1920년대 미국에서는 이런 걱정이 사라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에는 끝이 없을 것 같은 호황이 찾아 왔었으니까요. 1차 세계대전은 지금과 같이 버튼 하나로 전쟁이 시작되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물량공세가 중요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1차 세계대전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건 당연했습니다. 9·11 테러가 미국에게 가져다 준 공포는 미국 본토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을 만들어 준 것도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미국은 독립전쟁 이후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외부 세력으로부터 본토를 공격 받은 적이 없었고, 그렇기에 전쟁 후 재건을 시작한 유럽을 도와줄 국가로는 미국이 최우선이었죠.

찰리 채플린은 포드자동차가 1913년 세계 최초로 도입한 컨베이어 시스템 속에서 나사를 조이며 영화에 등장합니다. 이는 곧 대량생산을 의미하면서도 생산의 기계화, 인간의 부품화를 뜻하기도 했습니다. 공장에서 나오는 대사 하나하나가 그 인간성의 상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효율성을 위한 분업화가 우리에게 이렇게 다가 왔던 것이지요.

찰리 채플린이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 모습은 마치 부품화된 인간처럼 보입니다. 사진=다음영화
찰리 채플린이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 모습은 마치 부품화된 인간처럼 보입니다. 사진=다음영화

그렇게 공장은 쉬지 않고 돌아가는데 왜 실직이 발생했을까요? 꺼지지 않을 것 같던 호황은 어떻게 꺼져버린 것일까요? 찰리 채플린은 영화를 통해 인간성을 회복이라 말하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그 열기를 꺼뜨릴 수 있었던 것은 경제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전쟁은 생산력을 크게 향상 시켰습니다. 미국의 생산력은 전쟁 전후로 두 배가 성장합니다. 이와 함께 포드가 자동차를 생산하고, 발전소를 통해 전기가 공급되기 시작했으며. 곳곳에 슈퍼마켓 형태의 체인점이 들어서는 등 경제가 너무나 활력을 보였습니다. 이탈리아를 제치고 미국 헐리우드가 글로벌 영화 시장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

호황은 실물경제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버블: 부의 대전환’은 1920년대를 미국 금융시장의 민주화라 말할 정도로 중산층도 투자 시장에 뛰어 들었습니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미국은 전쟁 중이던 1916년 전쟁자금으로 16억달러를 지출했지만 1917년 185억달러, 1918년 185억달러까지 증가하자 이를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유 채권을 파는 것으로 해결합니다. 1918~1919년 사이 채권 매수자 중 36.7%가 연간 1020달러 이하 소득자였다고 합니다. 2013년과 비교하면 어떤 형태로든 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 이때와 동일한 수준의 실질소득을 가진 사람은 11.4%라고 합니다.

포드 사가 1908년 내놓은 T형 모델은 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입니다. 사진=구글 

당시 회사채에 투자된 돈이 5억여달러인 반면 국채는 14억달러로 돈이 몰렸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니 국채 수익률은 낮아지고, 반대로 회사채로 돈이 몰리기 시작했지만 이 또한 한정적이었습니다. 신용등급이 AAA로 높았던 회사채 수익률도 1920년 6.38%에서 1922년 4.93%로 낮아질 정도로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했습니다.

여기서 새로이 찾은 투자처가 주택 시장입니다. 국채도 회사채도 수익률이 낮아질 시점 신규 주택 건설량이 1920년 24만여채에서 1925년 95만7000채로 4배 가까이 증가합니다. 물론 전후 신규 주택 건설이 필요하긴 했지만 가격도 이 기간 40%가 오르고 부동산 채권 규모도 5억달러에서 38억달러로 증가합니다. 38억달러는 당시 신규 발행 회사채의 22.9%로 미국 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흘러 넘치는 돈은 미국 내에서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2차 세계대전 후 ‘마셜플랜’의 원조격인 ‘도스플랜’은 J.P. 모건이 독일 경제 재건과 전쟁 배상금 지원을 위한 고금리 채권 판매가 핵심이었습니다. 당초 미국 정부는 이 채권이 크게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금리까지 낮췄지만, 이 채권은 15분만에 다 팔릴 정도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독일 지방 정부들은 미국 시장에 자체 채권까지 판매했고, 그 규모는 1923년 6억달러에서 1925년 13억달러까지 늘었습니다. 또 1920년대 미국에서만 32개국에서 발행된 채권이 판매됐습니다.

