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사 한 줄에 생업 달렸어요"
[기자수첩] "기사 한 줄에 생업 달렸어요"
  • 최종환 기자
  • 승인 2020.03.17 0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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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데일리 최종환 기자 = 코로나19 확산으로 온 사회가 힘들어한다. 치료 약도 없는 터라 확진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경제계는 비상이 걸렸다. 소상공인연합회는 16일 서울 소상공인 전체 하루 매출 손실액이 3000억 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재난을 대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는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다. 이들의 아픔과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포와 혐오, 낙인찍기로 2차 피해를 양산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자가 만난 상당수 소상공인은 불만과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 마디로 “언론 보도가 무섭다”는 것이다. 외국인 혐오를 조장하는 보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매출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게 이들의 한결 같은 설명이다. 기사 한 줄이 곧 생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난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된 이후 외국인 집단 감염 사례는 없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코로나19가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비롯됐다는 이유로 그간 중국인 혐오에 열을 올렸다. ‘가래침’ ‘위생 불량’ 등 자극적인 단어로 지역의 공포분위기를 자극하는 것은 물론 1면에 ‘중국인 입국 금지’를 강조한 사설을 싣는 매체도 있었다.

외국인이 많이 모인 지역에는 문을 닫는 가게가 속출했다. 하루 매출액 수 백만 원에 달하는 한 식당은 아예 영업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간신히 문을 연 곳은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았다. 임대료와 인건비, 재료비 걱정이 앞섰지만, 소상공인들은 대부분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마음이 간절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달 21일 코로나19 보도 준칙을 통해 “코로나19와 관련한 허위 조작 정보의 재인용 보도 및 방송 또는 인권 침해 및 사회적 혐오·불안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적 보도 및 방송을 자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 보도준칙은 ‘규범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감염병의 근본 원인을 찾기보다 특정인을 악마화하거나,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문제해결과 후속대책을 위한 보도보다 선정적이고, 편 가르기식 보도가 적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을 향한 혐오 보도로 여론의 뭇매를 맞자 기사 제목만 바꿔 달아 포털에 재송고한 매체가 그 예다. 대책과 대안 없이 ‘정파’에 급급한 보도로 억울한 희생자가 발생되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매장은 매출 하락으로 단축 업무를 선언했다.(사진=최종환 기자)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매장은 매출 하락으로 단축 업무를 선언했다.(사진=최종환 기자)

예상치 못한 재난 상황에 미국 <뉴욕 타임스>의 행보는 눈여겨 볼만하다. 2011년 유료 서비스를 선보인 <뉴욕 타임스>는 구독료로 주당(weekly) 0.75달러 받고 있다. 하지만 자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자 코로나19 관련 기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수익보다 저널리즘의 원칙을 중시한다는 <뉴욕 타임스>의 철학이 이번 결정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2004년 제정한 ‘윤리 저널리즘’ 실천 요강에서 가장 먼저 강조한 내용 역시 정보의 공정성 회복이었다.  

홈페이지에서는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The Coronavirus Outbreak)’ 코너를 별도로 운영해 세계 곳곳의 확진자·사망자수를 알리고 있다. 코로나19 관련 생활수칙과 자주하는 질문 등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도 전달한다. 한국 언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단독’ ‘속보’ 등의 머리말이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사건·사고형 보도보다 세계 각지의 경제 지표를 설명하는 기사가 많은 게 눈길을 끈다. 

<뉴욕 타임스>의 재난보도는 과거의 경험이 컸다. 지난 2014년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가 붕괴되자 속보를 쏟아낸 여러 언론과 달리 사고 발생 2시간 만에 첫 기사를 내보냈다. 2012년 코네티컷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보도 때 범인의 이름을 잘못 알려 비판 여론이 일자 “속도보다 정확성”이라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뉴욕 타임스>의 정확·공익성 추구는 매체 브랜드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국내 언론에선 <연합뉴스>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유일하게 코로나19 배너를 둬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 시간별 확진자 발생 현황과 동선 정보도 빠뜨리지 않았다. 연 300억 원의 정부 재원을 받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코로나19는 현재 진행형이다. 시민들은 바이러스의 확산 여부를 두고 매일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소상공인들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언론 보도가 감염병을 대처하는 시민들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때 기사 한 줄이라도 신중함이 요구된다. 이왕이면 현상 나열보다 ‘해법 저널리즘’이 필요하다. 언론인 모두 “언론 보도가 무섭다”는 소상공인들의 말을 곱씹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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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최고 2020-03-17 18:57:57
기자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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