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서재] ‘빨갱이’라는 혐오의 정치학
[기자의 서재] ‘빨갱이’라는 혐오의 정치학
  • 최종환 기자
  • 승인 2020.04.1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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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빨갱이’의 탄생
이승만 정부, 체제 비판자를 적으로 규정
해방 공간서 국가폭력 통해 ‘빨갱이’ 담론 재생산
한국전쟁 발발 70년, 평화와 화해 필요
책 ‘‘빨갱이’의 탄생’.
책 ‘‘빨갱이’의 탄생’.

톱데일리 최종환 기자 = 남북 화해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한국 사회는 일정 부분 ‘극단적 반공주의’가 해소되는 분위기다. 군사적으론 여전히 북한을 ‘주적’으로 삼아야 하지만, 한반도의 경제 지도를 넓히기 위해선 남북 간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여론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분단 70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한반도의 이념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자유주의 체제가 확장됐지만, 한반도의 ‘냉전’ 기류는 온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반세기 이상 누적된 적대는 국가 차원을 넘어 일상에서도 벌어졌다.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재난 탓에 잠시 멈췄지만, 불과 몇 달 전만에도 매주 주말에는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구호가 서울 광화문 중심에 울려 퍼졌다.

소위 ‘태극기 집단’에게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 사회문화교류는 ‘위장평화’로 폄훼된다. 이들은 북한이라는 ‘적’을 끌어들여 자신의 정체성과 폭력의 당위성을 부각한다.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논리적 근거는 주민 인권을 말살하고, 국제 규범을 이탈해 핵을 만든 북한에 동조하는 사람은 ‘간첩’이자 ‘적’이기 때문이다.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가 쓴 ‘빨갱이의 탄생’은 한국 사회에서 오랜 기간 주류담론으로 부상한 ‘빨갱이’의 역사적 맥락을 파헤쳤다. 대한민국 국가 형성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사건인 ‘여순사건’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빨갱이’의 허구성을 비판한 책이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전남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일으킨 항쟁(반란)을 말한다. 제주4·3사건과 함께 좌·우익이 대립한 우리 현대사의 최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제주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제14연대를 현지에 파견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부 군인들이 반발하면서 정부와 갈등 조짐을 보였다. 이들은 남북통일과 친일파 청산 등을 외치며 입지를 다졌다. 사태를 정리하기 위해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탈한 군인들을 ‘빨갱이’로 규정했다. 두 달 뒤에는 그 유명한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정부는 체제에 동조하지 않는 자, 의심스러운 자를 모두 ‘빨갱이’라 불렀다. 저자에 따르면, 해방 공간에서 빨갱이는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여겨졌고, 체제를 위협하는 적으로 부각되었다.

저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는 여순 지역을 진압한 후 남한 사회 전체를 반공체제로 재편했다. 군대, 경찰, 청년단, 교육계, 언론계가 재편되었고, 사회 각 영역에서는 ‘빨갱이’ 축출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군 진압 작전은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희생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학계에서는 여순사건이 보도연맹, 거창 양민학살 등으로 이어져 희생자가 8만여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저자는 여순사건을 ‘현재진행형’이라고 규정한다.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할 길을 찾아 나서는 여순사건 피해자 유족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빨갱이’ 담론이 통용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의미로 김득중은 “한국은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고 하면서도 “여순사건의 사실과 의미를 온전히 대면하지 못하면 (한국은) 반공 사회로 남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다. 분단이 계속되는 한 민족의 비극도 계속될 것이다. 비극을 치유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역사는 흔히 전쟁의 역사라고 했다.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통합과 화해의 자세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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