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서재] '자기 앞의 생'에 던져진 것 같은 사람들에게
[기자의 서재] '자기 앞의 생'에 던져진 것 같은 사람들에게
  • 김성화 기자
  • 승인 2020.08.07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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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데일리 김성화 기자 = 질풍노도의 10대를 지나 방황하는 20대가 되고, 이제 와서 보니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30대로 접어들면 '난 무엇을 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하며 살아왔고 무엇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걸까. 난 왜 이렇게 무기력하게 내 생의 앞에 던져진 걸까.

그럴 때 꿈을 이룬 누군가의 삶이 희망이 되기도 하고,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하며, 방향이 되기도 하고 지침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아, 나는 그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구나, 내가 이룰 수 있는 꿈이 아니었구나.’

그러다 문득 주위를 둘러본다. ‘저 사람보다는 내 처지가 낫구나.’ 이게 위로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조금 낫다는 게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

참 비겁하다. 남보다 못하다고 시무룩해졌다가 나보다 조금 못난 모습을 보고 금세 힘을 얻는 꼴이라니.

그런데, 그게 꼭 비겁하지만은 않다. 어쩌면 무기력함에 빠졌을 나에게 그런 그들은 사치라는 말로도, 동정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지금의 내가 뿜어내지 못할 힘이 담겨 있다.

‘자기 앞의 생’의 배경이 되는 파리 벨빌의 비송 거리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뇌혈증을 앓고 있는 로자 아주머니, 세 살 이전의 기억은 나지도 않는 모모를 거두어준 전직 창녀, 치매를 앓고서 늘 빅토르 위고의 책을 끼고 다니는 하밀 할아버지, 전직 복서 출신의 여장 남자 롤라 아주머니, 그리고 모모.

모모는 늘 하밀 할아버지의 이름을 불러준다.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걸, 자신의 이름이 하밀이란 걸 알려주기 위해서.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존재마저도 사라지는 것 같다.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잊힐 사람들이다.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아니지만 서로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무엇이라 부르며 묶을 수 있을까.

이들의 삶을 한발 떨어져 지켜보고 있으니 외면하고 싶은 현실 같으면서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렇듯 한발 떨어져도 힘들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모모는 점점 창백해져 가는 로자 아주머니 얼굴의 화장을 몇 번이고 고쳐준다. 자기 앞의 생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비송 거리의 사람들은 자기 앞의 생에 던져진 사람들이었고, 그들에게는 누구보다도 강한 역동성이 존재했고, 섣불리 이해할 수 있다는 말조차도 던질 수 없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자기 앞의 생에 온몸으로 부딪히는 자들에게 이런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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