1928년 부동산 채권 수익률이 떨어지고 독일이 금리를 높이고 외채 발행률을 낮추면서 다시 주식시장이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1921년 이후 완만한 상승폭을 보이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917년에서 1918년 사이, 그리고 1918년의 시작에서 1929년 사이 급등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시 미국 경제도 여전히 전후 호황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미국 GDP는 1922년부터 1929년까지 연평균 4.7%씩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1928년 초 연방준비은행이 금리를 올리며 주식시장 열기를 가라 앉히려 했지만 오히려 당해 다우지수는 50.9%나 올라 버렸습니다.

기업들도 주식시장 열기에 올라타기 시작했습니다. 1923년 발행된 주식은 14억달러 규모였지만 1928년은 38억5000만달러였으며 1년 후 48억1000만달러로 넘치는 열기를 보여줍니다. 이 분위기 속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겠죠. 뉴욕증권거래소 일일 평균 거래량도 1915년 170만건에서 1928년 350만건, 1929년 410만건으로 활발한 매매 양상을 보여줍니다.

1929년은 버블이 쌓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해 다우지수는 큰 변동이 없었지만 거래량은 이전 달 대비 5~9월 사이 27.8%가 더 늘었습니다.

다우지수는 1929년 9월 3일 381.2에 도달합니다. 1927년 대비 231% 증가한 지수입니다. 이후 조금씩 하락하긴 했지만 ‘영원한 안정기처럼 보이는 상태’란 평이 나올 정도로 크게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1929년 10월 29일 미국 월스트리트에 모인 군중들. 사진=위키백과
1929년 10월 29일 미국 월스트리트에 모인 군중들. 사진=위키백과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언제까지고 오를거라 생각했던 주가가 떨어졌을때 공포감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드디어 10월 23일이 됐고 자동차주가 대량 매각을 하면서 뉴욕증권거래소에 혼란이 발생합니다. 다우지수는 이날 6.3% 하락했습니다. 또 다음날 장 개시 하자마자 매물이 쏟아졌고 한때 다우지수는 10.8%가 떨어졌지만 장마감 시점에는 2.1% 하락하는데 그쳤습니다. 이날이 우리가 부르는 ‘검은 목요일’입니다.

이날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자 마진콜을 받은 주주들과 외국 투자자들이 매도에 나섰습니다. 이날 오후 연방준비은행과 시중은행이 주식시장에 개입할 의사가 없다고 밝히면서 다우지수는 검은 목요일보다 더 큰 12.8% 하락하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런 하락세는 화요일과 수요일에도 이어졌고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1억달러 규모 정부 증권 매수 계획을 발표해도 11.7%가 하락했습니다. 화요일과 수요일에 걸쳐 다우지수는 23.6%까 또 떨어 졌습니다.

이후 과정을 연착륙이라 봐야할까요? 1930년 4월 다우지수는 292를 찍으며 다소 회복하는 듯 했지만 1932년 7월에는 41로 주저 앉았습니다. 1929년 정점 대비 89%가 하락한 수치입니다.

거품이 쌓인 건 은행에서 돈을 빌려 개인투자자에게 다시 재대출해주는 브로커론이 활발해지며 연료가 충분히 공급된 점도 있었습니다. ‘버블: 부의 대전환’은 1929년 대공황에 대해 “특정한 사건에 대한 반응 때문도, 미스터리한 이유 때문도 아니었다”며 “브로커 론 규모를 보면 큰 가격 하락이 언제고 일어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마진콜이 이어질 거라는 사실은 자명했다”며 시장 구조의 문제라 언급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한 몫을 벌었겠지만 대부분 큰 돈을 잃었을 것이며, 언제까지고 돈이 쏟아질거 같았던 ‘모던 타임즈’ 상상은 현실에선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주저 앉기는 이릅니다. 인류에게 이전에 없는 절망감을 안겨줄 사건이 독일에서 피어오르는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
기업돋보기
단독기사
톱데일리는 독자분들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주신 제보와 취재요청으로 세상을 더욱 가치있게 만들겠습니다.
뉴스제보 이메일 top@top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