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 까마귀가 나는 밀밭
빈센트 반 고흐 - 까마귀가 나는 밀밭
  • 고도욱
  • 승인 2017.01.0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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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집단의 가치와 개인의 바램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고뇌를 겪는다

캔버스는 황금색 밀밭과 암청색 하늘, 연갈색 흙으로 삼분된다. 풀무리와 뒤섞인 흙은 좌우의 갈림길, 밀밭 중앙을 가로지르는 오솔길로 뻗어나가 사라진다. 원근법적 공간감은 거의 무너져있는데, 오솔길과 까마귀 무리의 크기 변화에서만 자취를 찾을 수 있다. 오히려 작품에서는 공간감보다는 질감(마띠에르)과 화가의 감각이 더 짙다. 캔버스 내의 사물들은 두툼하게 찍어바른 유화로 그려져있다. 또렷하게 남은 붓의 궤적 탓에, 관람자에게 캔버스 안의 모든 것들은 단순한 붓터치와 재현(representation)의 경계에 위치한 무언가로 느껴지게 된다. 작품 내의 정경은 사실과 화가의 감각 사이에 나타나는 순간적인 인상(impression)으로 잔류할 뿐이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속 풍경은 서양 풍경화(Landscape)의 일반적 풍경에 비교하자면 이질적이다. 동양인이 자연에 인격 혹은 신성성을 부여하며 삶의 스승이나 벗으로 여겼던 것과 달리 서양인에게 자연이란 정복해야할 대상이었다. 풍경화 속 자연이 철저한 원근법을 통해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규격화되어 그려지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자연에 대한 소유욕과 정복욕, 거기서 오는 일종의 승리감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까마귀가 나는 밀밭> 속에 그려지는 자연은 한 눈에 담아내 향유하기에는 지나치게 방만하고 위협적이다. 근경과 원경은 별다른 구분없이 뒤엉켜 있다. 좌우의 길은 캔버스의 틀에 막혀 끝이 보이지 않고, 중앙에서 뻗어나가는 길은 끝이 끊어져있다. 때문에 관람자의 시선은 그 ‘너머’의 풍경을 상상할 수 없이 캔버스 안에 고립된다. 촘촘한 붓질로 그려진 풍경 전체는 보는 이에게 쏟아져들어오는 하나의 거대한 파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쇄도하는 파도 위에 거의 일편(一片)의 붓자국처럼 그려진 까마귀 떼가 날아들어온다. 30호에 달하는 거대한 캔버스 전체가 관람자를 위압하듯 서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는 인간에게 정복될 수 있는 자연도, 인간의 벗이 될 수 있는 자연도 존재하지 않는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고흐의 실질적인 유작으로 여겨진다. 이 그림은 고흐가 자살하기 직전인 1890년에 그려졌다. 같은 해 7월, 반 고흐는 권총자살을 시도했으며 중상을 입은 채 고통스러워하다 7월 29일 숨을 거두었다. 동생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의 말에 따르면 빈센트는 죽기 직전 "난 왜 잘하는 것 하나 없지? 자신에게 총을 발사하는 것마저도 실패했어."라고 탄식하며 깊은 절망과 자괴감을 표현했다. “고통은 영원하다.”는 한 마디가 최후의 유언이었다. 그러나 굳이 고흐의 비극적 일화를 상기하지 않더라도 <까마귀가 나는 밀밭>과 마주한 관람자는 절망이나 고독, 혹은 막막함처럼 ‘죽음’으로 이어지는 인상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다.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문학작품 『인간실격』에서 역시 절망과 고독으로 인해 자살을 택하는 인물 ‘나’가 등장한다. ‘나’는 태생적으로 인간의 보편적 행복을 이해할 수 없는 이질적 인간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 인간상에 부합하고자 발버둥치는 인물이기도 하다. 작품 중에서 ‘나’는 친구와 함께 ‘도깨비 그림’을 보는 순간 자신의 갈 길이 결정되었다는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그 ‘도깨비 그림’의 정체가 바로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이다. 반 고흐 역시 일생동안 화단의 이해와 타인과의 소통, 진실된 사랑을 갈구했으나 이를 손에 넣지 못하고 고통에 신음한 인물이었다. 또한 고흐가 지향했던 인상주의 화풍은 기존 시대의 규격화된 명작의 기준이 아니라, 화가 자신이 본 세계의 생생한 표현에 목적을 두었다. ‘나’는 “그들은 그것을 익살 따위로 얼버무리지 않고 본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고 언급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을 소신있게 표명하는 태도에 대해 깊은 동경심을 드러낸다. 보편적 다수가 될 수 없는 괴리감에 일생 고뇌했던 ‘나’에게 고흐의 작품은 개인이 한 가지 목적(미술)에 대한 헌신을 통해 남긴 고독한 투쟁의 결과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나’는 주위의 비웃음으로 인해 화가라는 꿈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하게 된다. 화가라는 직업은 세간의 덕목인 ‘잘 먹고 잘 사는’ 것과는 먼 거리가 있으며, 다수 속에서 끊임없이 개인의 ‘일탈적 자아’를 추구하는 이질적 존재다. 즉, 화가란 ‘개별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나’가 갈망했던 이상적인 사회적 인간은 결코 성취될 수 없는 것이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 주는 죽음의 인상은 단순히 한 불우한 화가의 극적인 삶과 자살이라는 낭만적 성질에서만 기인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집단의 가치와 개인의 바램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고뇌를 겪는다. 살아가는 동안 세상은 쏟아져들어오는 파도처럼 개인을 위협해오곤 한다. 우리는 삶이라는 고단한 투쟁 중에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며,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나 선택한 길이 끊어졌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절망한다. 살아온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절망 속에선 뒤엉킨 원경과 근경처럼 뒤범벅되어 하나의 감당하기 힘든 무게로 다가올 뿐이다. 세상은 친밀한 벗도 더 이상 대적할 수 있는 적도 아닌 무관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온전하게 고립된 그 순간 우리는 까마귀 떼처럼 날아드는 ‘죽음’을 떠올리곤 한다.

<외부기고는 우리 논조와 다를 수 있으며, http://blog.naver.com/broken888에도 게제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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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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